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해입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미디어 규제기구들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극단적 행보를 보였습니다. 공영방송은 정권의 전리품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환경 변화에 맞는 제도 설계는 뒷전으로 밀린지 오래입니다. 지금이 제도를 뜯어고치기 위한 적기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미디어오늘이 창간 30주년을 맞아 격변의 해인 2025년 미디어 분야 정책과제를 제시하는 ‘미디어 리모델링’ 연재를 시작합니다. 「편집자주」
777.4점과 437.29점. 2014년 TV조선 재승인 심사 결과 심사위원 간 점수 차가 두 배 가까이 벌어졌다. 652점→779점(OBS), 702점→860점(TBN창원). 2022년 지상파방송사 재허가 심사 결과 문재인 정부 때 치러진 이전 심사에 비해 점수가 크게 올랐다. 정치적으로 부침이 크지 않았던 방송사들임에도 100점이 넘는 점수 차가 발생했다. 정부에 따라 급변하는 방통위의 특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2인 150여건 ‘폭주’… 정부마다 ‘급변’
방통위는 대통령 추천 2인, 여당 추천 1인, 야당 추천 2인 등 5인으로 구성된다. 3대2 구도로 다수 위원을 점한 여권 주도로 논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구성원 다수가 참여한 상태에서 의결한다’는 상식마저 윤석열 정부에서 무너졌다.
윤석열 정부 때는 전례 없는 2인 체제가 이어진다. 2023년 야당 추천 몫인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현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의 상임위원 임명을 하지 않으면서 대통령 추천 2인 체제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2인 체제에서 총 150여건을 의결한다. 공영방송 이사 임명, YTN 민영화 등 주요 사안도 포함됐다. 가처분에 이어 본안에서도 ‘2인 체제 위법’ 판결이 잇따르면서 근간이 흔들리게 됐다. 2024년 야당 주도로 방통위 의결정족수를 4인으로 두는 법안이 통과됐으나 대통령 거부권에 무산됐다.
정권에 따라 방통위는 요동치는데 윤석열 정부 방통위의 행보는 특히 이례적인 면이 많다. 대통령실 주도 설문에 빠르게 호응해 TV수신료 분리징수를 강행하고, YTN 민영화 심사 접수 하루 만에 심사를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 방통위는 2년여에 걸쳐 ‘언론은 가짜뉴스 규제 대상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냈지만 2023년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언론 대상 원스트라이크 아웃 법안’등을 추진해 무력화됐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도 전례 없는 속도로 이뤄졌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공영방송 이사선임 때는 반발이 일자 예고된 의결 일자에서 2주 간 추가 협의를 거쳤다. 반면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첫 출근 당일인 지난 8월1일 이사 선임과 관련한 모든 심사를 2인 체제에서 하루 만에 끝냈다.
방송 사업자 재허가·재승인 심사 역시 희비가 엇갈린다. 2014년 당시 양문석 당시 방통위 상임위원에 따르면 2014년 종편 재승인 심사위원회는 여야 추천 12대 3 구도로 구성될 정도로 균형이 깨진 사례도 있다. 여기에 정성평가 비중이 높아 심사위원회의 ‘자의적 판단’의 여지가 커진다. 문재인 정부 때는 채널A의 검언유착 보도를 이유로 청문을 열고 재승인을 보류했다. 윤석열 정부 방통위에선 MBC UHD방송을 재허가하면서 이례적으로 공정성 관련 조건을 달아 논란이 됐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정성평가가 지나치게 많다는 게 우리의 문제의식”이라며 “심사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콘텐츠 투자는 정성평가라 해도 투자 금액 미달 여부로 평가하면 되는데 공적책임, 공정성은 주관적이다. 심사는 심사위원을 어떻게 뽑느냐가 핵심인데, 결국 방통위의 판단에 좌우된다”고 지적했다.
방통위의 ‘정쟁’은 정치인 출신 위원들이 늘며 커진 면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1기 방통위원장에 대통령의 측근이자 멘토인 최시중씨를 선임해 논란이 됐다. 1~2기 때는 위원장(최시중·이경재)만 정치인 출신이었고 위원들은 공무원, 학자 등으로 구성됐다. 3~4기 때는 정치인 출신 위원이 2명으로 늘었다. 5기 방통위에선 정치인 출신 위원이 과반(안형환, 김효재, 김현)을 점했다. 현 정부에서 이후 방통위원장이 된 이동관, 이진숙 두 인물은 정치인 출신이다.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이다.
