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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국회 의원들이 앞다퉈 나섰던 반도체 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결국 해를 넘겼다. 한국 경제의 기둥인 반도체 산업의 위기에도 정쟁과 권력 게임에 눈 먼 정치권이 산업에 한줄기 빛이자 희망을 주는 일도 외면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반도체 기술을 연구개발(R&D)하는 인재들에게 주 52시간 예외를 두자고 호소했지만 야당이 끝내 반대하면서다.
비공개로 법안을 심사할 당시 의원들 발언을 기록한 회의록을 찾아보니 법안소위 위원장인 김원이 민주당 의원은 “날밤 며칠 더 샌다고 좋은 기술이 개발되나” 라며 “근로기준법의 근간을 흔들면서까지 급하게 할 문제는 아니다”고 태평한 얘기를 했다. 같은 당 김성환 의원도 “주 52시간제는 여러 예외 규정을 이미 근로기준법에 두고 있다”며 외면했다. 1953년 집단적 공장 근로를 전제로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얽매여 최첨단 기술 전쟁의 실상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이다.
소위는올 들어 6개월 동안 고작 네 차례 회의를 열었다. 산업통상위 의원들이 각종 법안 심사에 쏟은 시간은 정회 시간을 포함해도 총 25시간 37분이다. 정쟁을 핑계로 주당 평균 1시간도 법안을 살펴보지 않은 정치권이 해외 경쟁국처럼 주 52시간 이상 연구에 매달릴 수 있게 해달라는 반도체 기업과 연구원들의 염원은 무시한 셈이다.
반도체법 처리가 늦어진 건 정부의 소극성과 여당의 불협화음 탓도 있다. 정부는 야당 반대가 뻔히 예상됐지만 근로시간제 예외 필요성을 구두 설명만 했을 뿐 달리 땀을 흘리진 않았다. 오죽하면 국민의힘 박형수 의원이 “막연히 얘기만 하지 말고 구체적 데이터를 가져오라”고 질타할 정도였다. 여당 내부에서도 엇박자를 냈다. 환경노동위 소속 한 여당 의원은 “근로시간 문제를 왜 산자위에서 다루느냐”며 당론인 특별법에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는 오는 20일이 반도체법 제정의 마지노선이라는 데 이견은 없어 보인다. 여야가 사실상 합의한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도 주 52시간제 예외 이상으로 다급한 상황이다. 근로시간 예외 명시가 끝내 어렵다면 현재 주 64시간까지 가능한 특별연장근로 시간을 늘려주고 3개월 단위의 인가 기간이라도 속히 완화해야한다. 입법 지연으로 한국이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실기할 경우 여야정 모두가 패전의 공동정범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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