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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초반의 그는 모든 민사사건 기록을 눈이 아닌 귀로 검토한다. 이어폰 두 짝이 그에게는 자료를 읽는 두 눈이 된다. 국내 2호 시각장애인 판사인 김동현(42)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항소5부 판사 이야기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의 공학도였던 김 판사는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법조인을 꿈꾸던 2012년 의료사고로 시력을 완전히 잃고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법원의 연말 휴정기를 맞아 서울중앙지법 집무실에서 김 판사를 만났다.
“저를 법조인으로 만들기 위해 사회적 자본이 얼마나 많이 투입됐는지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로스쿨 동기, 교수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너무 컸습니다. 제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저와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한테도 기회가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고 후 복학한 뒤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시각장애인도 여건만 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김 판사는 최영(45) 판사에 이은 국내 두 번째 시각장애인 판사다. 시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제4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로클럭)과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 공익 변호사를 거쳐 2020년 10월 신임 법관에 임용됐다.
김 판사는 판사로서 첫 부임지 수원지방법원에 근무할 때인 2022년 사고로 빛을 잃은 이후 10년을 기록한 자서전적 에세이 ‘뭐든 해 봐요’를 썼다. 도전 정신을 표현한 책 제목처럼 “인생의 혹독한 슬럼프를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이 됐든 작게라도 해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책을 쓴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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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그가 실명 이후 마음을 어떻게 다잡았는지, 로스쿨을 어떻게 마치고 법관이 됐는지 등이 솔직 담백하게 기술돼 큰 울림을 던지고 있다. 그는 법률 서적을 파일로 받아 국립장애인도서관 등에서 시각장애인 전용 서적을 제작해 소리를 듣고 방대한 법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에세이에는 “한 페이지당 1000원, 책 한 권에 최장 5개월도 걸렸다”며 “어떻게 구한 책인데 공부를 대충 할 수 없었다”고 적혀 있다. 김 판사는 “당시 간절함이 삶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김 판사가 사고 이후 마음을 다잡은 계기는 친지의 권유로 한 달 동안 매일 3000배를 한 수행이었다고 한다. “한 배, 한 배 그렇게 3000배를 마쳤다. 그런데 갑자기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나는 그대로 엎드려 짐승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에세이 44쪽)”. 그는 “처음에는 오전 5시에 시작해 밤 늦게 끝났다. 한 달이 다 돼서는 저녁 식사 전에 절을 마쳤다”며 “한 달을 꼬박 다 채우니 체력이 붙고 뭐든 할 수 있겠다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그는 “3000배를 마칠 때 스님께서 ‘육신의 눈을 뜨지는 못했지만 마음의 눈은 뜬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도움이 됐다”면서 “3000배를 하며 보낸 한 달이 나를 살리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김 판사의 스마트폰 메시지 울림과 함께 빠른 속도로 문자를 읽어주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일반적인 읽기 속도의 3배쯤 된다”고 했다. 사건 기록은 이어폰을 끼고 ‘스크린리더(컴퓨터 화면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의 소리로 검토한다. 사진과 영상 파일은 전담 속기사로부터 설명을 듣는다. 그렇게 사건 기록을 검토하는데 다른 판사에 비해 두 배쯤 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래도 일주일에 판결문 3~4개를 쓴다고 했다. 김 판사는 “조금 불편하지만 특별할 게 없다”면서 “일하는 방법이 다르지 (다른 판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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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법관으로 일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벽에 부딪히기 일쑤다. 사회적 인프라와 제도가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접근성을 제약하고 정당한 편의를 제공 받지 못하는 탓이다. 그는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모든 사람에게 살기 좋은 세상일 것”이라며 “장애인 스스로 상황에 적응해야 하겠지만 사회가 접근성과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령 요즘 식당에서 점차 확산되는 테이블오더가 있을 경우 무용지물이고 읽어주기 기능이 없는 앱은 쓸 수가 없다.
김 판사는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은 시간이 가면서 조금은 덜어 냈다고 했다. “잘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면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도움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해요. 자신이 잘되면 나중에 누군가를 도와주면 되니까요.”
‘좋은 재판을 하는 판사가 되고 싶다’는 그는 “눈은 안 보이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면서 “잘 듣고 열심히 찾아보고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박한 포부를 밝혔다. 이어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까지 소중히 지켜드리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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