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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대 사태, 대학 서열사회에서 ‘아랫사람’ 취급하니 폭발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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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광장이 열리면서 많은 투쟁 주체들이 주목받고 있다. 탄핵 국면이 열리기 불과 한 달 전 가장 치열한 투쟁을 벌이던 동덕여대 학생들도 그 중 하나다. 사회 곳곳에서 탄압받던 목소리가 재조명되면서, 시위를 벌인 학생들이 ‘천덕꾸러기’로 매도당했던 동덕여대 사태 또한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진격의 대학교」 등 저서를 통해 대학 서열에 따라 차별과 혐오에 길들여진 20대 청년들, 기업에 종속된 대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춘 오찬호 작가에게 동덕여대 사태는 그간의 문제의식이 집약된, “말할 거리가 많은 이슈”다.

그는 동덕여대 사태를 제대로 읽기 위해선 ‘폭력’ 시위라는 현상만을 볼 게 아니라 폭력에 준하는 행위가 일어나게 된 맥락을 짚어야 한다고 했다. 오 작가는 이번 사태는 그가 누차 이야기해왔던 대학 서열화에서 비롯된 문제로 봤다. 그는 학교 측의 남녀공학 전환 주장에 대해 “대단히 악의를 가진 주장이 아니었을 것”이라면서도, 그 주장을 관철해나가는 태도의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 사회처럼 이렇게 서열에 예민한 사회에서는 아무리 어린 사람이라도 귀신같이 그 뉘앙스를 알아챈다. ‘이화여대도 아닌데 뭘 이렇게 여대에 집착하냐’ 이런 신호를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정말 자존감 떨어지게 만드는 태도인데, 그런 학교의 태도가 지금까지 있었을 것이고, 이번 남녀공학 전환 문제를 계기로 ‘끝까지 무시하네’라는 느낌을 줬을 것이라고 본다. 학교 안에서도 아랫사람 취급을 받으니 굉장히 날것 그대로의 분노로 나오면서 이런 지경에 이른 것 아닌가 싶다.”

학생들이 남녀공학 전환에 반대하는것과 관련해선 “20년 전만 하더라도 여대 필요성을 논할 때 ‘안전’ 같은 단어를 쉽게 떠올리지 않았다. 교제 폭력이나 스토킹 문제를 소홀히 한 결과가 동덕여대 사태 안에 다 들어있다”며 “시위 방식에 동의를 못 할 수도 있지만, 분노 밑에 이런 사회적인 모순이 깔려 있다는 점은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오 작가는 대중이 이같은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폭력’이라는 현상에만 주목하는 이유에 대해 ‘토론 문화의 부재’를 꼽았다.

“한국 사회에서 토론은 곧 ‘배틀’이다. 제대로 대화하고 토론할 기회 없이 사회가 너무 급변해 버리니까 모든 게 다 차별, 역차별이 돼버리는 것이다. 출발선을 조정하고 이런 것들이 사회 제도인데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토론을 하면 ‘이런 맥락이 있었구나’를 받아들이면서 생각이 성숙하게 되는데, 요즘은 그 맥락을 이야기하는 게 어렵다. 애초에 맥락이라는 단어 자체를 부연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고소‧고발 사태에 이르기까지 학교와 학생 사이에 “서로 공유할 질문들이 있었다”며 “그런 걸 다 생략해 버린 공동체에서 학생들의 성장이 가능하겠나. 서로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과정에서 화해할 기회를 찾아내고 서로 용서하는 과정이 필요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다만 학생들을 향해서도 “‘남녀공학으로 전환하자’는 생각이 악의적으로 젠더 관점에서 여성을 탄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선의로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럼에도 여대가 필요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멋지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초유의 계엄 시국으로 인해 이번 인터뷰는 한 달만에야 공개된다. 약간의 시차가 있지만 그의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동덕여대 사태는 한 달 전이나 크게 다름 없는 현재진행형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5일 서울 중구 모처에서 진행된 인터뷰 전문이다.

