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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을 읽는 새로운 시각] ⑤ “한국 저출산 원인 중 하나는 ‘남성’…문화 바꿔야”

조선비즈 조회수  

한국 정부가 지난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부은 예산은 279조9000억 원.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당장 올해 3월 출생아 수는 1만966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 감소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물론 현 정부는 각종 재정 지원책은 물론 출산을 꺼리게 하는 경제·사회 구조를 바꾸는 처방을 내놓으며 ‘아이를 낳아라’고 외친다. 하지만 이 방법이 최선일까. 저출산 관련 책을 쓴 저자로부터 저출산의 원인과 해결법, 저출산에 직면한 한국이 나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편집자 주]

“유수연은 스물세 살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고, 박지혜는 스물네 살로 국제관계에 관심이 많고, 심수진은 스물세 살로 국제통상을 전공하고 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한국 최고 대학인 서울대학교의 대학원생이다. 자기 의견이 분명하고 매사에 야심만만하고 매우 영리한 그들은 시험 점수와 졸업 그리고 졸업 후 취업에 관심이 쏠려 있다. 결혼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아빠는 내게 결혼하지 말라고 해요.’ (중략) ‘게다가 괜찮은 남자를 만나는 건 정말 힘들어요. 그런 남자를 만나지 못하면, 그냥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라는 게 아빠 생각이에요.’ 아이에 대해 수연은 ‘결혼한다면, 하나만 낳을 거예요’라고 단언한다. 나머지 두 친구도 같은 생각이다. 아예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는다면 한 명만 낳을 것이고 그 이상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텅 빈 지구' 공동 저자인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 퍼플릭 어페어스의 최고경영자(CEO)인 대럴 브리커가 조선비즈와 줌(Zoom)으로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정미하 기자
‘텅 빈 지구’ 공동 저자인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 퍼플릭 어페어스의 최고경영자(CEO)인 대럴 브리커가 조선비즈와 줌(Zoom)으로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정미하 기자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 퍼플릭 어페어스의 최고경영자(CEO)인 대럴 브리커, 캐나다 유력지인 ‘글로브 앤드 메일’의 대표 저술가인 존 이빗슨이 쓴 ‘텅 빈 지구’(부제: 다가오는 인구 감소의 충격)에 나오는 한국 관련 내용 중 일부다. 두 사람이 책을 펴낸 것은 2019년. 그로부터 5년이 지났지만, 한국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한국이 고령화 경고음을 울리며 각종 대책을 쏟아낸 것을 감안하면, 상황은 오히려 악화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책 속에 소개된 한국 여성이 기대하는 아이는 하나. 이는 대체출산율(인구가 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출산율로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2.1명이어야 함)을 밑돈다. 결혼과 임신에 긍정적인 사람들이 늘었다 치더라도 한국 인구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브리커 CEO는 최근 진행한 조선비즈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저출산 문제를 시장 실패로 보고자 하지만, 이는 문화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며 “저출산이라는 상황을 늦출 수는 있지만, 역전시킬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아직도 저출산과 인구 감소가 일어나지 않을 거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이런 생각을 극복해야 하고, 저출산과 인구 감소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고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책 속에 한국에서 직접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을 택한 기준은 무엇이었고, 한국 사례를 책에 담은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에 가서 인터뷰를 한 건 공동 저자인 존이다. 존이 조영태 서울대 교수에게 연락했고, 조 교수가 인터뷰할 여성을 소개해 줬다.”

─책에 당신의 나라 캐나다와 일본, 아프리카 외에 한국 사례를 담은 이유는.

“한국을 책에 포함한 것은 5년 전이었다. 통계를 봤더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너무나 분명했다. 이에 한국 출산율이 감소하는 이유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이유, 더불어 문화가 변하면서 다음 세대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예전만큼 큰 우선순위가 아니게 된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존과 나는 한국인들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가 책을 쓴 이후 인구 감소 속도가 얼마나 빨라졌는지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인천 미추홀구 아인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신생아들을 돌보는 모습. / 뉴스1
인천 미추홀구 아인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신생아들을 돌보는 모습. / 뉴스1

두 사람은 책에서 “한국 여성들이 결혼과 엄마 되는 것을 뒤로 미루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 남성”이라고 꼬집는다. 밀레니얼 세대 남성들은 자신들이 부모 세대보다 더 깨었고 가사노동과 육아 책임을 아내와 기꺼이 함께한다고 주장하지만, 통계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 두 사람은 “한국 남성들이 가사 노동에 쓰는 시간은 적고, 여성의 가사에 대한 의무는 아이를 낳기 위해 회사를 휴직하는 여성들에게 불리한 연공서열 기반의 보수 체계와 맞물려 한국 여성들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이 갖는 것을 더욱 힘들게 한다”며 “이런 체제는 잘못된 국가의 보육 정책에 의해서, 또는 보육 정책의 부재에 의해서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더 가혹한 형태도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저출산 원인 중 하나로 한국 남성을 꼽았다. 한국에서도 흔치 않은 분석인데, 어떻게 알게 됐나. 5년 전 책을 쓸 때와 분석이 달라졌나.

