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아프리카 콩고 분쟁 지역에서 생산되는 광물을 제품 생산 과정에 활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이 유럽 일부 국가의 애플 자회사를 상대로 현지 사법당국에 관련 내용을 고소하면서다. 이번 소송에서 사실관계가 밝혀지면 향후 애플은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럽연합(EU)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모두 분쟁광물 사용을 규제하기 때문이다.
31일 관련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민주콩고는 12월 16일(현지시각) 프랑스와 벨기에 현지의 애플 자회사를 상대로 형사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이 자국 내 무장단체가 활동하는 동부 지역에서 불법 채취한 광물을 제품 생산에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애플은 17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공급망에 있는 제련소는 민주콩고와 인근 국가의 무장단체에 혜택을 준 적이 없다”며 “광물 대부분은 재활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美·EU 분쟁광물 공시 의무화, 애플은 10년 동안 “공급망 이상 없다”
문제가 된 광물은 3TG라 불리는 탄탈룸·주석·텅스텐이다. 해당 광물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의 핵심 원자재로 사용된다. 이 광물은 콩고 내 분쟁지역에 주로 매장돼 있다. 동부에서 활동하는 반군 단체인 M23 등 무장 세력이 자금줄로 활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들어 해당 광물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무장 세력이 광물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인권유린, 강제노동 등 불법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이유다. 따라서 기업이 이렇게 생산된 광물을 사용하면 범죄에 일조하게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미국과 유럽 등 국제사회에서 이를 분쟁광물로 정의하고 사용을 규제하는 배경이다.
미국 SEC는 2014년부터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분쟁광물 사용 현황과 공급업체 실사 결과를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EU 역시 2021년부터 역내 사업하는 기업이 분쟁광물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했다. EU는 또 최근 강제노동 관여 제품을 역내에서 판매 금지하는 규정을 2027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애플도 2014년부터 매년 연례 협력업체 책임 보고서를 내 협력업체 명단을 공개하고 실사 내용을 공유해 왔다. 애플이 올해 3월 공시한 2023년도 보고서에서도 실사에 협조하지 않거나 분쟁광물 미사용이 확인되지 않은 제련업체 14곳을 공급망에서 제외했다고 돼있다.
애플은 “2023년 12월 31일 기준 애플 공급망 내 콩고 무장 단체에 직간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했다는 합리적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민주콩고 “애플 공급망에 콩고→르완다 밀수입 광물 쓰는 제련소 7곳”
그러나 올해 민주콩고는 애플이 광물 공급망이 무장 단체와 연관돼 있음을 알고 있는데도 이를 묵인했다고 주장하며 애플에 소명할 것을 요구해 왔다.
민주콩고의 국제 변호인단을 맡은 ‘암스테르담&파트너스 LLP’는 올해 4월 일부 고발자로부터 애플의 공급망에 분쟁광물이 여전히 포함돼 있고 애플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에게 관련 내용에 관해 4주 내로 해명할 것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콩고 변호인단은 올해 4월 보고서를 통해 2014년 콩고 북부 키부 지역 루바야 콜탄 광산마을에서 무장 세력에 의해 생산된 탄탈룸이 르완다로 밀수됐다고 밝혔다. 당시 이를 알아낸 유엔 조사관은 해당 광물에 국제주석공업연구소 공급망 추적체계(ITSCI) 표식이 부착된 채 유통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애플 역시 ITSCI를 공급망 인증 체계로 활용하고 있었다. 같은 해 애플은 공시에서 “애플 공급망 내 탄탈룸 제련소에는 분쟁광물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애플이 2022년 ITSCI를 인증목록에서 제외했다고 하지만 아직 애플 공급망에 세탁된 광물이 유통된다고 주장한다. 현재 애플 공급망 내 일부 제련소가 콩고에서 르완다로 밀수된 광물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미네랄 서플라이 아프리카(MSA)의 책임자인 데이비드 벤수잔이 3TG를 콩고에서 르완다 국경을 넘어 트럭으로 운송해 글로벌 시장에 유통시키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MSA로부터 광물을 구매한 것으로 조사된 제련 업체는 글로벌 어드밴스드 메탈(일본), KEMET(멕시코), 말레이시아 제련 조합(말레이시아) 등 애플에 원자재를 납품하는 업체 7곳이 포함돼 있다.
변호인단은 “애플이 답변을 못하는 것은 분쟁광물 사용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다”라며 “변호인단은 의뢰인인 민주콩고로부터 수집된 증거를 바탕으로 미국법과 프랑스법에 따라 어떤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 결정하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알면서도 모른척” 주장 사실이면 애플, EU·SEC서 타격 불가피
민주콩고가 이번에 프랑스와 벨기에 사법당국에 제소한 것은 유럽 당국이 기업 규제에 강경 태세를 보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앞서 올해 3월 일부 개인이 미국 법원에 애플 등 빅테크 기업이 콩고와 인접 국가의 강제노동에 연루된 광물을 사용하고 있다고 제소했으나 미국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또 민주콩고는 콩고는 유럽 국가의 식민지였던 만큼 관련 자원 유출에 관해 유럽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관련 규제 위반 여부는 다루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시를 의무화한다는 내용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다. 애플은 규제가 시작된 이후 매해 공시를 해왔다. 쟁점은 분쟁광물이 실제 애플 공급망에 포함됐는지와 애플이 이를 인지했는지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콩고 변호인단은 애플의 ESG 경영·광물 조달 담당자가 르완다 수도 키갈리 지역 출장 중에 MSA 관련 정보를 인지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이번 소송에서 민주콩고 측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면 EU와 SEC는 애플을 상대로 허위 공시 등으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애플은 손해배상과 더불어 공급망 재편에 막대한 자금 투입이 불가피해진다. 또 2027년부터 발효되는 EU 역내 관련 광물 전면 판매 금지에 따라 유럽 지역 사업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콩고는 프랑스와 벨기에 사법당국의 제소 인용 여부에 따라 기술 기업 상대 고소를 확대할 계획이다. 민주콩고 변호인단인 암스테르담&파트너스 LLP의 보고서에 공개된 MSA 거래 제련소는 인텔, 보잉 등 다른 빅테크 기업 공급망에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변호인단 대표인 로버트 암스테르담 변호사는 “이번 고소는 콩고 정부가 주요 기술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최초의 형사 고소다”라며 “이는 단지 선제 공격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홍찬 기자
hongch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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