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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족이 직접 알아보고 다녀야 해” 정부 늑장대처에 분통 터진 유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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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신원 확인 희생자 안내하겠습니다. 이XX, 정XX, 박XX…”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틀째인 30일, 사고 수습 당국 및 유족 대표단이 조사 진전에 따라 고인의 신원을 새로 발표할 때마다 안내 데스크에는 가족의 이름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하루아침에 자식을 떠나보내게 된 어머니는 “내 새끼 살려내.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며 눈물을 흘렸다. 한 유족이 울면 애써 울음을 참던 다른 유족들도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공항 2층 브리핑실 옆 유족들이 쉴 수 있게 설치한 천막에서는 사람이 낸다고 믿기 어려운 소리가 나곤 했다. 유족들과 공항 관계자, 기자들이 사고가 난 줄 알고 달려간 곳엔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비명을 지르는 유족들이 있었다. 이를 확인한 사람들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30일 무안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이 사고 수습 당국에 수습 경과를 문의하고 있다.ⓒ프레시안(박상혁)
▲30일 무안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이 사고 수습 당국에 수습 경과를 문의하고 있다.ⓒ프레시안(박상혁)

“어제 (고인의) 시신을 확인하고 오늘 장례를 치를 줄 알고 있었는데, 알아보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훼손된 시신들을 맞추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잖아요. 이걸 처음부터 알려줘야지 왜 유가족이 직접 알아봐야 하느냐고요!”

하루 종일 수습 진행 경과만 기다리고 있는 유족들은 직접 묻기 전에 먼저 상황을 설명해주지 않는 당국의 입장에 분노했다. 격앙된 표정의 유족들은 수시로 안내 데스크에 수습 현황을 물었지만 대부분 답을 듣지 못했다. 데스크에 머무는 직원들은 “저도 파견 나온 직원이라 자세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쩔쩔매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유족들은 답답해했다.

참다 못한 유족들은 “내가 책임자가 아니”라는 국토부 관계자를 에워싸고 녹음기를 켠 뒤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상급자에게 당장 연락해 내일 오전까지 유족들의 요구사항에 대한 답변을 주겠다는 약속을 달라고 요구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화연락한 상급자에게 “지금 유족들이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었다”고 말한 뒤 상황을 설명하고 해당 사안을 바로 논의하겠다는 답을 받아냈다. 유족들은 “꼭 내일 답변을 달라”며 흥분을 가라앉힌 채 제자리로 돌아갔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이 30일 무안국제공항을 찾은 사고 수습 당국에 항의하고 있다.ⓒ프레시안(박상혁)
▲무안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이 30일 무안국제공항을 찾은 사고 수습 당국에 항의하고 있다.ⓒ프레시안(박상혁)

전남경찰청, 국토교통부, 제주항공 등 수습 책임자들이 상황 설명을 위해 열었던 브리핑은 유족들의 원성을 샀다. 당장 사고 수습 당국의 설명을 듣기 위해 몰린 유족들의 규모에 비해 당국이 준비한 스피커의 소리 크기부터가 너무 작았다.

유족들은 브리핑 내내 “분명 어제 소리 크기를 개선해달라는 요구만 세 번을 했는데 어떻게 마이크 하나 개선을 못 해주나. 뒤에 있는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항의했다. 당국이 “최대한 빨리 개선하겠다”고 형식적으로 답하자 분노한 유족들은 “몇시까지 바꾸겠다고 확답을 줘라”고 고함을 질렀다. 유족들이 거세게 항의한 뒤에야 당국은 스피커 소리가 브리핑장 뒤편까지 들리도록 조치를 취했다.

유족들은 시신 훼손이 심각해 검안을 마치고 장례를 치르기까지 열흘 넘게 걸린다는 당국의 발표에도 혼란스러워했다. 당장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훼손된 상태의 시신을 인도받을 수 있다는 경찰의 안내를 받은 유족들이었다.

이번 참사로 부모님을 모두 잃은 김모(42) 씨는 「프레시안」과 만나 “오늘 아침 무안경찰서에서 ‘(사체 수습을 더 기다려도) 찾지 못할 수 있다. 화재 때문에 다 타서 없어졌을 수도 있다’며 서둘러 시신을 인도받으라고 종용하라는 취지의 연락을 받았다”며 “브리핑에서 나온 안내와 상반되는 연락에 너무 불쾌했다”고 토로했다.

생업을 포기하고 공항으로 찾아온 유족들 중에도 장례가 미뤄지는 것에 “기력도 없고 밥맛도 없다. 1000여명의 유족이 기다리는데 진행되는 게 없으니 갑갑하다”며 “이 사태가 앞으로 얼마 더 갈지 모르니 혼란스럽다. 빨리 진행해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했다.

▲30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살려내. 살려내. 살려내. 제발 살려내라고…”

제주항공 관계자가 유족 대표단과 협의한 보상안을 발표하러 나오자마자 곡소리가 쏟아졌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장례, 숙박, 이동 등 참사 수습과 관련해 유족들에게 필요한 모든 직간접 비용 전체를 지원하고, 민형사상 책임 등은 추후 별도로 책임지기로 했다. 누구도 이러한 보상안의 적절성을 따지거나 관계자를 비난하지 않았다. 다만 죽은 가족을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소리 지를 뿐이었다.

“여러분들의 슬픔과 희생을 무슨 말로도 위로할 수 없겠지만 경영진의 한 사람으로서, 저도 한 아버지로서, 한 자식으로서 여러분들의 슬픔에 깊이 통감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족 측)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부분들은 사실이고 이외에도 여러분들이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고 안심할 수 있다면 뭐든지 최선을 다해서 책임지고 어떤 조치에도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참사 피해자 지원방안을 말하는 동안 손을 벌벌 떨며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표단이 합의 내용을 재차 확인할 때에도 겨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30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난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30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난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금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어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을 비롯해 정부의 모든 관계자들이 시신의 가는 길을 잘 모시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도 중앙당 차원에서 최대한 협력하고 도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공항을 찾아 발언하는 동안 유족들은 굳은 표정으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권 위원장이 처음 악수를 청한 유족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그가 자리를 비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권 위원장은 첫 악수를 거절당한 뒤에도 유족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악수를 청했고, 수많은 촬영 기자들은 그의 사진을 찍기 위해 유족들을 헤집고 다녔다.

권 위원장 외에도 우원식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정치인들은 줄지어 공항을 찾아왔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오후 10시 40분경 공항을 찾아 늦은 밤까지 브리핑 실을 지키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유족들과 자원봉사단에게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당국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다음날 오전까지 유전자 검사를 모두 완료해 신원미상자의 신원을 모두 파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시신 중 비교적 보전이 잘 된 90체에 대해서는 유족들의 의사에 따라 장례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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