“한국 여성들과 대화해서 얻은 결론이다. 존이 서울대에서 젊은 여성들을 만나 ‘가족을 갖는 것을 왜 미루는 거냐’고 묻고,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에서 여성의 태도가 극적으로 변하지 않았고, 남성의 태도도 그렇게 빨리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사 노동, 육아 등의 측면에서 남성의 역할은 여전히 큰 장벽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 상황이 극단적일 수는 있지만, 전 세계에서 꽤 일관되게 나타나는 문제다.”

─어떻게 하면 한국 남성이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도록 할 수 있나.

“문화를 바꾸는 방법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밖에 없다. 남성에 대한 기대치가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출산율 저하를 해결하는 데 참여할지 말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고, 참여하지 않을 경우 결과는 눈에 보인다. 다만 출산율 저하가 한국 남성들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보다 한국 여성들이 ‘미래에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기대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나는 할머니가 살았던 삶을 살지 않을 거야’, ‘나는 기업의 리더가 될 거야’, ‘나는 무엇이든 할 거야’라고 말하는 여성들이 늘어난 것 역시 출생률 저하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분석한 또 다른 한국의 출생률 저하의 원인은 도시화다. 이에 대해 설명해달라.

“도시화는 여성의 권한 강화, 여성 교육의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출생률 하락으로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서 여성의 교육률이 높은 나라는 출산율도 가장 빠르게 감소한다.”

한 엄마와 아이가 서울시내 한 직장어린이집으로 향하고 있다. / 뉴스1
한 엄마와 아이가 서울시내 한 직장어린이집으로 향하고 있다. / 뉴스1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면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보나 부정적이라고 보나.

“긍정적, 부정적이 아닌 도전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도전은 르네상스 이전 시기의 흑사병 이후 우리가 결코 마주하지 못했다. 특히 20세기 동안 인구는 계속 증가했기에 우리는 인구가 급속히 고령화하고 감소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인구 감소는 도전이 될 수 있다. 기회도 있을 것이며 위협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구 감소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상황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제 과제는 인구 감소에 대비하는 것이다. 인구 감소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생각은 극복해야 한다.”

─인구 감소를 되돌리기 위한 각종 정책이 시행 중인데, 불가능하다는 뜻인가.

“인구 감소를 반전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이니셔티브를 사용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다시 말해 인구 감소를 늦출 수는 있지만 역전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문제가 무엇인지 잘못 인식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인구 감소를 시장 실패의 한 측면으로 보고 싶어 하는 듯하다. 먼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기에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아이를 낳을 것으로 생각한다. 두 번째, 아이가 있는 여성이 회사에서 겪는 불이익을 줄인다면 더 많은 여성이 아이를 낳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여성에게 ‘아이를 키우는 데 비용이 전혀 들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하고, ‘여성이 엄마가 된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겁니다’라고 보장한다고 여성들이 3명의 아이를 낳을까.”

─그럼, 인구 감소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우리가 다뤄야 하는 문제는 ‘문화’다. 사람들은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들기에 그저 출산하지 않고 싶다고 결정했다. 다음 세대를 만들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기존과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비용을 줄여주고, 여성을 직장에서 평등하게 대우하고, 엄마가 되기로 한 직장 여성에게 혜택을 제공한다면 인구 감소 추세를 늦출 수는 있지만, 역전시킬 수는 없다. 이건 가치관의 문제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찰스 다윈에게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는 최초의 종이 될 것이다.”

─인구 감소를 막을 효과가 없으니 그만둬야 한다고 보나.

“앞서 말했듯 인구 감소 관련 상황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구 감소를 막을 정책을 펼 가치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부양할 수 있게 하거나, 더 많은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는 건 어느 사회에나 좋은 일이고 인구 감소 속도도 좀 늦출 것이다. 또한 여성은 출산과 관련한 모든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고, 특히 더 많은 아이를 원하는 여성은 모든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모든 사람이 원하는 수의 자녀를 낳는다고 하더라도 출산율은 시간에 지남에 따라 감소할 것이다. 이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당신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 대책으로 이민을 제안했다. 하지만 전 세계 인구가 줄어든다고 가정하면 이민도 대안이 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또한 한국에 이민이 적용할 수 있는 대책이라 보나.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민으로 인구 감소 폭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겠지만, 전 세계에서 이민자가 가장 많은 나라 대부분도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 이민을 많이 오는 나라는 인도, 중국, 필리핀인데 이 중 필리핀 출산율만 대체출산율 이상이다. 인도 중산층의 지위가 상승하면서 인도 역시 캐나다의 이민자 공급원이 되기 힘들어질 수 있다.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상당한 규모의 이민자를 보낼 수 있으면서 대체출산율 이상의 출산율을 보이는 유일한 지역은 아프리카다. 그럼, 한국이 아프리카 출신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남는다. 내 생각에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울 것이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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