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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할머니는 언제 돌아가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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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치매가 우리의 일상을 하루아침에 바꿔놓은 것은 아니었다.

엄마와 나는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어서 할머니에게 쏟는 시간이 늘어났음에도 시간을 맞춰가며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 거래처에 다녀오는 날에는 엄마나 나나 두 배로 바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업무를 보면서 틈틈이 할머니 빨래와 청소, 식사 준비와 같은 서로가 도맡아서 하던 집안일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뭐, 이 정도까지는 적응하고 나니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여기에 할머니 목욕과 강아지 목욕까지 해야 하는 날이 문제였다.

그날도 거래처에 다녀온 날이었다. 일과 집안일을 마치고 나니 할머니 목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독 일이 많았던 날이라 피곤했지만, 해야 할 일을 빨리 끝내야 얼른 쉴 수 있다는 생각에 할머니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벽에 설치된 안전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고, 나는 엉덩이와 다리를 닦아주던 중이었다. 갑자기 손이 따뜻해졌다. 할머니가 내 손 위에 소변을 본 것이다.

평소 같으면 할머니가 무안하지 않도록 얼른 내 손과 샤워타월을 헹궈 다시 할머니를 닦아줬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이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다.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샤워타월을 내려놓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깜짝 놀랐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그랴? 아가! 왜 울어?”
“할머니 나 너무 힘들어….”

할머니의 흐릿한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날 할머니가 소리 내어 우는 걸 처음 봤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울지 말어…. 미안혀…, 할무이가 미안혀….

할머니가 엉망이 된 내 얼굴을 연신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울었다.

겨우 할머니 머리를 말려주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할머니가 목욕하면서 실수한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소변이 나올 때도, 대변이 나올 때도, 내가 묵묵히 그것을 씻어낼 때도 벽만 보고 서 있던 할머니였다.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할정도로 할머니는 무심했다.

내가 소변이 떨어진 거실 바닥을 닦고 있을 때도 멍하게 보고만 있었는데…. 그랬던 할머니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내게 미안함을 전한 것이다.

기억이 남아 있어야 미안함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앓고 있는 병은 기억을 잃는 병이니 ‘미안함’이라는 감정은 할머니 사전에서 사라진 지 오래라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할머니를 오해했다. 할머니는 무감정하지 않았다. 미안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반드시 기억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사랑이 온전치 않은 기억을 채워서 감정과 연결되는 순간이 분명 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한없이 미안해져서 힘듦에 매몰되지 않고 할머니의 감정을 들여다보겠다는 굳은 결심을 다지며 잠이 들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을 몸소 증명이라도 하듯, 할머니의 눈물은 내 기억에서 허무하게 잊혀버렸다.

그날도 거래처에 다녀와서 바쁘게 집안일을 한 날이었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내 방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는데 온갖 잡생각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왔다.

‘이렇게만 살 수는 없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아마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나 할 수 있을 거야.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뭐부터 할까?

상상은 자유니까 마음껏 흘러가도록 내버려뒀다.

‘그런데… 할머니는 언제 돌아가실까?’

생각이 거기서 뚝 멈췄다.

양가적인 감정에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내가 드디어 미친 걸까?

무엇보다 나 자신이 싫어졌다.

할머니는 나를 자식보다 소중하게 키워준 사람이었다.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할머니가 주는 사랑을숨 쉬듯이 들이마시며 살았는데 나는 고작 4년 고생했다고 할머니가 없는 삶을 꿈꿨다.

‘괜찮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 같은 말로는 섬뜩한 생각이 합리화되지 않았다. 그런 변명을 하면 할수록 슬프게 울던 할머니의 얼굴이 더욱 진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는 할머니와 내가 함께 살아온 세월과 추억, 더 나아가서 우리 가족이 이제껏 나눠왔던 사랑까지 변질될 것만 같았다.

뭐라도 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할머니와 즐겁게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끔찍한 생각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가벼운 다짐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위 내용은 치매를 앓고 있는 95세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치매 중기 진단을 받았고 이후 달라진 일상에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에게 상처를 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을 지나

가족들은 오히려 익숙해서 너무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고 그 안의 이야기를 오래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슬프면 슬픈 대로 살고, 좋으면 좋은 대로 살면 된다”는 할머니의 말에 깊은 위로를 받게 되는 책.

결국 모든 사람은 사랑으로 연결되기만을 바랄 뿐.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오래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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