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집은 걸어서 30분 거리에 전철역이 두 개 있습니다.
한 곳은 시가지를 가로질러 길이 나 있고, 다른 곳은 정말 허허벌판에 논이 펼쳐져 있어요.
상상이 안 가실까 봐 사진도 첨부합니다.
보면 뭔가 컨츄리한 기분이 들고 힐링되는 느낌이긴 한데,
이 길이 저녁에는 가로등도 하나 없이 그냥 암흑 천지입니다.
주변에 차도도 없고 그냥 무작정 적막합니다.
가끔 개 짖는 소리나 나고..
주로 버스 타고 갈 때는 시가지를 가로질러 가는 역으로 가고, 걷거나 자전거를 탈 때는 논을 가로질러서 가요.
탁 트여서 걷거나 자전거 탈 때는 좋거든요.
2012년이었을 거예요.
그 해 여름에 유난히 비가 많이 왔었는데, 아침에 비가 안 와서 자전거를 타고 논길로 신나게 달렸습니다.
그리고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다시 역으로 돌아왔는데,
해도 다 지고 달이 뜬 건지 아님 먹구름에 가린 건지 무척이나 컴컴하더군요. (심지어 길에 가로등도 하나 없어요.)
20대 초반이었던 때라 겁를 상실했는지 좀 무서웠지만 별일있겠나 싶어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논길로 집에 가고 있었습니다.
이게 논길이지만 나름 포장을 해놔서 상행 하행으로 콘크리트 길이 두 개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 길로 쭉 달리고 있는데 웬 아저씨가 맞은편 길에서 조깅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런가 보다 하고 가는데 왜 그런 느낌 있잖아요.
뭔가 소름끼치고 공기가 차가운 느낌.
전부터 공포물들 읽으면 한기가 느껴졌다 뭐 이런 거 피식피식 웃고 넘겼는데
정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냥 엄청나게 차가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장마철이었는데, 냉동고 안에 들어온 것처럼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잘 몰랐어요.
온통 어둠천지여서 거의 코앞만 보이는 상태였으니까요..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더라구요.
한치 앞이 안 보이는데 왜 저 아저씨는 선명하게 보였을까.
이상해서 다시 보았는데 어둡지만 뚜렷하고 선명하게 아저씨가 보이는 겁니다.
그 때 본능적으로 뭔가 촉이 오더라구요.
그리고 결정적인 것.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편안하게 조깅을 하면서 자전거랑 같은 속도랑 달릴 수가 있는지…
온몸에 털이 쭈뼛쭈뼛 서고 공포에 질려서 정말 안 그래도 앞이 안 보이는데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귀신은 사람이 자기를 인지한다는 걸 알면 괴롭힌다고..
한 번 더 확인해 보고 싶은데 도저히 옆을 못 보겠는 겁니다.
그러다 무슨 깡인지 옆을 딱 봤는데 그 아저씨랑 눈이 마주쳤습니다.
얼굴은 거의 푸른빛이 돌 정도로 창백했고 무표정한 얼굴에 입꼬리만 있는대로 치켜올라간 채로 노려보듯 저를 보고 있는데..
보자마자 거의 혼절 직전이었습니다.
그 상태로 무슨 콜드빔이라도 맞은양 얼어붙어서 자전거랑 같이 꼬꾸라졌는데
이 논길의 길과 길 사이에는 도랑이 하나 있어요.
높이는 한 3미터? 밖에 안 되는데 돌덩이들로 가장자리를 데코레이션 해놔서
떨어지면 크게 다칠 위험이 있을 정도입니다
가드레일이 없었으면 저는 그 밑으로 떨어졌을 거예요.
어쨌든 정신줄을 다시 부여잡고 보니까 아저씨는 여전히 저를 그 표정으로 보고 뛰고 있었고,
분명히 앞으로 가는 것 같은데 정말 이상하게 그 아저씨는 제자리였습니다.
이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이 이상했어요.
문득 이러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짧은 찰나에 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그래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머릿 속에 남고, 정말 본능적으로 자전거를 일으켜 세워서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거리는 한 2키로 정도 됩니다.
그렇게 미친 듯한 속도로 달리다가 옆을 봤는데 그 아저씨 여전히 똑같은 페이스로 조깅하듯 달리고 있었습니다.
조깅하듯 달리면서 자전거의 최고속력을 내고 있었던 겁니다.
그 순간 아저씨가 입꼬리가 정말 저건 사람이 아니다 싶을 정도로 끔찍하게 활짝 웃는 겁니다.
공포에 질려서 그 뒤로는 옆을 보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얼마 안 지나서 가로등이 나왔습니다.
긴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정말 천년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가로등 밑 (두 갈래길의 합류지점) 까지 가서야 뒤를 돌아봤는데 아저씨가 안 보였습니다.
다행이다 하고 헥헥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때까지도 인지를 못했습니다.
그 가로등 밑이 그 아저씨가 달리던 길과 내가 달리던 길의 합류지점이었던 것을요.
그 때 제가 서지 말고 집까지 쭉 달렸으면 됐던 걸까요.
참 이상한 게 나중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길을 벗어난 이후에도 엄청나게 추운 기분이 계속 들었는데 왜 몰랐을까요.
그리고선 집에 돌아와서 별 일 아니라고 애써 생각하고 누워서 자는데,
한 시간쯤 지났을까 밖에서 저벅저벅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어머니인가 싶어서 나와봤는데 어머니는 방에서 주무시고 계시고.
도둑이 들었나 싶어 불을 다 켜봐도 아무것도 없고
그러다 또 잠을 청하면 발자국 소리가 점점 방문 가까이에서 나는 겁니다.
그 때 깨달았어요. 내가 아직도 춥다는거, 그 아저씨가 왜 안 보였을까 하는 의문.
그리고는 어머니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밖으로 나왔습니다.
저희집이 지하입니다.
보통 이런 시골틱한 동네 지하에는 무당집이 많아요.
저희 옆집엔 당시 무당 할머니께서 거주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문을 열고 나오던 순간 옆집에서 벌컥 하고 무당 할머니가 불쑥 나오시더니
(사실 이 할머니가 갑툭튀 하셔서 정말 기절할 뻔했습니다..) 대뜸 이놈!!!!! 하고 호통을 치시는데,
그 할머니 평소 목소리도 아니고 무슨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리고선 할머니께서 내일 해가 뜨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창문도 대문도 열지 말라고 하셔서
그러겠다 하고 집에 들어왔는데,신기하게 더이상 춥지가 않더라구요.
그리고는 다음 날까지 문도 창문도 열지 않고 한여름 찜통속에서 시원하게 사우나 하고 나니
발자국 소리도 나지 않고 더이상 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가 세다고 생각해서 귀신 이런 거랑은 관련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인간이 어둠에 공포를 괜히 느끼는 게 아닌가 봅니다.
무서우면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두서없이 그냥 횡설수설 하고 가네요.
제가 귀신을 두 번 봤는데, 기회가 닿는대로 다음 이야기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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