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집회? 민주주의 국가에 불법 집회가 어디 있습니까? 마! 니 그 따구로밖에 공부 안 했나! 이태원 때 아무것도 안 한 주제에 여서 뭐 하자는 긴데? 차 빼!” 지난 21일 ‘남태령 대첩’에서 한 발언자가 경찰을 향해 내질러 SNS에서 화제를 모은 일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2·3 내란사태를 일으킨 지 4주가 지난 가운데 시민들의 대규모 집회는 그 기세를 넓히고 있으며 ‘남태령 대첩’은 주요 국면이었다. 지난 21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농업4법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며 트랙터를 몰고 전국을 돈 농민들이 서울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 차벽에 가로막혔다. 그러나 2030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이 대거 가세했다. ‘무박 2일’ 대치 끝에 경찰이 차벽을 물리며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은 ‘불법집회’ 프레임을 다시 꺼내들었다. 조선일보는 지난 23일 1면에 「부활하는 불법 시위」란 제목의 기사에서 “전국이 윤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로 혼란한 가운데 민노총이 ‘반정부 투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며 “불법 시위가 잦아질 수 있다”고 했다. 다음날엔 「불법에는 법대로 대처하라」는 사설을 실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과 권성동 원내대표는 남태령 시위를 ‘난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도 파장은 미미해 보인다. 집회의 중심이 된 2030 여성들은 이들 보도가 집회 참가자들 사이 “안중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해당 보도를 두고 “말은 이 판을 뒤집을 힘이 없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경찰이 트랙터 행진을 제한 통고하고 막아세운 조치가 오히려 위법이라 짚는 한편 “불법집회란 말이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남태령에서 화제를 모은 발언자 2명에게 불법집회 프레임에 대한 의견과 ‘남태령 대첩’의 의미를 물었다.
신라대학교 학생인 최혜수 씨는 지난 21일 부산역에서 첫 차를 타고 출발해 서울 광화문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에 참여했다. 친구의 롱패딩을 빌려 입고 ‘아무 사람 아무 협회: 우리 여기 있다’라고 쓴 깃발도 손수 마련했다. 광화문 집회 뒤 남태령을 찾아 밤을 샜다. 4시간 넘게 줄을 서 3분 발언을 했다. 한 누리꾼이 “대학생 자유발언 기개 보라”며 트위터(X)에 공유한 50초짜리 현장 영상엔 1만5000건의 리트윗이 이어졌다.
최씨는 통화에서 “꼭 ‘불법집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줄 서서 발언을 기다리는데 경찰 차벽이 움직이며 겹겹으로 대형을 만들더니 경찰 트럭 전광판에 글씨를 내보이더라. ‘불법집회를 당장 중단하고 해산하라’는 내용이었다. 화가 치솟았다. 애초에 차를 빼면 되는데 우리가 불법집회라니 말이 안 되잖나. 발언하러 줄 선 친구들과 ‘(불법집회 주장 비판) 네가 할래, 내가 할까?’ 얘길 나눴다.”
최씨는 “집회는 (허가제 아닌) 신고제인데 미신고 집회는 있을지언정 불법집회는 말이 되지 않는 얘기”라고도 꼬집었다. 경찰의 이번 집회 제한 통고와 차벽 통제가 위법한 공권력 남용이라는 지적이 일찍이 나왔던 터다. 유엔인권이사회는 한국에서 집회·시위가 신고제임에도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된다며 1992년부터 개선을 주문해왔다.
