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당이 병원 담장을 넘어 광장으로 나왔다.
2024년 9월 기준 인스타그램에서 ‘혈당관리’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은 무려 7만5천여 개에 이른다. ‘혈당’ 역시 4만2천여 개로 인기 키워드에 올랐다. 네이버 데이터랩과 구글 트렌드 등 인터넷 검색 흐름을 읽는 지표에서도 검색어 ‘혈당’ 그래프는 우상향을 그린다. 당장 유튜브에 ‘혈당’을 검색어로 넣으면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진다.
디지털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헬스케어’가 내놓은 혈당관리 플랫폼 ‘카카오 파스타’ 관계자는 “2024년 헬스케어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혈당 스파이크’와 ‘혈당관리’”라며 “혈당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건강기능식품 업계 등에서도 혈당을 관리할 수 있는 식품 개발에 나서며 관련 상품을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6~15일 서울 서초구 신세계 강남점에서 열린 ‘파스타 팝업스토어’에는 2만 명이 방문하며 그 관심을 증명했다. 파스타는 카카오헬스케어가 내놓은 인공지능(AI) 혈당관리 앱이다.
몰아치는 고혈당, 정교한 호르몬 조절 장치를 망친다
혈당은 혈액 속 포도당 농도를 의미한다. 포도당은 우리 몸 세포가 활동할 수 있도록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연료다. 건강한 몸의 모든 수치가 그렇듯이 혈당도 적정할 때 가장 이상적이다. 대한당뇨병학회의 기준에 따르면, 적정 공복혈당은 70∼100㎎/dL이며, 식후 2시간 혈당은 90∼140㎎/dL 범위에 속하면 정상으로 본다.
우리 몸은 호르몬을 통해 이 균형을 유지한다. 대표적인 호르몬이 인슐린이다. 췌장에서 만들어진 인슐린은 포도당이 몸으로 들어오면 혈액 내 포도당을 세포로 옮겨 혈당을 낮춘다. 혈당이 떨어지면 인슐린 농도도 낮아진다.
문제는 많은 현대인이 과식하고 적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혈액 속 포도당 농도가 자주 높아지면서 신체의 조절 체계가 서서히 무너진다.
김상용 조선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혈당이 급격하게 오르내리는 일이 빈번하게 오랫동안 발생하면 우리 몸도 지치게 된다”며 “인슐린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췌장의 인슐린 기능도 약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슐린이 분비되어도 혈당을 제대로 낮추지 못하거나, 아예 인슐린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교한 조절 장치가 망가지면 혈당 수치가 정상 이상으로 올라간다. 아직 당뇨병까지는 아니지만, 당뇨병 위험이 높아지는 ‘당뇨 전 단계’에 접어드는 것이다. 2022년 당뇨병 팩트시트에 따르면 국내 30살 이상 성인 10명 중 약 4명(44.3%)이 당뇨 전 단계에 있다. 인구수로 따지면 약 1497만 명에 이르는 숫자다. 이들 중 일부는 점차 ‘2형 당뇨병 환자’로 진입할 수 있다. 2형 당뇨병 환자는 신체가 인슐린을 생성하거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환자다.
위고비 열풍 등으로 부상…혈당에 대한 관심은 고무적
혈당관리가 세계적 트렌드로 떠오른 배경에는 ‘기적의 비만약’으로 불리는 위고비 열풍도 있다.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 유사체로 불리는 이 약물은 췌장에 작용해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키고 글루카곤 분비를 감소시켜 혈당을 낮춘다. 이와 동시에 음식물 처리 속도를 늦추고 뇌에 작용하여 식욕을 억제하며, 복합적으로 혈당과 체중 조절에 기여한다. 혈당과 체중이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인식이 퍼지며 혈당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혈당 다이어트’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혈당관리에 중점을 둔 식사와 운동법으로 혈당을 조절하며 건강하게 체중을 감량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490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유명 인플루언서이자 생화학자인 제시 인차우스페는 ‘혈당 다이어트’를 널리 알린 대표적 인물이다. 인차우스페는 저서 ‘글루코스 혁명’에서 “섬유질 → 단백질 → 탄수화물 순으로 음식을 섭취하면 혈당을 천천히 올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몸의 작동 원리를 모르는 것은 눈을 감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과 같다”면서 “몸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혈당이다”라고 주장했다.
연속혈당측정기(CGM)의 등장도 혈당관리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팔에 부착한 센서로 스마트폰을 통해 혈당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CGM은 혈당관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하지만 CGM의 효과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비만학회는 CGM을 이용한 다이어트가 아직 과학적·의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다만, CGM이 대중화 초기인 만큼 시간이 지나면 구체적인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조영민 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CGM은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생활 습관 교정이나 혈당 조절 효과를 볼 수 있는 그룹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2022년 1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인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글로벌 헬스케어 회사 애벗의 로버트 포드 회장은 ‘연속혈당측정기를 비롯해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이 수많은 생체 데이터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면서 건강 관리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것’으로 전망했다”며 “이는 의료 소비자들이 더 많은 의료 데이터를 손쉽게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향후 데이터가 쌓이면 더 구체적인 활용 방안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당뇨 발병 증가, 하지만 인식은 여전히 부족
젊은 세대에서 당뇨 발병이 증가하고 있지만, 혈당에 대한 경각심은 여전히 낮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대비 2022년의 2030세대 당뇨병 환자 증가율은 24%로, 전체 당뇨병 환자 증가율 21%보다 높았다. 특히 20대 당뇨병 환자는 47%나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뇨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다. 2023년 11월 대한당뇨병학회가 2030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당뇨병 인식 조사’ 결과에서는 60%가 자신의 공복과 식후 혈당 수치를 모른다고 답했다. 대한당뇨병학회는 “한번 손상된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은 회복되기 힘들다”면서 “예방이 최선의 방법이다”라고 권고하고 있다.
혈당에만 집착해선 안 돼…다양한 호르몬 불균형도 살펴야
혈당이 중요한 지표인 것은 맞지만, 지나치게 혈당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과 교수는 “고혈당의 원인은 인슐린 호르몬 외에도 8가지 이상의 호르몬 불균형으로 설명된다”며 “다양한 호르몬의 이상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당뇨병 환자는 혈관 합병증 예방을 위해 고혈압·고지혈증 등 혈당 외에도 전반적인 대사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혈당을 낮춘다고 해서 ‘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사에 집착하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내분비 내과에서 30년간 당뇨병 환자를 진료했던 이기업 전 울산대 의대 교수는 저서 ‘당뇨 특강’에서 “당뇨 합병증 예방을 위해 혈당 조절이 매우 중요하지만, 혈당만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혈당은 포도당만 측정할 뿐 지방산이나 과당·아미노산 같은 위험한 물질은 쉽게 측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혈당을 높이지 않으려고 동물성 지방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비만이나 동맥경화증이 쉽게 생길 수 있으며, 당뇨병 환자의 경우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 붉은색 고기에 함유된 동물성 단백질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신장 합병증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윤은숙 기자 /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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