▲오찬호 작가. ⓒ프레시안(이명선)
▲오찬호 작가. ⓒ프레시안(이명선)

“20년 전만 해도 여대 논란에 ‘안전’ 같은 단어 없었다”

프레시안 : 동덕여대 사태가 전국적으로 크게 이슈가 됐다. 2000년대 이후에 단일 학교의 분쟁 사례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이렇게 이슈화된 일이 있나 싶다.오찬호 : 내 기억에도 없는 것 같다. 애초에 시위를 잘 하지도 않았으니까. 이런 시대에 시위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고 용기 있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만 봐도 의미가 큰 사건이다. 물론 그 시위가 과연 좋은 의미로 남을 것인가는 찬반이 있겠지만.

프레시안 : 2008년부터 5년간 동덕여대에 출강했다고 들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오찬호 : 사실 조심스럽다. 아무래도 젠더 이슈가 들어가 있으면 굉장히 지저분한 말들이 오가니까 개입하고 싶지 않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덕여대 사태는 우리 사회에 여러 질문을 던졌고, 말할 거리가 많은 이슈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많은 이들이 동덕여대 시위가 폭력적이라서 문제라고 한다.

오찬호 :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반문명적인 시위’라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도 그랬고. 이 시위가 엄청나게 문명적인 시위라고 할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거다. 그런데 모든 일에는 어떤 사회적 배경이라는 것이 있고, 정치인들이라면 그런 배경을 함께 짚어야 한다. 그런데 저분들은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가지고 문제라고 한다. 굉장히 비겁하다.

나는 이번 시위가 폭력적이지 않았더라도 욕할 사람은 똑같이 욕했을 거라고 본다. 여대생들이 남녀 공학 되는 걸 반대한다는 점이 마음에 안 드는 거니까, 래커칠 안 하고 그냥 대자보만 썼어도 비슷하게 욕했을 것이다. 보수 언론이 노조가 파업할 때마다 비판한다. 그러다가 시위에서 누군가 다치고 하면 그것에 완전 집중해서 보도하는 것과 비슷한 식이다.

노조 파업이나 시위에 대해선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누군가 ‘노동자가 우리 사회의 주류’라고 주장한다면 그에 대해 동의할 수 있나. 누가 봐도 그 주장은 틀린 것이다. 동덕여대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시위 문화에 반대할 수는 있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은 주류가 아니라는 점이다. 더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고 힘을 실어줘야 할 이들이라는 점이다.

최근 20여 년간 우리 사회가 ‘이제 남녀가 어딨냐’ 이런 분위기로 가고 있는 것 같지만, 여성들에게는 극도로 공포스러운 사회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여대 필요성을 논할 때 ‘안전’ 같은 단어를 쉽게 떠올리지 않았다. 스토킹 범죄 혹은 교제 살인 등을 통해 여성이 범죄 사건의 피해자로 등장하면서 여성은 공포를 느낀다. 교제 폭력이나 스토킹 문제를 소홀히 한 결과가 동덕여대 사태 안에 다 들어있다. 시위 방식에 동의를 못 할 수도 있지만, 분노 밑에 이런 사회적인 모순이 깔려 있다는 점은 이해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전 국민이 주목해야 할 정도의 일인가 싶다. 사태가 커지게 된 배경도 짚어달라.

오찬호 : 똑같이 ‘동덕여대 사태’라고 해도 각자 주목하는 게 다르다. 학생들이 동덕여대에서 시위하는 자체를 ‘사태’라고 볼 수도 있고, 동덕여대를 두고 대중이 옥신각신하는 것을 사태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일단 큰 시위가 일어난 상황을 ‘사태’의 시작이라고 해보자.

두 가지 완전히 다른 극과 극의 입장이 충돌한 상황이다. 하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학교 측 주장이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방안을 학교가 고민한 결과가 ‘여대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묶여 있지 말고 공학으로 가자’는 것이었을 테다. 글로벌 시대에 맞춰 진단하고 대안을 내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대단한 악의를 가진 주장도 아니다. 오히려 남녀 공학 전환이 결국 구성원 전체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판단했을 것이다.

