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 경쟁력 제고 위한 은산분리’ 좌담회
“디지털 변혁 거스를수 없는 흐름…규제한도 적절한지 검토해야”
“큰 위기 닥치면 산업 부실 금융 시스템 리스크 전이 우려도”
한국 금융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제한) 완화 방안이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금융업계는 금융경쟁력 강화를 앞세워 규제 완화를 압박하고 있고 여당 등 정치권은 재벌의 사금고화, 금융시스템 안정성 등을 이유로 물러서지 않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은산분리 원칙 준수’를 공약함에 따라 은산분리 규제 완화와 관련해 새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주목된다.
최근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IT회사’를 선언하고 핀테크 기업 인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자료 분석 소프트웨어 회사 켄쇼, 온라인 자산관리 사이트 어니스트 달러, 인터넷 신용대출 사이트 마르커스닷컴 등을 세우며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이웃나라 중국은 세계 100대 핀테크 그룹 상위 5곳 중 4곳이 중국 기업일 정도로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반면 한국 금융산업 경쟁력은 세계 80위권에 불과하다. 엄격한 은산분리 규제가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 4월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 돌풍과 오는 7월 카카오뱅크 출범 등으로 은산분리 완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러한 가운데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조선비즈는 핀테크 관련 세계적인 석학인 패트릭 머크 하버드 법대 교수와 존 콜린스 국제은행연합회 부총괄, 마르코 산토리 국제통화기금(IMF) 핀테크 전담 변호사, 오정근 건국대 교수(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윤석헌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과 함께 산적한 현안의 답을 얻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자리를 마련했다.
◆ “美 월마트 은행 인수때 은산분리 악용, 韓 규제 적절한지 검토 필요”
진행자: K뱅크 돌풍이 심상치 않다. 카카오뱅크도 곧 출범할 예정인데, 금융 패러다임이 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은 분명한 듯 하다. 미국에선 월마트의 은행업 진출 시도 등을 겪으면서 이런 논의가 활발했던 것으로 안다.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패트릭 머크 교수: 미국은 오래전부터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하는 금산분리 원칙이 고수돼 왔다. 다만 규제 정도가 한국과 다르다. 법적 최대 소유지분은 25%로 돼 있지만 15%이상 지분을 가져가면 경고하도록 돼있다. 연준(FRB)에 보고되고, 적절성 여부를 심사· 평가한다. 한국의 은산분리 완화 여부는 위험과 혜택을 모두 고려해 균형적인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진행자: 월마트의 은행 소유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 월마트가 은행을 소유했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인가.
머크: 월마트가 은행업을 신청했을 당시 정치적 논란이 있었다. 월마트 측은 매장 이용 서민층을 대상으로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면 좋겠다는 의도에서 신청했는데 결국 기각되고 승인이 안됐다. 반대론자들은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이로써 월마트를 이용하는 많은 서민 고객의 은행 접근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서민들이 일반 은행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기회가 사라진 게 안타깝다.
진행자: 정치적 논란이 있었다는 말의 뜻은 기존 금융사가 은산분리를 내세워 막으려 했다는 것인지.
머크: 그렇다. 미국의 기존 금융기관들은 경쟁이나 새로운 금융기관들의 진출을 막기 위해 은산분리 규정을 악용한 사례가 많았다. 한국도 은산분리가 악용되지 않고 경쟁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현행 규제에 대한 적절한 검토가 필요하다. 금융산업 혁신을 위해선 자본이 투자돼야 한다. 현 규제가 지속되면 이런 투자활동이 저해될 수 있다.
윤석헌 교수: 나는 은산분리 완화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국은 현재 중소기업·벤처를 키워내야 하는 상황이다. 은행이 큰 사명감을 갖고 역할을 해내야 한다. 그런데 인터넷전문은행은 이를 제쳐두고, 소매부문에만 주력하고 있다. 미국의 산업대부회사(Industrial Loan Company; ILC)처럼 한국엔 저축은행이 있다. 우리도 저축은행 방식으로 인터넷전문은행 허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머크: 한가지 분명한 것은 디지털 변혁은 거스를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발전은 은행이나 금융권에서 신용평가를 하고, 등급과 대출을 결정하기까지 과정에 분명히 영향을 줄 것이다.
오정근 교수: 한국의 금융 규제가 많은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랐을 것이다. 우리 금융산업은 굉장히 낙후된 상황이다. 가장 큰 이유는 주인이 없어서다. 돈을 가진 사람은 은행을 갖지 못한다. 의결권 있는 주식의 지분 4%까지만 가능하다보니 은행을 소유할 유인(인센티브)이 없다. 정부가 금융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유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이 전통 금융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10년전 동북아 금융허브를 꿈꿨지만, 지금은 생각도 못할 상황이다.
존 콜린스 부총괄: 미 상원에서 자문을 제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 보겠다. 한국에서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한도를 34%와 50%로 늘리자는 법안이 나왔다고 들었다. 이를 어떻게 결정하느냐는 정치적 결정이다. 정책 입안자 입장에서는 현재 규제가 한국의 금융산업에 알맞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1970년도와 비교해 소비자 양상이 상당히 달라졌다. 한국의 금융산업이 국제적 경쟁력을 키우는 데 4%라는 한도가 적절한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 “인터넷은행, 중저소득층에 도움” vs “신용리스크 커질 우려”
진행자: 미국은 워낙 넓다보니 금융기관 접근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핀테크가 발전한 것도 이러한 영향이 있었을 것 같은데.
