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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 초유의 대통령·국무총리 동시 공백 사태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국이 또다시 안갯속에 빠졌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27일 국회를 통과할 경우 간신히 안정을 찾아가던 대행 체제는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여야의 극한 대치로 12·3 비상계엄 사태 수습을 위한 ‘여야정협의체’ 출범마저 무산되면서 국정 혼란의 장기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한 권한대행은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 추천 몫의 헌법재판관 3인 임명 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불가피하게 대통령 권한을 행사할 경우 여야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지금까지 헌정사에서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관례”라고 강조했다. 탄핵 정국 혼란 수습을 위해 헌법재판관을 조속히 충원해야 할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자신이 이 원칙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권한대행은 과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사례도 들며 “당시 ‘헌재의 탄핵 심판 결정에 영향을 주는 임명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헌재 결정 전에는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고 헌재 결정이 나온 뒤 임명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차례로 거명한 뒤 국회에서의 합의를 재차 종용했다.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방침을 밝히자 즉각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한 권한대행의 총리 시절부터 권한대행 신분 행위까지 포괄해 △대통령과 그 배우자의 범죄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 임명 법률안 거부 △윤석열의 비상계엄 관련 위헌·위법 행위와 내란 행위의 공모 또는 묵인과 방조 등 △한동훈·한덕수 공동 국정 운영 체제와 헌법 및 법률 위배 △내란 상설특검 임명 절차 이행 회피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등을 탄핵 사유로 적시했다.
특히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와 관련해 “피소추자(한 권한대행) 역시 내란에 적극 가담 또는 묵인, 방조한 자이므로 피소추자의 행위는 공범(윤석열 대통령)의 징계 절차를 고의로 해태하게 하고 범인도피 내지 증거인멸을 돕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 권한대행의 담화에 대해 “내란 대행임을 인정한 담화였다”며 “권한대행을 수행할 자격도, 헌법을 수호할 의지도 없음이 분명해졌다”고 맹비난했다. 민주당 계획대로 한 권한대행 탄핵안이 27일 국회를 통과하면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승계한다.
여당은 탄핵이 현실화하면 경제에 큰 위기가 닥칠것이라며 비판했다. 권영세 내정자는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오늘 원·달러 환율이 1460원을 넘었다”며 “탄핵이 구체화된다면 1500원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경제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고 대한민국 신인도도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제2의 외환위기가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덧붙였다. 여당은 또 민주당 단독으로 한 권한대행을 탄핵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탄핵소추 가결 정족수는 총리 기준인 과반수가 아닌 대통령 탄핵 기준(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것이다.
여야의 극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탄핵 정국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이날 예정됐던 여야정협의체 첫 회의는 무산됐다. 민주당은 내란 사태 극복이 우선이라며 헌법재판관 임명과 내란 특검법 수용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논의의 한 축인 한 권한대행에 대한 야당의 무리한 탄핵 추진으로 협의체 출범이 불발됐다며 책임을 민주당에 떠넘겼다.
국회가 한 권한대행의 탄핵 절차에 돌입하면서 국정 주요 사항을 의결·심의할 국무회의 위기론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무회의는 전체 구성원 21명 중 과반수인 11명의 출석으로 개의할 수 있고 출석 구성원의 3분의 2 이상으로 의결이 가능하다. 현재 윤 대통령을 비롯해 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국방부·법무부 장관이 공석이거나 탄핵으로 직무 정지 중이다. 한 권한대행마저 탄핵되면 국무회의 구성원이 15명으로 줄어든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12·3 비상계엄 직전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전원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이 경우 국무회의 자체가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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