그는 ‘불법 시위’를 주장한 조선일보 보도에 지인들이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애초에 SNS 타임라인에 그런 기사가 올라오지 않아 안중에 없다”며 “SNS를 통해 집회 뉴스를 접하는 이들 중엔 그 기사에 동의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사실 내 주변 20대 청년 거의 모두가 SNS로 뉴스를 접한다”고 했다. 최씨는 해당 보도에도 “그 따우로밖에 못 배웠나”라고 묻고 싶다고 했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부끄러워 붓을 놓은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지, 당신들이 추구하는 언론은 무엇이기에 그런 글을 쓰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21일 새벽 인천에서 출발하는 지하철 첫차를 타고 남태령을 찾은 A씨의 발언도 SNS에서 화제를 모았다. 20세인 그는 발언에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중국인’이라며 16세 되던 해 중국 정부가 그의 신분을 말소시켜 한국 국적만 남았다고 했다. 그는 “1980년대 천안문에서 국가를 향해 저항한 친척들이 있었다. 지금 이 땅에 저는 매국노를 쫓아내고자 여기 있다”며 “한국에 살며 존재를 부정당하는 모든 이가 당당하게 살아가는 민주주의를 바란다”고 했다.
A씨는 불법집회를 언급하는 보도를 두고 “말의 한계”란 말로 일축했다. “아무리 불법집회라 해도 SNS에만 들어가면 사람들이 ‘이게 어떻게 불법집회냐’고 한다. 남부에서 시작해 서울 오는 길 내내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그 추운 남태령에서 경찰버스로 가로막는 건 불법과 폭력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더 많다. 그런 보도로 이 판을 뒤집을 수 없다. 말이 줄 수 있는 타격의 한계, 글의 한계를 이번에 느꼈다.”
A씨는 “만약 현장에 있었다면 그런 보도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모든 사람이 상대방의 건강을 걱정하고, 지치지 않도록 따뜻한 음식을 계속해서 쥐여줬다. 좀 조는 것 같다 싶으면 서로 깨워주고 살폈다. 소리를 지르고, 서로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경험 자체를 쉽게 이길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최씨도 “만약 현장에 있었다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봤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해도 저희가 발언으로, SNS로 계속 이야기를 전달했으니 모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씨는 남태령 시위를 다룬 언론이 담지 못한 부분도 짚었다. 경찰이 앞뒤로 올린 차벽 안에서 느낀 물리적 공포다. 그는 “얼어 죽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서웠다”며 “일부러 축제 분위기처럼 긍정적으로 행동했지만, 사실 모두가 속으로는 걱정했던 것 같다”고 했다. 밤사이 그는 시민들이 지원한 난방버스 출입을 경찰이 막아선 탓에 행진단 주최측 버스에서 몸을 녹였다며 “버스에 잠깐 들어가자마자 오히려 잠이 깨더라. ‘이거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날 남태령에 있던 시민 몇몇이 저체온증 증상을 보였다고 했다.
A씨는 발언 직후 보수 언론의 혐오 공격에 시달렸다. 파이낸스투데이 등은 “(남태령 시위가) 중국인까지 등장한 가운데 불법집회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엔 그가 ‘제주도에서 온 중국인’이라는 헛소문이 퍼졌다. 그는 “중국이 제 신분을 말소시켰다고 한 부분을 빼고 짜깁기한 발언 영상이 돌더라. 살면서 제주도는 딱 한 번 가봤다”고 했다. 그는 “‘너 간첩이지, 너 중국인이지’라면서 CIA를 언급하는 댓글들을 보고 조금은 무서웠다. 내란행위를 옹호하고 싶은 바로 그 사람들이 이런 댓글을 달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A씨는 “발언하고서 나와 같은 분들을 알게 돼 SNS 친구가 됐다. 사회생활을 하며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발언할 때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그런 고민을 지우고 소신대로 발언했다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 확신이 충족감을 줬다. 광장은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했다.
최씨는 정권 퇴진 요구를 넘어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의 싸움에 연대하고 있다. 그는 “처음엔 가만히 있으면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것 같아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외면하고 무임승차하기엔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어서 계속 나갔다”고 했다. 이어 “서울에서 벌어지는 장애인 이동권 집회도 부산에 있으면서 조금 남의 이야기처럼 봤던 것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매주 금요일 서울에 도착해 일요일 아침에 돌아오는 생활을 하며 이달만 교통·숙박비가 200만 원 나왔다. 하지만 최씨는 월급과 장학금을 써 집회를 계속 찾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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