콜린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많은 은행들이 지점을 없앴다. 이후 접근성이 떨어져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시중은행과 거래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은행도 수익이 많이 나지 않는 고객층이라 영업을 열심히 하지 않는 편이다. 미국의 온라인 대출 서비스는 이렇게 자금 조달이 어려운 계층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페이팔 워킹캐피탈 전체 대출 고객의 35%가 중저소득층으로 일반은행(21%)에 비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진행자: 그 이야기는 온라인 금융서비스가 취약계층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얘기로 해석되는데.
콜린스: 키바(KIVA)라는 온라인 렌딩 플랫폼을 분석해본 결과, 여성의 온라인 대출 비중이 53%로 시중은행(36%)보다 많았다. 자영업을 하는 소수인종의 대출비중도 시중은행(14.6%)보다 많은 63%였다. 온라인 금융서비스가 취약계층에 도움되는 측면이 있다.
오: 최근 한국의 K뱅크가 출범했다. 조사 결과 K뱅크의 평균 대출액은 1인당 511만원이었다. 고객의 연령대는 30~40대가 주를 이뤘다. 바빠서 은행에 못가는 소비자들이 모바일로 소액대출을 한다는 뜻이다. 신용등급 1~4등급은 6~7% 금리의 은행 대출이 가능하지만, 중위권(5~6등급) 신용등급을 보유한 1200만명 이상의 소비자는 21% 고금리의 저축은행을 이용해야 했다. 이제는 중위권 신용등급 소비자들이 인터넷은행을 통해 10% 안팎의 중금리 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
윤: K뱅크 데이터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역사가 너무 짧고 금액도 너무 적다. 최근에 P2P대출에서 신용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머크: 한국 저축은행 대출금리가 21%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미국에선 불법이라고 할 정도로 고금리다. 최근 미국 은행들이 온라인대출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대출 채권을 매입하는 것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온라인 대출 플랫폼이 일종의 대출 실행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은행과 온라인 대출업체간 연결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진행자: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온라인 금융사의 신용리스크가 시중은행으로 전이될 우려는 없나.
머크: 미국은 지방은행도 많아 온라인 대출 플랫폼의 채권을 매입할 때, 자기 지역의 대출 채권을 매입한다. 지방은행으로서 이 지역의 고객 서비스하겠다는 정신을 지켜나가겠다는 것도 굉장히 흥미롭게 보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의 데이터가 축적되고 투명성이 강화됐기 때문에 신용리스크가 전이될 우려는 낮다.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윤: 은행은 자원 배분 기능에, 기술회사는 기술에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 은행과 제휴를 한다던지, 투자를 한다던지 아니면 P2P처럼 채권을 매입한다던지 해서 연결고리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오: 인터넷전문은행의 중금리 대출이 가능한 이유는 지점이 없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은 좋은 위치에 비싼 임대료를 내고 있다. 인터넷은행은 본사가 어느 곳에 있어도 상관없다. 지금은 금산분리, 은산분리가 아니라 금산 컨버전스 시대다. 역행하면 모든 산업이 뒤지게 된다.
머크: 은행업에 신규 진출하는 회사라면 많은 돈을 들여 지점을 만들 수 없다. 대신 모바일 플랫폼, AI, 데이터 알고리즘, 머신러닝 등을 이용해 영업하는 것이 당연하다. 앞으로 은행의 신규 진출은 효율성·비용 접근 측면에서 온라인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다.
◆ “핀테크 사업모델 정교화, 리스크 줄어…실업 우려는 기우”
윤: 아까 미국 온라인 대출서비스가 자영업자·저신용자에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했다. 이런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두 가지 요인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금융 상품 모델이고 두번째는 고객의 퀄리티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두 요인 모두 우리나라에 추후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인이어서 궁금하다.
콜린스: 전통 금융상품에 비해 역사가 짧은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P2P 대출은 우려도, 걱정도 많았다. 고객을 잘못 선정해 돈을 떼인 적도 있었다. 프로스퍼·렌딩클럽 등은 생긴지 10년 정도 됐다. 이들은 플랫폼 상에서 사업모델을 정교화하고 있고, 10년 기간 동안 경험치가 쌓였다. 이제는 고객 평가방법과 핀테크 기술 자체도 스마트해지고 있다.
오: 우리나라는 핀테크 역사가 2년도 안됐다. 핀테크는 신용 리스크와 감독당국이 불명확하다는 논란에도 거부할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AI 회사를 인수하면서 “우리는 금융회사가 아니다”고 했다. AI와 융합하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힘들어진다. 골드만삭스의 발언이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윤: 한국 은산분리가 엄격한 이유는 경제적·역사적 배경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산업 부실화가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우리는 경험했다. 한국 경제가 대기업에 의해 주도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금융까지 종속되면 시스템 리스크가 더욱 커질 수 있다. 국민들이 은산분리 이슈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진행자: 핀테크의 발전으로 실업이 늘지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대면, 온라인 서비스가 확대된다면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머크: 사실 변호사도 일자리를 걱정할만큼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자동화에 의해 모든 업종이 실업 위기에 놓여있다. 금융업이 첨단기술로 효율성이 좋아진다면, 자금 조달이 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창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은행 창구 직원 일자리는 줄겠지만 다른 일자리들은 늘어날 것이다.
진행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도드-프랭크법을 폐기하겠다고 했다. 도드-프랭크법 폐기가 핀테크 산업 규제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가.
마르코 산토리 IMF 핀테크 담당 변호사: 트럼프 대통령이 무엇을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트럼프를 이해할 수 있으면 나에게 설명해 주길 바란다. 공화당 출신들은 규제 완화를 자주 언급하지만 민주당 출신들은 규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도드-프랭크법은 폐지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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