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과 덕수궁 앞은 주말 오후만 되면 각종 행사와 시위로 사람들이 가득 찬다.
가을에 접어든 10월 19일 일요일 오후 3시 덕수궁의 뒤편에서 쩌렁쩌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대학 무상화·평준화 국민운동본부 주관으로 ‘교육혁명 행진’이 열렸다. 교사, 대학생, 비정규교수, 학부모의 릴레이 발언이 이어졌다.
한 대학생은 마이크를 잡고 큰 소리로 “대학 생활은 직업 교육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자아를 찾는 시간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 ‘투명가방끈’이라는 단체도 참여했다. ‘대학은 당연하지 않으니까’라는 슬로건을 든 활동가 4명이 거기에 있었다. 그중엔 공현(37·본명 유윤종) 씨도 보였다.
13년 전인 2011년 가을날의 그 일이 아직도 공현 씨에겐 생생하다. 그날은 공현 씨가 이미 5학기를 다닌 상태에서 대학을 그만두기로 한 날이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을 안 간다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어요. 대학은 당연히 가는 거였죠.”
공현 씨는 고교 시절부터 청소년 인권에 관심이 많았다. 전북 지역의 학생 두발 자유화 집회에도 참여했다. 대학에 와서도 수업보다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적극적 평화 행동’ 동아리에 더 마음이 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을 관둬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학벌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라도 ‘대졸’이라는 타이틀을 굳이 얻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날은 10월인데도 최저기온이 10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유난히 추웠다. 대자보 4장을 든 사나이는 대학 캠퍼스로 걸어갔다. 중앙도서관 앞, 사회대 앞…. 그가 준비한 대자보를 하나씩 붙였다. ‘저번 주에 자퇴서를 냈는데…’라는 제목의 대자보였다. 학과 행정실에 자퇴서를 내고 지도교수와 면담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공현 씨가 대학을 뛰쳐나온 지 만 13년이 지났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대학 권하는 사회’다. 지난해 대한민국의 대학 진학률은 76.2%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그 이면에는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
한국리서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학력 때문에 손해를 본 적이 있다”라는 의견이 50%다. 또, 학력 때문에 소외감을 느껴본 사람은 45%다.
“옛날에는 ‘인서울’ 상위권 대학을 가야 성공한 거라는 말이 있었죠. 이제는 대학 가는 것이 최소한의 보험이 돼버렸죠.”
어느덧 서른일곱이 된 공현 씨가 말했다.
“그러니 그 최소한조차 못하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더 심각해진 거죠.”
공현 씨는 대학을 그만두겠다는 당시의 결심을 현재까지 유지한다. 인권과 교육 문제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고 지금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과 ‘투명가방끈’ 활동을 하고 있다. ‘투명가방끈’은 입시 위주 교육과 학력 차별에 저항하는 10~20대의 목소리를 내고자 2011년에 창설됐다. 공현 씨도 그 해부터 활동을 쭉 이어왔다.
이 단체의 상근활동가였던 성윤서(25) 씨는 “대학 진학을 위해 청소년기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내놓아야 하는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현 씨가 레빗(20·본명 오은채) 씨를 처음 만난 건 시민단체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 전국행동’에서다.
레빗 씨는 “입시경쟁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대학 진학 대신 일찍 경제활동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결국 직업 교육에 초점이 맞춰진 마이스터고에 진학했다. 졸업 이후 레빗 씨는 직장을 다녔지만, 지난 6월에 퇴사했다. 진로 고민이 생겨난 탓이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부터 품은 입시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레빗 씨는 현재도 청소년 인권 운동과 교육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공현 씨도 한때 대학에 다녔다. 대학을 가는 사람이 7, 가지 않는 사람이 3이라면 그는 7에 있었다. 공현 씨는 “대학에 진학한 70%도 온전한 70%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진심은 대학 가고 싶지 않은데 사회적 시선 때문에 간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라고 말했다.
고건민(25) 씨는 2019년 경영학과에 진학해 세 학기를 다니다 올해 2월 그만두었다. 사유는 미복학 제적이었다. 등록금만 내면 휴학으로 처리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현재 그는 에버랜드 협력업체에서 일하며 주로 놀이공원 방문객에게 솜사탕 파는 일을 한다. 그는 대학이 아니더라도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다. “만약 학교를 끝까지 다녔더라면 원치 않는 수업을 들으면서 사회 진출이 더 늦어졌겠죠.”
공현 씨는 올 11월 더욱 바빠질 예정이다. ‘투명가방끈’은 11월 수능이 치러지는 한 주 동안 ‘대학 비진학자 가시화 주간’을 연다. 공현 씨는 작년 가시화 주간에도 여러 사람을 만났다. 특성화고를 나와서 곧바로 취업한 사람,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입시경쟁이 안 맞아서 관둔 사람 등 다양했다.
13년 전 공현 씨가 학교에 대자보를 붙인 날, 이를 다룬 기사가 경향신문에 실렸다. 기사를 보면, 당시 농경제사회학부를 다니던 박선아는 “노력은 비슷하게 해도 한두 문제의 차이가 학벌을 만드는데, 그 꼬리표가 평생을 따라간다”고 공감하면서도 “자퇴는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학내 커뮤니티에서는 “성급한 결정”이라거나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십수 년에 걸친 공현 씨의 바람과는 별개로, 대학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기조는 더 공고해지고 있다. 지난해 수능 지원자 50여만 명 가운데 ‘N수생’(졸업생)이 31.7%를 차지했다. 대학 입시를 다시 준비하는 학생들의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 비율은 1997학년도 이후 지난 해가 가장 높았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퍼블릭뉴스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간 협약으로 고려대 미디어학부 한찬우 대학생 기자가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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