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2월의 어느 새벽이었다. ㈔야생조류보호협회 윤순영(70)이사장은 자연이 내뿜는 풍경을 탐 할 욕심에 카메라 가방을 메고 집에서 얼마 안 떨어진 경기도 김포시 홍도평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카메라를 들고 요리조리 옮겨가며 셔터를 눌러대는 순간, 커다란 몸체의 이름 모를 새 무리가 렌즈에 들어 왔다. 넓은 들판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번잡하지 않은 그 새의 몸짓 하나하나가 그의 눈에는 영락없는 선비의 자태였다.
붙박이처럼 지켜보기를 두어 시간, 잿빛 몸뚱이에 흰색 등줄기와 검은색 날갯짓, 눈가에 또렷한 붉은 반점을 한 재두루미의 거동에 그는 홀딱 반했다. 애비와 어미가 벼이삭에 부리를 갖다 대기를 기다리며 침만 꿀꺽 삼키는 새끼들, 새끼가 먹이를 다 삼킬 때까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 어미, 재두루미의 가족 사랑과 깍듯한 서열중시는 웬만한 인간들보다 낫다는 것을 그는 새삼 깨달았다.
“그때부터 재두루미에 미쳤죠.” 재두루미가 한강하구를 찾는 10월 말부터 러시아로 되돌아가는 이듬해 3월 말까지 여섯 달 동안 그는 동틀 무렵부터 노을이 질 때까지 재두루미를 쫓아다녔다. 하루라도 재두루미를 안 볼라치면 열병이 돋을 지경이었다.
일손은 놓은 채 재두루미에 정신이 팔려 지내기를 열아홉 해, 지난해 왔었던 재두루미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젠 그들의 하루 동선을 꿰찰 만큼 재두루미 박사가 됐다. 벼 베기가 끝날 무렵인 10월15일 이후면 어김없이 김포평야를 찾는 재두루미의 하루 움직임에 대해 그는 대략 이렇게 말한다. 녀석들의 잠자리는 대부분 장항습지다.
아침 6시30분쯤에서 해질 때까지 휴식하면서 먹이를 찾는다. 먹이 장소는 홍도평야와 고촌면 태리평야, 김포IC가 있는 평리, 곡릉천 습지 인근이다. 재두루미는 반경 4㎞안에 있는 이곳 4군데를 오간다. 대부분 한 장소에서 3시간을 넘기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이들의 몸치장 장소는 김포시 풍곡리의 ‘돌방구지’라는 모래둔덕이다.
재두루미의 습성도 그의 손바닥 안이다. 놈들의 비상 방향은 늘 해가 떠있는 반대편이다. 바람은 꼭 마파람을 맞으며 난다. 뒤바람을 타고 날면 날개가 꺾일 염려에서다. 경계의 시선은 확 트인 곳보다는 은폐된 곳이 먼저다. 월동장소를 없애지 않는 한 지난해 머문 곳을 정확히 읽어낼 줄 안다.
재두루미를 알면 알수록 윤 이사장의 생활은 쪼그라들기만 했다. 재두루미에 홀릴수록 그의 호주머니는 비어갔다.
“비록 내가 가진 것은 모두 잃었을지라도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재산은 늘지 않았나요? 나만이 느끼는 행복감이라고나 할까요.” 없는 돈에 사비까지 털어 모이주기를 19년. 그 노력이 가상해서인지 1992년 7마리에 머물렀던 재두루미는 2010년 120마리로 불어났다.
“아직도 성에 차지 않아요. 1980년대에는 2천여마리의 재두루미가 김포평야를 찾았는데요, 뭘~” 그의 걱정은 도시개발로 좁아지는 철새들의 서식지다. 먹이를 구하는 논바닥이 없어지면 철새는 떠나는 법이다.
아니나다르까. 지난해 겨울 태리에서 본 재두루미 7마리가 고작이었다. 올해 겨울은 돌방구지에서 본 재두루미 12마리가 전부였다. 홍도평야에서는 아직 재두루미를 구경 못했다. 윤 이사장은 말한다. ‘자연의 섭리를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하지 말자.’
/박정환 선임기자 hi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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