문제는 학생들 입장에선 다른 건 다 양보한다 해도 가장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게 바로 여대라는 전통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어떤 학과가 없어진다고 하면 이해할 법한 학생들도 그것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면 학생들 입장에선 애초에 이 대학을 선택할 때부터 성별 변수를 고려한 것이다. 적어도 대학에서는 남성이라는 변수를 제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싶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대에 오는 결정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상극인 두 주장이 만났을 때, 학교 본부가 ‘대학 사회에서 이런 추세가 있긴 한데 학생들 의견도 중요하니 한번 토론을 한번 해보자’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했다면 상황이 이렇게 안 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학교 주장의 전제는 ‘학령 인구가 감소하면 동덕여대는 경쟁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오찬호 : 그렇다고 봐야 한다. 학령 인구가 줄면 지방에서부터 대학이 소멸하기 시작해서 이른바 ‘인서울’ 하위권, 중위권 순서로 타격을 받는다. 지방대가 다 사라지면 그 다음 꼴찌 대학이 될 수 있으니까 걱정을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서열이 심한 사회니까, 대학들이 다 사라져 서울대‧연대‧고대만 남아도 그 중에서도 하나는 최고, 나머지 둘은 서열은 낮은 대학이 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여대에서 공학으로 전환되면 이른바 ‘입결(입시 결과)’이 무조건 올라가나.

오찬호 : 아무래도 여대는 여성들의 수요에 맞춘 학과들로 오랫동안 세팅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은 취업률이 중요하니까 지금은 여대, 남녀공학의 문제보다도 공대 계열 학과가 얼마나 많이 있느냐, 공대 안에 많은 인원이 있느냐가 대학 평가 시 굉장히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일반적으로 여대에는 공대가 많이 없으니까 교수 수급에도 문제가 있고 펀딩 딸 때도 불리하고 그렇게 되면 학교가 크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는 있다.

▲동덕여대 재학생들이 11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운동장에서 '공학전환 반대한다', '민주동덕 지켜내자'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덕여대 재학생들이 11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운동장에서 ‘공학전환 반대한다’, ‘민주동덕 지켜내자’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경을 알면 ‘왜 여대는 역차별’이라는 말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알 것”

프레시안 : 여대 존치 논란은 예전부터 있었다.

오찬호 : 대표적인 게 ‘약대 논란’이다. 전국적으로 약대가 많지 않은데 그 중에 이화여대, 동덕여대에 약대가 있으니까 남학생들은 그게 차별이라고 보는 것 같다. 로스쿨도 마찬가지고. 나는 이걸 역차별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자체에 놀랐다.

‘오죽했으면 여대가 만들어졌을까’가 이 모든 논란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여성들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힘들게 공부했고, 얼마나 힘들게 대학을 갔고, 그런 배경을 알면 ‘왜 여대만 따로 있어. 역차별이다’라는 말이 얼마나 바보 같은 말인지 알 것이다. 적어도 내 세대는 그걸 안다. 약대, 로스쿨 역차별 논란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세대는 그렇게 안 보는 것 같다. 물론 여성들 안에서도 여대나 여성 할당제 같은 제도가 오히려 여성의 능력을 폄하하는 제도다, 필요 없다는 주장이 있는데 충분히 일리 있는 생각이라고 본다. 그런데 사회가 ‘파이팅’ 안 해봤겠나. 다 했다. 그런데 구조를 바꾼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본격적인 제도의 개입이 있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죽했으면 여대라는 게 만들어졌겠나.

만약 여대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현모양처를 꿈꿉시다’라든지 사회적으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방향이었다면 문제였겠지만, 대개 그 반대의 목소리를 내오지 않았나. 사회 전체로 볼 때 그런 목소리가 반드시 필요한데, 구조적으로 여대를 통해 그런 목소리를 더 과감하게 낼 수 있다면 여대는 의미 있는 존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여대가 정말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혹은 페미니즘의 확산을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내왔다고 보나.

오찬호 : 여대 안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 ‘여성이란 틀에 얽매이지 말아라’ 이런 이야기도 있을 수 있는데, 이것도 결국은 여성이 사회적 주체로서 커나가길 바라는 목소리인 것이니까 같은 목적이라고 본다.

