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주록리 마을회관, 고소한 송편 냄새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흘러 나온다. 부녀회원들이 추석을 앞두고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줄 송편꾸러미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베테랑들의 빠른 손놀림에 8말 송편이 순식간에 작은 도시락에 담겼다. 한 손에 오색송편을 든 심재식, 이경옥, 이혜옥 할머니가 함께 차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일흔두살 동갑내기 세 할머니는 노루목길에 자리잡은 네모반듯 그림같은 집에 함께 산다. ‘노루목향기’라 이름 지은 이 집의 마당은 늘 사람의 온기로 가득하다.
16년 전 심재식 할머니가 이 곳에 집을 짓고, 50년 지기 친구 이혜옥 할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먹고 살기 바빴던 시절 함께 청춘을 보낸 두 사람은 결혼을 하지 못했다. 오래 전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들이 결혼한 뒤 혼자 지내던 이경옥 할머니가 8년 전 합류했다.
이들은 처음부터 “우리 함께 살아보자”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어울리는 것이 즐거웠던 이들은 자연스럽게 가족을 이루게 됐다. “100에서 99가 다른 거야, 성격, 먹는 거, 옷을 벗는 방식까지, 너무 안 맞는 거야.” 60년 넘게 다르게 살았던 이들이 함께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같이 산다는 것은 산전수전 다 겪어본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은 ‘서로 돌봄’이었다. 혼자라면 대충 먹게 되는 식사 한 끼도 함께 먹기에 제대로 챙겨 먹게 됐다. 아플 때 서로 챙겨주고 혼자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해외여행도 훌쩍 떠날 수 있었다.
이들의 돌봄은 서로를 넘어 마을로 확장됐다. 몇 년 전 집 뒷편 텃밭을 잔디밭으로 바꿨다. 이혜옥 할머니는 마당에 동네 할머니들을 위한 수업을 열고 외부강사를 초빙해 미술, 음악, 요가 수업 등을 진행했다. 무료한 할머니들의 시골살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일평생 농사만 짓던 할머니들에게 들린 색연필은 고된 삶을 지나온 노년에 오색빛깔 무지개가 됐다. 작년에는 이웃 동네의 아동돌봄공동체 ‘산북작은놀이터’와 협약을 체결해 할머니의 마당이 매달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로 변신하기도 했다. 여름에는 물놀이, 겨울에는 눈썰매가 인기만점이었다.
“우리는 요양원 같은 데 안 가고 서로 조금씩 도와가면서 그렇게 지내고 싶어요.”
할머니들은 혼자보다는 셋이, 셋보단 여럿이 함께 어울리는 것이 좋아서 자신들의 마당을 내어주고 서로 보살피고 함께 즐기며 살아간다고 거듭 강조했다.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충분했다. 이혜옥 할머니가 한복을 갈아입다 2020년 추석에 찍은 사진을 꺼내보여주시며 “우리 젊었네, 젊었어” 하며 웃으신다. 덕분에 한복을 오랜만에 입어본다며 의자에 앉으시는 심재식 할머니, 우아하게 노리개까지 걸고 나와 다른 할머니들의 옷고름을 만져주시는 이경옥 할머니. 할머니 삼총사와 마을 주민들의 소소하고 재밌는 그리고 특별한 일상은 계속된다.
한겨레/백소아 기자 / webmaster@huffingto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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