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럴까?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미국인은 대개 가난한 성인이 된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미국보다 캐나다, 독일, 덴마크, 그 밖의 유럽 국가에서 더 많다.
이는 불평등에 대해 미국이 오랫동안 변명해온 ‘계층 이동 가능성’이라는 말과 들어맞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계급이 뚜렷한 유럽 사회에 비해 불평등 걱정을 덜 해도 돼. 우리 사회에서는 계층 상승이 가능하기 때문이지.” 미국인의 70퍼센트는 ‘가난한 사람이 자력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으며, 유럽인은 35퍼센트만이 그렇게 여긴다. 이런 사회적 이동성 관련 믿음은 미국이 주요 유럽 국가들에 비해 왜 그처럼 복지제도에 소극적인지 설명해준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적 이동이 가장 잘 일어나는 국가들은 평등 수준 또한 가장 높은 국가들인 경우가 많다. 이를 보면 사회적 상승의 능력은 가난이 주는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개인의 의지보다는 교육, 보건을 비롯해 직업 세계에서 개인을 뒷받침해 주는 수단에 대한 접근성에 달려 있는 듯 보인다.
사회적 이동성은 더 이상 불평등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없다.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을 돕는 방안으로는 무마될 수 없다. 사다리 자체가 점점 오르지 못할 나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하다는 착각>중 에서
미국을 한국으로 바꾸면 될 듯
실제로 계층이동 가능성은 유럽이 한국보다 훨씬 높음
한국인들은 ‘공정하다는 착각’에 빠져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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