여대의 장점이 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대학 MT만 가봐도 느껴지는 게 있다. ‘여자다움’을 더 잘 지키고 따를 때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게 있다. 반대로 여성성이라는 것을 강하게 거부할 때 오는 어떤 모종의 압박이라는 것이 남성 비율이 높은 곳으로 갈수록 느껴진다.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공간에 가면 몸이 느끼는 것이지. 그런데 여대에서는 그런 고정관념에 짓눌리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것이고. 결국 여대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그 판을 깔아줄 수 있는 것도 결국 전통적인 여대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대가 더 늘어나야 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지 않나. 여대가 존재해서 그런 판을 깔아주면, 정말 언젠가는 여대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프레시안 : 그런데 왜 그런 사회적 배경에 대한 고려 없이 여대 논란은 ‘역차별’ 논란으로만 언급되는 것일까.

오찬호 : 지금 일어나는 현상만을 딱 끌고 와서 ‘이거 차별이잖아’, ‘오히려 지금 남성이 더 힘들다’거나 밑도 끝도 없이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지 마라’고 하는 셈이다. 사회적 배경은 보지 않고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말하게 된 원인이 제대로 된 토론 교육을 받지 못한 데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토론 문화가 없다. 한국 사회에서 토론은 곧 ‘배틀’이다. 제대로 대화하고 토론할 기회 없이 사회가 너무 급변해 버리니까 모든 게 다 차별, 역차별이 돼버리는 것이다. 출발선을 조정하고 이런 것들이 사회 제도인데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토론을 하면 ‘이런 맥락이 있었구나’를 받아들이면서 생각이 성숙하게 되는데, 요즘은 그 맥락을 이야기하는 게 어렵다. 애초에 맥락이라는 단어 자체를 부연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학교 수업에 토론이 있긴 하다. 근데 토론을 정말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한다. 모든 것을 다 찬반으로 나눠서 누구는 찬성, 누구는 반대로 지정한다. 우리 막내 아이 학교에서도 페미니즘을 두고 찬반 토론을 하라고 했다더라. 교사들도 페미니즘에 대한 찬반을 나누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모르는 것 같다. 반대 맡은 사람은 반대 논거만 찾아서 공부하고 평생 반대 생각만 하고 욕하고 살게 된다. 그런 토론을 해서는 안 된다. 환경 운동도 마찬가지다. 이게 찬반으로 나눠서 이야기할 소재인가. 환경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 유지하되 찬반 토론을 하려면 운동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에 대해 토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이런 논란이 있는데 왜 이럴까?’ 이것부터가 토론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 나누고 꼬투리 잘 잡아서 이기는 게임을 배운다. 이준석이 그래서 인기가 있는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가서 페미니즘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여성이 우월하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역사적으로 여성에 대한 이런저런 차별이 있었고 그걸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도의 이야기만 했는데도 욕이 가득한 메일을 받았다. 어린 학생들도 이렇게 된 데에는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이준석 같은 사람들 정말 반성 많이 해야 한다.

동덕여대 사태만 해도 학생들을 비판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 그런데 나의 비판이 누군가한테는 ‘페미니즘 미쳤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연료로 사용될 수 있다. 그래서 하지 않으려 한다.

▲오찬호 작가. ⓒ프레시안(이명선)
▲오찬호 작가. ⓒ프레시안(이명선)

“학생들, ‘우리가 잘나가는 대학이었으면 이런 결정 내렸겠어’ 같은 생각했을 것”

프레시안 : 토론이란 게 결국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 아닌가. 이번 동덕여대 사태에서도 학교와 학생 양측 모두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식들이 아쉽다.

오찬호 : 옛날 대학생들이야 어른이고 지성인 대접 받았지, 시대가 바뀌어서 지금 대학생들은 그냥 학생이다. 고등학생은 아니어도 ‘어린 사람’이다. 대학 본부도 학생들을 그렇게 본 것 같다. 동등한 구성원 취급을 안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그걸 느꼈다. 부모 자식 관계, 또는 갑을 관계 같은 상하관계로 느꼈을 것이다. ‘학교는 너희들을 위해서 해주는 건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대지 마’ 같은 메시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느낌을 한 번 받으면 그때부턴 자존심의 문제가 된다. 별 것 아닌 문제도 그런 느낌을 깔아놓고 소통한다는 게 느껴지면 그건 소통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동덕여대 학생들도 남녀공학 전환 문제보다도 학교와의 그런 불통 문제를 핵심 문제로 꼽는다.

