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삑삑. 체험을 위해 착용한 연속혈당측정계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혈당이 급격하게 치솟았다는 신호다.
그날 메뉴는 파스타와 샐러드. 물론 전문가들의 조언대로 채소를 먼저 먹고, 해산물을 먹은 다음 면을 먹는 등 순서에도 신경을 썼다. 그랬지만 소용없었다. 모니터 화면 속 혈당은 180㎎/dL(데시리터(dL)=0.1ℓ)를 넘어서며 가파른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다. 며칠 전 비슷한 메뉴를 먹었을 때는 150㎎/dL 정도까지 올라갔던 그래프가 갑자기 이렇게 치솟으니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며칠 사이에 몸이 안 좋아진 것일까? 두 날의 차이는 딱 하나였다. 바로 잠.
밤 12시30분 지나 빛에 노출되면 ‘제2형 당뇨병’ 발생 위험 더 커져
전날 기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새벽 2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상 시간은 이전과 같이 6시30분, 불과 4시간 남짓 잔 것이다. 아침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혈당은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간 식단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널뛰었다.
사실 혈당과 수면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최근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된다. 코르티솔은 인슐린 저항성을 높여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잠을 제대로 못 잔 다음날에는 인슐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혈당이 쉽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어떤 날은 혈당이 잘 조절되고, 어떤 날은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수면과 혈당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계속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야간에 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만으로도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미국 건강 전문 매체 ‘메디컬뉴스투데이’는 밤에 밝은 빛에 노출되는 것이 제2형 당뇨병 발생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가 보유한 약 8만5천 명의 의료 기록을 분석했다. 약 9년간 경과를 관찰하며 참여자들의 제2형 당뇨병 발생 여부를 확인했다. 밤 12시30분부터 오전 6시 사이에 빛에 더 많이 노출된 참여자는 낮 시간 동안의 빛 노출량과는 상관없이 제2형 당뇨병 발생 위험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야간 빛 노출과 제2형 당뇨병 사이의 관계가 생각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줬다. 잠을 제대로 자지 않는 것은 물론, 자더라도 어둡게 하고 자지 않으면 혈당 조절이 어려워진다. 우리의 생체 신호가 교란되기 때문이다. 연구팀의 결론은 이렇다. “밤에 빛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은 당뇨병을 예방하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다.” 명심하자.
나와 혈당의 전쟁, ‘나-당전쟁’을 시작하며
기자는 전당뇨 단계다. 올해 초 100㎎/dL 이상으로 올라갔던 공복 혈당이 여전히 100㎎/dL 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게다가 나이가 한 살 더 먹는 내년까지 고작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왔다. 물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이는 기자 혼자만이 아니다. 국내에는 약 1600만 명이 전당뇨 단계에 있다. 어떤 이들은 전당뇨 단계면 어차피 당뇨병 환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며 자포자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전당뇨 단계를 당뇨 예방의 마지막 골든타임으로 부른다. 가역, 즉 뒤로 돌릴 수 있다는 의미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 내분비내과 교수는 “현재 혈당 수치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당뇨 단계에서 다시 정상 혈당으로 회복되는 경우도 있다”며 “정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꾸준한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일정 기간 간격을 두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그러니 포기해서는 안 된다. 거대한 당과 맞서 싸우면서도 끝까지 저항했던 신라처럼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 한다. ‘윤은숙의 나-당전쟁’에서는 정상 혈당 유지에 중요한 것들을 짚어보고, 실제 생활을 교정하며 나타나는 변화를 다룰 예정이다. 당을 견제하며 꾸준히 노력한다면 우리 모두 기벌포 전투에서 당을 격퇴한 신라(‘나’)의 기쁨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겨레 윤은숙 기자 / sugi@hani.co.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