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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청은 정책을 결정하거나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이 국민의 생활 영역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적법한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이에 따라 행정조사기본법에서는 조사원이 가택·사무실 또는 사업장 등에 출입하여 현장조사를 실시하는 경우, 반드시 조사 목적, 조사 기간과 장소, 조사원의 성명과 직위, 조사 범위와 내용, 제출 자료 등이 기재된 문서와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를 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11조). 이러한 규정은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현장조사가 필요한 개별 법률에서도 반복적으로 규정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산업표준화법 제20조 제5항과 의료법 제61조 제1항에서는 각각 KS인증 조사나 의료법 위반 조사 시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와 현장조사를 위한 문서를 제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행정조사에서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와 현장조사를 위한 문서를 제시하는 것은 수사 절차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는 것과 유사한 절차적 요구사항이다. 압수·수색 영장의 제시 없이 압수·수색을 강행하는 것이 위법한 것처럼,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와 현장조사를 위한 문서를 제시하지 않고 현장에 출입해 조사를 수행하는 것 역시 위법하다.
법원도 이러한 절차적 요구를 강조하고 있다. 부산고등법원은 ‘조사 대상자가 조사 개시 시점에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권한을 증명하는 증표를 제시받고, 조사 기간, 조사 범위, 조사 담당자, 관계 법령 등이 기재된 문서를 받아야 하는 것은 조사 대상자가 누릴 수 있는 절차적 권리의 핵심 사항’이라고 하면서 ‘권한을 증명하는 증표와 현장조사를 위한 문서는 조사 개시와 동시에 제시되어야 하며, 조사 개시 이후에 이를 사후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하였다(부산고등법원 2021. 8. 27. 선고 2021누21163 판결). 이러한 행위는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지 아니한 채 압수·수색을 실시한 다음, 사후에 비로소 영장을 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나 현장조사서를 조사 개시 시점에 제시하지 않으면, 이후 조사 대상자로부터 위반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작성된 ‘확인서’를 제출받더라도 위법성을 해소하기 어렵다(서울행정법원 2022. 12. 22. 선고 2021구합5352 판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조사를 나온 사람이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나 현장조사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이 기재된 문서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절차를 단순한 형식적인 문제로 간주하고 결과의 타당성만을 중시하는 관행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는 것은 권력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최소의 조건이다.
법치주의는 아주 사소한 균열로도 무너질 수 있는 약한 이념이다. ‘그깟 종이 한 장’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소함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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