프레시안 : 인서울 대학 교수면 흔히 말하는 이름 있는 대학을 나온 사람이 대다수다. 이미 그들의 눈에 학생 자체가 ‘어린 사람’인데다가 심지어 자신들은 소위 말하는 ‘더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이니 동덕여대라는 학교의 학생은 한참 낮은 수준에 있는 사람들로 보일 것이다.

한국 사회처럼 이렇게 서열에 예민한 사회에서는 아무리 어린 사람이라도 귀신같이 그 뉘앙스를 알아챈다. ‘이화여대도 아닌데 뭘 이렇게 여대에 집착하냐’ 이런 신호를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정말 자존감 떨어지게 만드는 태도인데, 그런 학교의 태도가 지금까지 있었을 것이고, 이번 남녀공학 전환 문제를 계기로 ‘끝까지 무시하네’라는 느낌을 줬을 것이라고 본다.

동덕여대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열화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이렇지 않은 대학은 거의 없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간극이 크다. 지방 대학에 다니다 보면 교수들이 이곳이 자기 직장이 아닌 듯한 느낌을 풍긴다. 빨리 여길 떠서 서울로 가고 싶은 게 눈에 보인다. 교수들 딴엔 할 말이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긴 해야 하는데, 학생들 수준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니들이 무슨 명문대라고 뭐 그리 집착을 하냐’ 혹은 ‘너희들이 그러니까 이 모양이다’ 같은 생각들을 하는 거다. 모두 서열에 근거한 생각들이다.

논문 쓰면서 심층 인터뷰를 하다 보면 다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교수들이 하나 같이 ‘우리 학교 애들은 대단히 순박해요’ 뭐 이런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 ‘공부는 좀 못하는데 그래도 말은 잘 듣는다’는 식의 얘기다. 교수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내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도 나온 이야기인데, 소위 명문대 학생이 뷔페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는데, 열심히 하는 다른 학교 친구를 보면서 ‘기특하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스스로 미친 사람 같더라는 것이다. ‘내가 뭔데 저 친구를 보면서 기특하다고 생각을 하는 거냐’고. 학생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교수와 학생 관계에서는 어떻겠나.

동덕여대는 ‘인서울’이긴 하지만, 여대 안에서는 서열이 이화여대나 숙명여대보다는 밀린 위치에 있다. 학생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그런 응어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학교 안에서도 아랫사람 취급을 받으니 굉장히 날것 그대로의 분노로 나오면서 이런 지경에 이른 것 아닌가 싶다. ‘우리가 잘나가는 대학이었으면 학교 측이 감히 저런 결정을 내렸겠어’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분석 자체도 한편으로는 학생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이르기까지 이같은 맥락이 있었다는 점을 짚지 않을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동덕여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손에 꼽는 최상위 대학이 아닌 이상 ‘목표를 달성했다’, ‘경쟁에서 이겼다’라고 말을 하기에 애매한 위치에 있는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을 실제로 인터뷰를 해보면, ‘친인척들한테 어떻게 말을 해야 되지’ 그 고민을 했다는 거다. 그래서 ‘반수할 거다, 재수하려고 한다’ 이런 말들을 마음에도 없는데 막 한다는 것이다. 그럼 최상위권 대학 학생들은 다르냐. 아니다. 똑같다. 이른바 SKY 아닌 학교 학생들은 평생 ‘나는 SKY 가야 할 사람인데’ 이런 한을 갖고 있다. 그게 한국인의 사회적 속성이라고 본다.

그런데 입학할 때는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였어도 보통은 학교 들어가서 친구들이나 선배들 만나면서 학교 생활에 빠지게 되면 그런 걸 잊어버린다. ‘대학 서열 같은 게 다 부질없는 것이구나’ 하면서 성숙해진다. 그럴 때 인문학 공부가 굉장히 도움을 많이 준다. 책을 읽다 보면 세상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지, 대학 순위 같은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 인문학 공부를 안 하면 남이 만든 세상에서 나를 바라봐야 하니까 계속 힘들다. 그런데 요즘 수업들은 다 취업을 향해 달려간다. 서열화를 떨쳐버릴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도 똑같다. ‘거 봐, 너희 열등감 갖기 싫지? 그러니까 더 우리가 과감하게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나오는 것이다. 뒤지지 않으려 조급한 것이다. 그러니까 학생들도 되게 조급해지고. 우리나라의 이런 서열 구조에서 위기의식을 느끼는 모든 대학의 의사결정 과정에선 이런 충돌이 가능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동덕여대 학생들에 대한 비판 댓글들을 보면 ‘떼 쓴다’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학교 구성원이 너희만 있는 게 아니다. 교직원들도, 청소하시는 용역업체분들도 있는데 너희가 떼쓰는 바람에 모두가 힘들어졌지 않냐’ 하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받아들이나.

