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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소방관①] ‘반쪽짜리’ 국가직 전환 이후 남은 문제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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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소방관들은 국민의 관심 속에서 국가직 전환과 노동조합 설립, 장비 개선 등 변화의 바람을 맞이했다. 그러나 여전히 순직과 공상, 심리적 고통, 상하 간 소통 부족, 예산 부족 그리고 실효성이 부족한 국가직 전환 등 다양한 과제들이 남아 있다.

소방공무원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곧 시민 안전과 직결된다고 입을 모았다. 자신과 자신의 가정이 보호받을 수 없다고 여기는 소방관들이 과감히 불길로 뛰어들 수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건강과 안전이 보호받는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최근에는 2001년 홍제동 방화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소방관」이 개봉하면서 우리 사회의 안전망인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과 순직 및 공상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재점화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소방공무원의 안녕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영화 소방관(2024) 스틸컷. [사진제공=바이포엠스튜디오]
영화 소방관(2024) 스틸컷. [사진제공=바이포엠스튜디오]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 “사람을 구하면서 살 수 있는 자격이요. 세상에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소중한 자격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4일 개봉한 영화 「소방관」(곽경태 작)의 명대사다. 영화의 배경이 된 ‘홍제동 방화 사건’은 2001년 3월 4일 새벽 3시 47분경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 다세대주택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참사다. 해당 사건의 구조작업 중 불길에 휩싸인 건물로 진입한 6명의 소방관이 순직했으며 3명이 부상당했다.

2000년대 초 소방관은 2교대 근무로 활동하며 한번 출근하면 24시간 동안 하루 평균 7회 이상을 현장에 출동하는 과로에 시달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소방관들은 구조작업에 필수적인 방화복조차 지원받지 못해 방수복을 착용하고 화재 현장을 지켰다.

뿐만 아니라 부상을 당하더라도 간병비와 진료비가 지원되지 않거나 하루에 6만원 선에 그쳐 자비 치료를 일삼아야만 했다. 6만원도 뇌손상이나 사지마비 등 ‘간병 1등급’ 판정을 받은 공무원에게만 6만7140원이 지급되는 현실이었다. 3등급에는 4만4760원이 지급되는 데 그쳤다.

홍제동 방화 사건 이후 이 같은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가 밝혀지면서 소방 당국은 꾸준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 처리가 굼뜬 나머지 소방 현장의 가장 큰 문제로 끊임없이 지적돼 온 간병비 및 진료비 지원조차 올해 2월에 인상 처리된 실정이다.

살고 싶다는 생존욕구를 거역해 가며 맹렬한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들, 그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죽고 다치며 병들어가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 3기 권영각 본부장이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연이은 소방공무원 사망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 3기 권영각 본부장이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연이은 소방공무원 사망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보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순직률

지난 1월 31일에도 경상북도 문경시 신기동 신기제2일반산업단지 한 육가공품 제조공장에서도 화재 참사가 발생해 인명 수색을 하던 구조대원 2명이 고립돼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전기튀김기에서 시작된 불이 옮겨붙은 것이 원인이었다.

해당 사건으로 문경소방서의 김수광(27) 소방장과 박수훈(35) 소방교가 목숨을 잃었다. 순직한 두 소방대원은 모두 미혼으로, 두 사람은 평소 조직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져 대중의 안타까움을 샀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소방 활동 중 위험 직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소방관은 40명이다. 

화재 진압 도중 13명이 목숨을 잃었고 뒤이어 ▲항공사고 10명 ▲교통·산악사고 등 구조로 6명, ▲생활안전 출동으로 5명 ▲교육·훈련 3명 ▲극단적 선택 2명 ▲구급 1명 등이 순직했다. 올해 세상을 떠난 김수광, 박수훈 소방관을 더하면 순직자는 42명에 달했다.

업무 중 부상을 당한 공상자 수까지 더하면 지난해에만 1336명의 소방공무원이 해당됐다. 지난 2월 소방청에 따르면 연도별 순직·공상자 수는 ▲2018년 830명 ▲2019년 827명 ▲2020년 1006명 ▲2021년 936명 ▲2022년 1083명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순직·공상 통계에 맹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소방청 연구용역에 따르면 공상승인을 받은 2183명 중 본인 부담이 없었다고 응답한 소방공무원은 16.5%에 불과했다. 또 ‘인사상 불이익’, ‘신청 절차의 복잡함’으로 인해 소방공무원의 45.9%가 공무상 부상을 입어도 공상승인 신청을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방공무원노동조합 박병남 충청남도 위원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소방청 재해보상팀에서 근무했을 당시 최근 10년간 연 평균 순직하신 분들 수가 11명 정도 됐다”면서 “어떤 질병이 공무상 질병에 해당되는지 모르시는 경우가 많다. 공상의 경우 통계보다 최소 1.5배 이상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예전보다 인식 개선이 이뤄졌다지만 여전히 50대 후반이나 퇴직자들은 폐암이나 림프종, 백혈병 같은 질병도 공상인지 자체를 모르기도 한다”고 짚었다.

이같이 늘어나는 순직·공상자 수는 매해 증가하는 화재나 구조 출동과도 연관이 있다. ‘2023 소방청 통계 연보’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119 신고는 총 1254만6469건으로 2021년 1207만 5804건 대비 3.9% 증가했다. 화재 출동은 같은 기간 10.6% 늘어난 4만113건에 달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여전히 넘지 못 한 산, 소방관 심리 치료 실태

소방관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문제는 소방공무원의 정신질환 문제가 가시화되고 전담 지원 정책이 있음에도 정신질환 수치가 감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소방공무원 정신질환 지원정책이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소방청이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소방관 5만28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3년 소방공무원 마음 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방공무원 10명 중 4명 꼴로 PTSD, 우울 증상, 수면장애, 문제성 음주 등 심리 질환 중 한 가지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 질환을 겪는 소방관들 중 43.9%(2만3060명)는 관리나 치료가 필요한 위험군으로 조사됐으며, 질환별로는 ▲PTSD 6.5% ▲우울 증상 6.3% ▲수면장애 27.2% ▲문제성 음주 26.4%였다.  

