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1일과 25일에 소설가 조세희 선생 추모답사와 추모의 밤 행사가 인천 만석동과 화수동에서 열렸다. 필자는 한 해를 마감하며 추모 답사길을 걸었고, 며칠 후 추모의 밤 행사에서 여러 공연을 보았다. 모두 인천 시민들이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개최한 행사였다.
답사 날인 12월 21일 토요일은 매우 추웠다. 핫팩을 빠뜨리고 간 것을 후회했다. 매서운 바닷바람이 차가운 볼을 사정없이 때렸다. 그나마 목도리와 장갑이 있어 다행이었다. 인천역에 모인 20여명의 답사객은 김경은 작가의 안내를 받으며 답사길에 올랐다. 소설가인 김경은 선생은 골목길을 걸으며 만석동에 담긴 소설 두 편을 주로 들려 주었다. 강경애의 「인간문제」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이었다.
「인간문제」는 1934년에 쓰인 것으로 1930년대 인천의 공장과 노동자의 현실이 잘 묘사되어 있다. 작가가 취재를 열심히 한 것으로 보인다. 농촌을 떠난 ‘선비’와 ‘첫째’가 만석동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노동 현실을 깨닫고 인간답게 살고자 애쓰는 모습이 나온다. 당시 만석동 일대는 큰 공장들이 많아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인간문제」는 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최초의 근대소설이라 할 수 있다. ‘선비’는 만석동 동양방적에서 일하다 스무 살의 나이로 그만 폐병으로 죽는다. 지식인이었던 ‘신철’은 노동자들을 의식화시키지만 그만 변절하고 떠나간다. 즉 인간문제의 해결은 남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인 민중 자신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공장이 많은 인천이 한국 근대사의 시공간에서 노동운동의 중심지였음을 강경애의 「인간문제」는 잘 보여 주고 있다.
「난쏘공」 역시 1970년대 노동운동의 중심지가 인천임을 잘 보여 준다. 서울 낙원구 행복동(서대문구 현저동)에서 힘겹게 살다 재개발로 인해 ‘은강’으로 이사 온 난쟁이 식구들은 공장에서 힘겹게 노동자로서 일한다. 고분고분하게 시키는 대로 일을 하면 좋으련만 회사를 상대로 노동자의 권리를 말하다 보니 온갖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은강’은 이 소설에서 공장이 많아 ‘기계도시’로 불리는데 바로 인천을 말한다. 12편의 연작소설 중 ‘기계도시’와 ‘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에는 은강전기, 은강자동차, 은강방직이 나오는데 만석동이 배경이다. 작가가 동일방직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취재했다고 한다. 소설 속의 만석동은 갑갑한 도시이고 폐수와 폐유의 환경오염이 심한 버려진 곳이다. 이 역시 1970년대의 인천의 모습을 반영한다. 비단 인천뿐이랴. 산업화 시기 국내의 모든 공업도시는 대동소이했을 것이다.
「난쏘공」이 출판된 1978년에 만석동의 동일방직에서 여성노동자들에게 똥물을 투척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또한 인천이 노동자의 도시였음을 말해 주는 것 아닌가.
만석동하면 또 한 편의 소설이 써 오른다. 바로 2001년 출판된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다. 만석동 골목길에 사는 아이들의 일상과 슬픔을 이처럼 세세히 묘사한 소설이 없다. 작가는 직접 공부방을 하며 아이들과 동고동락한 것을 동화로 남기었다.
세 편의 소설 모두 슬픈 이야기의 비극이다. 비극을 읽으며 인간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고대의 비극이 영웅들의 비극이었다면 근대 이후의 비극은 깨어난 민중의 비극 아닌가. 세 편 모두 국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이제는 문학의 고전이 되었다. 노동의 도시가 인천이고 노동문학의 동네는 만석동이다. 만석(萬石)동에 살던 17만명의 사람들은 만석의 꿈을 이루어 이곳을 떠났을까. 남이 있는 7000여명은 여전히 만석의 꿈을 꾸고 있는가.
/연창호 인천도시역사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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