실제 방통위원들은 국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2018년 당시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상대편 위원이 티타임 땐 그렇게까지 강하게 얘기하지는 않는데 회의 때는 당에서 지켜보기에 입장을 성명문처럼 강하게 얘기하는 면이 있다”고 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는 “지금 구조로는 산업진흥도 안되고, 정책을 끌어나갈 동력도 없고,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후견을 이길 수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모두 대통령 권한을 분산한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위원을 추천, 임명하는 구조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송경재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방통위 후신인) 미디어위원회를 9명으로 구성한다면 안건 의결 때 3분의 2 이상 찬성하는 특별다수제를 만들어 정착시키면 미디어 공정성 측면에서 많은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2007년 미디어규제기구 개편을 앞둔 가운데 참여정부가 제시한 ‘초안’은 지금과 크게 달랐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면 정부는 국가청렴위원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선거방송위원회 등의 선임 방식을 차용해 방통위 상임위원을 각계각층의 추천을 받아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여야가 정치권 주도의 선임방식을 요구하면서 결국 지금 같은 지배구조가 됐다.
조직개편에 필요한 ‘시민중심 방향성’
방통위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 외에도 기구의 권한이 갖는 문제도 있다. 방통위 부처통합 논의는 10년째 쳇바퀴 돌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규제’와 ‘진흥’으로 각각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찢기면서 부처를 재통합해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랐지만 문재인 정부가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해 조직개편을 하지 못했다. 지상파와 종편은 방통위가, 홈쇼핑과 유료방송채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전담하는 등 어색한 분리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지상파 UHD를 두고 두 부처가 엇갈린 적도 있다. OTT가 부상하자 문화체육관광부까지 3개 부처의 업무가 중복된 일도 있다.
따라서 부처 재조정 논의가 필수적인데, 통합부처를 만들면서도 독립 위원회를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로운 방식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
부처 통합안으로는 여야 모두 지난 대선 때 방통위와 정통부를 통합하고 방송 재허가 등 사안은 별도의 미디어위원회에서 다루는 재편안을 제시했다. 다만 민주당은 문체부의 신문 분야까지 포괄하되 ‘통신’은 제외하는 안을 냈다. 반면 국민의힘은 신문 분야는 통합 대상으로 두지 않고 ‘통신’까지 아우르는 거대 부처안을 냈다. 두 정당 모두 독임제 통합부처를 만들되 별도의 위원회 기구를 만들어 방송 인허가 등을 담당하는 안을 냈다.
심영섭 교수는 방송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는 위원회, 수신료 등 공영방송 재원을 담당하는 위원회 등 복수의 개별 위원회를 두는 방안을 냈다. 그는 “여러 위원회를 만들어 독립된 유관기관으로 두는 방안이 있다. 산하기관으로 두면 정부부처의 장이 통제할 수 있기에 현재 방통위 정도의 독립성은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방통위 산하에 각계 추천을 받은 비상임위원회인 ‘방송공공성정책위원회’를 두고 방송공공성과 관련한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방안을 냈다.
시민을 중심에 둔 조직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유승현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는 “현재 미디어 거버넌스 전반에 이용자는 배제돼 있다. 시민이 참여하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시민 참여+이용자보호’ 전담기구 설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전담기구는 수신료 산정 등 공적재원결정·공영방송협약 의견수렴 및 평가 등 시민의 공공미디어참여, 불법콘텐츠 심의·어린이청소년 보호 등 시민의 안전한 소통보장, 미디어바우처·미디어리터러시 등 시민 소통 등을 담당한다.
지금이 논의를 할 수 있는 적기다. 김동찬 위원장은 “미디어 정부조직 개편 논의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정책 결정 과정을 설계하는 게 난제”라며 “윤 대통령이 파면돼 인수위 없이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경우 정부조직 개편은 또다시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차기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대선공약으로 밝히고,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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