특히 조사 전년과 비교했을 때 PTSD는 6.5%p, 우울 증상은 1.3%p, 수면장애는 2.6%p 감소해 지원정책의 효과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성 음주는 0.2%p 증가했다.

자살 고위험군은 2587명(4.9%), ‘지난 1년간 1회 이상 자살 생각을 했다’고 밝힌 소방대원은 4465명(8.5%)으로 집계됐다. 최근 1년간 소방 활동을 하면서 외상 사건(PTSD를 유발할 수 있는 사건)에 노출된 평균 횟수는 전년과 동일한 5.9회로 나타났다.

현재로서 소방공무원에게는 근무지로 찾아가는 심리상담사, 마음건강워크숍, 정신과 상담 지원금 등이 있다. 이 같은 지원에 대해 박 위원장은 “분명히 없는 것보단 낫다”면서도 “보여주기식으로 운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지원은 ‘찾아가는 심리상담사’인데, 이 경우 근무하는 장소에서 상담을 진행하다 보니 심적인 문제를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소방관들의 마음 건강을 위한 소방심신수련원은 2026년 강원도 강릉시에 준공될 예정이다. 박 위원장은 “소방공무원들을 위한 수련원은 최초의 사례다 보니 이거라도 빠르게 만들어지면 최소한 나아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2026년까지 과연 완공될 수 있을지 염려된다”고 했다.

국회 본회의장 전경. [사진제공=뉴시스]
국회 본회의장 전경. [사진제공=뉴시스]

숙원을 이루다…소방안전교부세 배분 비율 법제화

소방공무원들의 현실도 악화일로만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홍제동 방화 사건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소방공무원들은 지난 2020년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전환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6일에는 여야 주도로 소방안전교부세 배분 비율이 법제화되며 이제껏 일몰 기한이 존재하는 시행령에 그쳤던 ‘소방안전교부세 배분 비율 고정화’를 규정하는 법안이 마련됐다.

소방안전교부세는 부족한 소방인력 인건비와 장비비 등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5년 도입됐다. 담배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 총액의 45%가 소방안전교부세로 배분되며 25%는 소방공무원 인건비, 20%는 소방·안전시설 사업비로 사용한다.

이 중 소방·안전시설 사업비는 ▲특수수요(사업비의 10% 이내) ▲소방분야(특수수요를 제외한 사업비의 75%) ▲안전분야(특수수요를 제외한 사업비의 25%)로 나뉜다. 

소방분야에 할당되는 사업비는 소방인력 운용과 소방장비, 소방안전관리 강화에 사용되며, 안전분야에 할당되는 사업비는 포괄적인 안전시설 확충이나 안전관리 강화 등에 쓰인다.

지난해 행정안전부는 이같이 소방분야의 배분 비율을 규정하는 ‘지방교부세법 시행령’을 폐기하고 지자체 판단에 따라 소방과 안전 분야에 예산을 자유롭게 맡기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이에 소방관들은 크게 반발해 1년의 일몰 유예기간을 얻었고, 지난 26일 국회에서 소방분야 배분 비율 영구 고정이 법제화된 것이다. 매해 유예기간이 다가올 때마다 시행령 일몰을 두고 국가와 갈등하던 소방관들은 드디어 숙원을 이룬 셈이다.

박 위원장은 “소방안전교부세에는 저희 소방관들의 복지와 관련된 거의 모든 예산이 포함돼 있다. 소방안전교부세가 본회의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닭살까지 돋았다”며 “심적으로는 내년 사업까지 다 해냈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앞으로는 온전한 국가직이 되기 위해 노력할 일이 남았다”고 강조했다.

영화 소방관(2024) 스틸컷. [사진제공=바이포엠스튜디오]
영화 소방관(2024) 스틸컷. [사진제공=바이포엠스튜디오]

조직 내 불통·유명무실 국가직 전환…남겨진 과제들

그러나 이는 일부일 뿐, 소방공무원의 일터에서 개선돼야 할 지점들은 여전히 도처에 존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방안전교부세의 배분 비율 고정이 소방 지원의 결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 이어질 협상의 시작점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국가직 전환이 이뤄진 해 합격한 소방공무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표했다. 기존에 뽑던 인원보다 신규채용 규모를 월등히 증원했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급증한 소방공무원들이 해가 지나고 동시에 직급이 오르면 인건 유지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가직이 전환된 2020년 이후 신규 채용되는 소방관 수도 급감했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신규 채용 인원은 총 5671명이었다. 이후 감소세를 보이더니 2021년 4461명, 2022년 3814명에 이어 올해 1560명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이 밖에도 전문가들은 소방청과 현장 직원들의 불통에서 오는 갈등, 통일되지 않는 내부 여론, 탁상행정식 국가직 전환, 부실한 예산 관리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부 이영주 교수는 “소방공무원은 소방청에서 사무 처리를 하는 내근직과 구조 활동을 하는 외근직으로 나뉘는데, 그 안에서도 각자 하는 역할이 달라 내부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서 “그런 경우 외부 조직과 예산이나 인사를 두고 협상할 때 자연스럽게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바깥에서 대외적인 조직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내부적으로도 통일된 의견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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