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채권 시장의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미 역대 최대치로 설정된 국채 발행 규모에 추가 부담이 더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효과가 국채 시장 안정의 주요 변수로 주목받고 있다.
28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추경 편성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상목 부총리는 최근 “민생이 어렵고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추경 편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현재 예산안은 경제 성장률을 약 0.06%포인트 낮추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재정을 더 활용할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에 전체 예산의 75%에 해당하는 431조원을 조기 집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조기 집행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며, 시장에서는 수십조원 규모의 ‘슈퍼추경’ 가능성도 거론된다. 씨티 리서치는 내년도 한국 정부가 1분기 약 30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이번 추경은 10조원을 훌쩍 뛰어넘을 수도 있다”며 “차기 집권당의 성격에 따라 1회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내년이 시작되지도 않은 시점에 추경이 거론된다는 것은 내년 추경 시기가 평소보다 빨라질 것을 의미한다”며 “내년 1분기 후반에서 2분기쯤 추경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채권시장에서는 추경 시기와 규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추경이 국고채 발행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어서다. 내년도 국고채 발행 규모는 이미 201조3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여기에 대외 신인도 제고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최대 20조원 규모의 원화표시 외평채 발행이 추가될 예정이다. 추경 재원은 상당 부분 국채 발행으로 충당되는데, 이미 역대 최대치 수준의 국채 발행에 공급이 더해지는 만큼 시장에 추가적인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금리가 상승하고, 이는 기업과 가계의 자금 조달 비용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추경이 단기적으로 경제를 부양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경기 둔화 압력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에서 WGBI 편입이 국채 시장 안정의 핵심 변수로 주목받고 있다. WGBI는 세계 3대 채권지수 중 하나로, 추종 자금 규모만 약 3조 달러에 이른다. WGBI에 편입된 한국 국채는 내년 11월부터 지수 내 비중이 반영될 예정이며, 약 75조 원 규모의 외국인 자금 유입이 기대된다.
WGBI 편입으로 한국 국채는 지수 내에서 약 2.22%의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는 26개 편입국 중 9위로 높은 수준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WGBI 편입으로 인해 패시브 펀드 자금 약 500억~600억달러, 액티브 펀드 자금 약 100억달러가 추가 유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자금 유입은 국채 시장의 안정뿐만 아니라, 재정 자금 조달 비용 절감,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신인도 제고 등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국채 발행 물량을 월별로 균등하게 배분하고, 외국인 투자자 대상 설명회를 확대하는 등 WGBI 편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곽상현 기재부 국채과장은 “내년 상반기부터 WGBI 편입 효과를 선반영하려는 수요가 일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며 “11월 이후 투자 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선제적으로 국채를 매입하려는 투자자들이 내년 상반기에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WGBI 편입 효과가 2분기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분기부터 WGBI와 금리 인하 효과가 반영되면서 시장의 공포가 일부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1분기 동안에는 공백 상태에서 재정 정책이 과도하게 집중될 경우 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WGBI 자금은 대부분 패시브 펀드를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외환시장 영향은 상대적으로 덜 받을 수 있다”며 “초기에는 시장 변동성이 불가피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발행 일정을 신중히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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