오찬호 : ‘원래의 것을 유지하자’는 것과 ‘새롭게 뭔가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애초에 결이 좀 다르지 않나. 뭔가 새로 해달라고 하는 것이면 몰라도 지금 상태를 유지해달라고 하는 것을 ‘떼 쓴다’고 말하는 게 맞는 건지 의문스럽다. 그리고 떼 쓴다는 것도 어린 아이를 대하는 듯한 태도인데, 그런 표현만 봐도 학교나 외부에서 동덕여대 학생들을 어떻게 보는지가 보이는 것이다.

▲14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 앞에 학생들이 항의의 의미로 학과 점퍼(과잠)을 던져뒀다. ⓒ프레시안(박상혁)
▲14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 앞에 학생들이 항의의 의미로 학과 점퍼(과잠)을 던져뒀다. ⓒ프레시안(박상혁)

“학생을 적으로 삼는 공동체에서 학생들의 성장이 가능하겠나”

프레시안 : 보통 대학 내에서 중요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나.

오찬호 : 대학의 큰 결정 중 하나가 학제 개편인데 사실 대부분 학제 개편할 때 일방 통보한다. 보통은 학과 폐지에 이르기까지 몇 단계를 거친다. 이를테면 취업률에 따라서 하위 몇 퍼센트에 대해 첫 단계로 경고, 두 번째 단계로 학과 인원 조정, 세 번째 단계로 모집 중지, 이런 단계를 거치고 그 과정에서 토론을 거치기도 한다. 그런데 어차피 사라질 학과들은 소수니까 토론이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보통은 별다른 반대도 없고 ‘올 것이 왔다’ 이런 반응이다. 학교만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식의 체념하는 태도는 직장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요즘 누가 부서 없앤다고 삭발하고 그러나. 그냥 올 것이 왔다 생각하지.

프레시안 : 동덕여대 사태가 고소‧고발전으로 번지고 나서야 든 생각은, 이렇게 기사화가 많이 안 됐으면 이 지경까지는 안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너무 많은 외부의 관심 때문에 오히려 사태 해결이 점점 더 요원해진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찬호 : 악순환이 거듭된 결과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억울하니까 알려야 하니까 더 자극적으로 시위하게 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론이다. 약자 입장에선 외부의 관심 없이는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결국 시위라는 것이 상징적인 퍼포먼스를 통해서 힘을 키우고 의사 전달을 하려는 행위니까. 다만 시위 방식을 좀 더 세련되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긴 하다. 래커칠을 좀 많이 하긴 했다. 학교 측에서 더 하길 바란 덫에 걸리지 않았을까 싶다. 노련하지 않았던 건데, 학생운동사 측면에서 보자면 이런 시위가 근래에 없었기 때문에, 선배로부터 배운 것도 없어서 그냥 날것 그대로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보기 드문 시위로 나타나 버린 것이다.

프레시안 : 응집력이 강하고 시위 양상이 거칠었다는 이유로 외부세력 개입 의혹이 제기됐다.

오찬호 : 외부 세력이란 말 자체가 웃기다. 어느 시위든 비슷한 가치관 가진 사람들이 연대하기 마련이다. 연대 세력이지, 그게 어떻게 외부 세력인가. 예전에 연세대 청소 노동자들 파업할 때 시끄럽다고 소송 걸고 그런 일 있지 않았나. 그런 시위에서 민주노총 같은 외부 사람들이 가서 도와주지 않으면 목소리 내기가 힘들다. 우리는 그걸 옛날에 연대라고 배웠는데 요즘은 무조건 외부세력이라는 표현을 쓰더라. 항의와 갈등, 그런 것을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라기보단 피하고 싶은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증거일 것이다.

