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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0 시대의 노동·인권 규제 [민창욱 변호사의 ESG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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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0 시대의 노동·인권 규제 [민창욱 변호사의 ESG 길라잡이]
트럼프 2.0 시대의 노동·인권 규제 [민창욱 변호사의 ESG 길라잡이]

미국 제47대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ESG 정책이 후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동안 화석연료 산업 지지와 파리협약 탈퇴를 공언해왔기에 미국의 기후·환경 정책에는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글로벌 공급망에서 노동·인권 침해에 대한 미국의 규제는 트럼프의 재집권 후에도 계속 유지되거나 오히려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국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데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뿐만 아니라,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했던 통상 규제가 바이든 정부를 거치며 더욱 공고화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무역과 노동을 연계하는 통상정책을 폈다. 대표적으로 1930년 제정된 미국 관세법 제307조는 강제노동을 통해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채굴, 생산 또는 제조된 모든 제품의 수입을 금지한다. 이 법률은 인도주의적 목적보다는 미국 노동자들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미국은 1865년 노예제도를 공식 폐지했는데, 해외에서 강제노동을 통해 생산된 제품이 자국 내에서 유통되면 미국 노동자들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기에 관세법 제307조를 만든 것이다. 당시의 관세법 제307조는 미국 내 소비 수요가 높은 제품에 대한 예외를 규정했는데, 커피·차·고무 등 미국 노동자들이 직접 생산하지 않지만 미국 국민들이 널리 소비하는 제품은 강제노동에 연루됐더라도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보편적 인권이란 가치가 미국 국민의 후생보다 우선할 수는 없었다.

미국 강제노동 규제의 주된 타겟은 중국이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1990년부터 2021년까지 부과한 강제노동결부 제품에 대한 인도보류명령(WRO) 61건 중 43건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처분이다. 2022년 6월 21부터는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UFLPA)이 시행됐다. 이제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생산되거나 미국 정부가 지정한 제재 대상 기업이 만든 제품은 강제노동결부 제품으로 추정되어 미국 내 수입이 금지된다. UFLPA가 시행된 후 현재까지 1만 1334건의 통관보류 조치가 집행됐고 이 중 4899건은 최종적으로 통관이 거부됐다. 제제대상 기업의 숫자도 최초 20개에서 109개까지 늘어났다. 트럼프 당선자가 국무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2020년 UFLPA 발의를 주도한 인물이다. 트럼프 2기에도 UFLPA의 엄격한 집행 기조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국가 간 협정을 통해 강제노동 규제를 확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에 서명하면서, 북미 3국이 강제노동결부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해당 제품의 식별 및 이동을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후 멕시코와 캐나다도 강제노동결부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국내법을 제정했다. 다만 미국은 양국의 현행법이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며, UFLPA에 따라 미국 통관이 거부된 제품이 캐나다나 멕시코로 수출될 우려가 있으므로 북미 3국의 세관 당국이 더욱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코 루비오를 포함한 미국의 의원들은 2024년 9월 캐나다와 멕시코에 공개 서한을 보내 양국도 UFLPA처럼 신장 자치구에서 생산된 제품을 강제노동결부 제품으로 간주해 북미 수입을 금지하는 법률을 만들 것을 촉구했다.

미국의 통상규제는 강제노동뿐만 아니라 노동·인권 일반으로 확산될 조짐이 보인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4년 12월10일 ‘1974년 무역법’ 제301조에 따라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니카라과의 노동권 침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무역법 제301조는 외국 정부의 불합리하거나 차별적 관행을 조사해 관세 등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종래 무역법 제301조는 지적재산권 침해, 보조금 지급 등 전형적인 통상 이슈에만 적용됐다. 그런데 미국은 이번에 처음으로 니카라과 정부의 결사의 자유 침해나 아동·강제노동 등의 인권 이슈를 ‘불합리한’ 관행으로 보아 조사를 개시한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노동부 산하 국제노동국은 ‘인신매매피해자 보호 재승인법’(TVPRA)에 따라 격년 단위로 아동노동 또는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리스트를 공개하는데, 2024년 9월 공개된 ‘TVPRA 리스트’에 한국이 추가됐다. 미국 노동부는 한국에서 생산한 인듐에 아동노동으로 만든 볼리비아산 아연이 사용됐다고 밝혔다. 한국은 2022년 볼리비아에서 3억 8500만달러 상당의 아연 농축물을 수입해 인듐을 생산했는데 위 수입품에 볼리비아 아동들이 광산에서 채굴한 아연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인듐은 터치스크린 장착 기기, TV, 핸드폰, 태블릿, 반도체, 태양광 패널 등에 두루 사용되며, 한국의 인듐 생산량은 세계 2위로 2022년 전 세계 공급량의 22.2%를 차지한다. 글로벌 공급망에 속한 국내 기업은 언제든지 인권 침해에 연루되거나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유럽연합도 2024년 11월 19일 강제노동 금지 규정을 채택했다. 트럼프 2.0 시대에 미국과 EU는 제품의 전 생산 과정에서 강제노동에 부분적으로나마 연루된 제품을 시장에서 퇴출하는 데 일치된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은 국제적으로 승인된 노동·인권 규범을 준수하면서도, 주요국 통상규제의 의도와 내용을 면밀히 살펴 대응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2.0 시대의 노동·인권 규제 [민창욱 변호사의 ESG 길라잡이]
트럼프 2.0 시대의 노동·인권 규제 [민창욱 변호사의 ESG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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