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公僕)’이란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취재 중 만난 현직 공무원에게 물었다. 대한민국 헌법 7조는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의미를 담아 흔히 공무원을 국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공복’이라고 왕왕 표현해 왔다. “좋진 않아요. 노예, 종처럼 부려도 된다는 것 같아서.”
최근 공무원 사회에선 봉사자보단 종, 노예라는 자조가 나온다. 공무원단체 기자회견에서 스스로를 ‘공(公)노비’라 부르는 걸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100대 1을 넘나들던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올해 21.8대 1(9급 국가직)까지 떨어졌다. 한 때 ‘신의 직장’은 ‘공노비’로 추락 중이다.
“몇 년 전부터 도는 말이 탈출이 지능 순이라고, 똑똑한 사람이 먼저 탈출해서 다른 일 찾는 거라고 저희끼리 말하거든요. 공무원으로 들어왔을 땐 뭔가 사명감도 있고 보람도 찾고 이런 게 있는데 일을 하면 전혀 그런 걸 못 느껴요. 보람이 없어요. 내가 이 일을 과연 이렇게 20, 30년 동안 할 수 있을까?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새 직장 찾자 이러면서 좀 많이 도망가는 것 같아요.” (김영운 전국공무원노조 청년위원장(7급 지방직))
실제 입직한 지 5년이 되지 않은 저연차 공무원들의 퇴직은 꾸준히 늘어 전체 퇴직 공무원의 23.7%에 육박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월 발간한 <신규 임용 공무원의 퇴직 증가 문제> 보고서를 통해 “신규 임용 공무원들의 조기 퇴직이 전체 공무원 퇴직 증가를 견인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할 심각한 사안”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4일 방영된 <뉴스토리> ‘공무원 퇴사합니다-그들이 떠나는 이유’를 취재하면서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의 현실을 조명하고, 저연차 공무원들이 공직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본 바 있다. (▶관련 영상: 뉴스토리 469회 <공무원 퇴사합니다…그들이 떠나는 이유>)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15명의 전·현직 공무원들을 대면, 전화, 이메일 인터뷰했다. 대부분이 입직한 지 10년이 되지 않은 공무원들이었고 1명은 이직 준비 중, 2명은 이미 공직을 떠난 상태였다. 이들과 대화하며 ‘공무원 철밥통이 깨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철밥통은 ‘잘리지 않고 정년까지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외형적으로 이 전제는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균열은 철밥통 안쪽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이번 주 뉴스쉽에서는 이 균열의 원인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6년 차 8급, 2년 차 9급 공무원의 지난달 월급은?
여기 두 사람의 급여명세서가 있다. 한 사람은 올해 6년 차 8급 국가직 공무원, 또 한 사람은 2년 차 9급 지방직 공무원이다.
한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8급 공무원 A 씨는 지난달 월급으로 220만 2,190원을 받았다. 시간외수당 등 각종 수당과 식비 등이 포함된 금액. 세전 수령액 261만여 원을 기준으로 한 A 씨의 연봉은 3,000만 원 초반대다. A 씨는 6년 전 9급 국가직 공무원으로 입직해 올해 8급 5호봉이다. 6년 전 월급은 세후 기준 160만 원대. 지난 6년 동안 매년 10만 원씩 올랐다.
비수도권의 한 구청에서 일하고 있는 9급 공무원 B 씨는 지난달 188만 8,860원을 받았다. 시간외수당, 특수직무수당 등을 다 포함한 금액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9,860원, 월급 기준으로는 206만 740원이다. B 씨의 지난달 월급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한 셈이다.
채용사이트 사람인이 2022년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졸 신입 연봉은 2,881만 원, 고졸은 2,634만 원이었다. 이 금액은 세전 기본급을 기준으로 조사 됐다. 6년 차 8급 A 씨의 기본급은 216만 원, 2년 차 9급 B 씨의 기본급은 192만 원. 두 사람 모두 2년 전 중소기업 대졸, 고졸 신입 연봉에 미치지 못한다. 공무원노조에 따르면 민간과의 보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져 현재는 민간기업 임금 기준 80% 초반대 수준이다. 한국행정연구원 2023년 ‘공직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공무원의 보수 수준에 대한 만족도는 5점 만점 중 2.27점에 불과했고, 특히 8급과 9급 공무원은 2.13점으로 가장 낮았다.
“제가 9급 때 160만 원을 받았는데 서울로 발령나서 자취를 해야 했거든요. 그때 월세가 60만 원이었어요. 공과금 같은 거 내고 나면 한 80만 원 남았고 거기서 절반은 또 식비. 적금을 25만 원씩 넣었더니 15만 원 남더라고요. 그걸로 한 달 쥐 죽은 듯이 살았어요. 교통비 아까워서 걸어 다니고요… 지금 1년에 딱 10만 원씩 오른 거잖아요. 절대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을 수 없어요. 이 월급으로 어떻게 결혼해서 집 사고 애를 먹여 살리지라는 생각이 항상 많이 들어요.” (8급 공무원 A 씨)
A 씨는 현재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대기업 공채 두 곳에 지원했지만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공기업 채용에도 지원했었다. A 씨와 함께 입직한 동기 160명 중 20명은 이미 그만뒀다. 제2의 직장이 정해져서 그만둔 경우도 있지만 “네일숍에서 일하거나 그냥 편의점 아르바이트 하는” 동기들도 적지 않다. A 씨는 “아직 그렇게 그만 둘 용기는 없어서” 일과 이직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
월급뿐만 아니라 수당 산정 기준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시간외근로수당(초과근무)의 경우 일반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56조에 따라 통상임금의 1.5배(100분의 50)를 가산하여 지급한다. 통상임금은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수당 등이 포함된 임금을 말한다. 하지만 공무원의 수당엔 근로기준법이 아닌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을 적용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시간외근무수당은 매 시간에 대해 ‘봉급기준액×1/209×150%’을 지급한다고 돼있는데, 이 봉급 기준액은 기준 호봉 봉급액의 55%라고 돼 있다. 쉽게 말해, 호봉액이 100만 원이라고 치면 55만 원으로 깎인 금액을 기준으로 수당을 계산해 준다는 뜻이다. 공무원노조는 “근로기준법 대비 55% 수준에 불과하다”며 공무원 수당 규정 대신 근로기준법을 적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공무원의 급여 수준이 민간보다 나았던 적은 없다. 과거에도 박봉의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버틸 이유가 있었다. 오늘 받는 월급은 적어도 미래에 받을 ‘공무원연금’이라는 든든한 보험이 있었다. 그런데 기자가 만난 공무원들은 연금 받기 위해 내는 돈이 아깝다고 했다. 왜일까?
부담만 되는 연금 “선배들 연금 왜 내줘야 하나요?”
중략
사람은 바뀌는데 일하는 방식은 그대로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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