프레시안 : 학교가 학생들에 대한 고소‧고발을 물리지 않고 있다.오찬호 : 가장 슬픈 일이다. 기업이 노동자들을 미치게 만들었던, 가장 재갈을 쉽게 물리는 방식을 학교가 학생에게 하고 있다. 노동조합을 미친 듯이 싫어하는 기업 관리자가 노동자들에게 몇억, 몇십억 청구하듯 ‘쟤네는 그냥 평생 빚쟁이로 만들어 놔야 해’ 이런 심산이다. ‘너네 시위할 권리 있어? 그래 해라. 대신 우리는 손해배상 청구할 권리가 있다’ 그 논리인데, 이런 논리를 내세우는 곳을 대학,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나. 학생들이 아무런 맥락도 없이 그냥 술 먹고 기물을 훼손한 게 아니라 학교에도 잘못이 있는 어떤 흐름 속에서 나온 일 아닌가. 고소‧고발하기 전까지 충분히 대화하고 서로 공유할 질문들이 있었을 텐데 그런 건 다 생략해 버리고 바로 고소‧고발전으로 간다? 너무 잔인하다. 학생들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것이다.

프레시안 : 중간에 함께할 질문이 많다고 하셨는데, 어떤 질문들을 해야 했을까.

오찬호 : 우리 사회가 요즘은 모든 게 법대로다. 법대로 해결하라고 한다. 그런데 법원에 의해서 무죄를 받으면 그 사람의 책임은 완전히 사라지나? 절대 아니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무죄 받는다고 끝이 아니란 말이다. 소송을 건다는 건 정말 제일 끝에 있는 이야기다. 그 사이에 서야 하는 사회적인 법정이 있다. 자기들만의 법정이 존재해야 한다.

물론 ‘어른인데 학생들을 보듬었어야지’ 이런 말에도 나는 찬성하진 않는다. 그런 지적도 결국 학교 측과 학생을 상하적 스승과 제자의 관점으로 보는 일이다. 그러나 어쨌든 교육 기관으로서 적절한 대응은 아니다. 학생들이 다 잘했다는 게 아니다. 내가 학교 관리자였더라 하더라도 속 터질 일이다. 하지만 결국은 학교 안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해결하려는 과정이 있었어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수십억 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은 학교가 학생을 적으로 삼겠다는 건데, 그런 공동체에서 학생들의 성장이 가능하겠나. 서로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과정에서 화해할 기회를 찾아내고 서로 용서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게 교육 아닌가.

프레시안 : 말씀 듣고 보니, 교육 과정에서 서로를 용서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오찬호 : ‘학폭위’도 너무너무 슬픈 현실이다. 학폭위 사건 90%가 그렇게 가서는 안 될 사건들이다. 이렇게 말하면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하는데 그런 말이 아니다. 무조건 학폭위로 가는 것만이 피해자가 회복되는 길이 아닌데,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변호사 고용해서 ‘학폭위 가라’고만 하니, 가해자가 되지 않아도 되는 학생들이 가해자가 되는 일이 벌어진다. 누군가는 반성하고, 또 누군가는 용서할 수도 있는 그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그것도 다 우리가 조급하기 때문이다. 돌아볼 여력이 없는 것이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찬호 : 얼마 전 대구대학교 사회학과가 폐지됐다. 이제 모든 대학은 사회학과 같은 학과를 계속 줄이게 될 것이다. 여대도 마찬가지다. 여대 존폐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남녀공학이 되지 않고도 경쟁력을 확보할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남녀공학으로 전환하자’는 생각이 악의적으로 젠더 관점에서 여성을 탄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선의로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럼에도 여대가 필요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멋지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선의로 어떤 변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도록 준비했으면 한다. 그게 바로 성장이다. 페미니즘도 어찌 보면 지금이 기회다. 세련된 언어로 욕하던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 기회 말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다. (끝)

▲동덕여대 재학생들이 11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운동장에서 '공학전환 반대한다', '민주동덕 지켜내자'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덕여대 재학생들이 11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운동장에서 ‘공학전환 반대한다’, ‘민주동덕 지켜내자’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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