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구천동 계곡의 시작과 끝은 어디이고 그 길이는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실까요?
쿠니 역시 그렇게 자주 다니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작과 끝 그리고 무주구천동 계곡의 길이를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 무주계곡은 그 길이가 25km로 꽤 길다 하겠으며 그 시작은 덕유산국립공원 상봉 하부이고 그 끝자락은 이 글에서 소개하는 라제통문입니다.
라제통문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산85
구천동 계곡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장덕리
무주계곡(무주구천동계곡) 라제통문 클립 38초.
현재 쿠니가 서 있는 곳은 설천교 앞이며 저 앞으로 보이는 곳은 라제통문 주차장이며 공영주차장으로 주차비가 없는 무료 주차장이다. 그리고 기와로 된 큰 건물과 왼쪽 건물은 식당과 카페다.
길 건너 보이는 팔각정은 딱 보기에도 목재가 아닌 콘크리트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정취가 탁월하진 않지만 관리 차원에서 보면 목재로 된 팔각정보다는 훨씬 수월하고 견고하며 내구성도 좋다.
상부는 콘크리트로 되어 있고 하부의 외관 마감을 목재와 방부목으로 해두어 그런대로 멋을 살린 것 같다.
그리고 그 오른쪽 무주구천동 계곡 가로 데크를 놓아 전망대 겸 쉼터가 되어준다.
팔각정의 현판에는 덕유정(德裕亭)이라 적혀 있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덕이라… 쿠니에게 부족한 것.
넉넉하지도 않고 여유롭지도 않으니 부끄럽군.
무주구천동 계곡을 건너도록 놓여 있는 이 다리는 설천교(雪川橋).
설천이란 단어를 보거나 들으면 설천봉(雪川峰)이 생각나고 눈 덮인 덕유산국립공원, 무주리조트, 무주 스키장 등의 연관되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무주 여행을 사시사철 자주 오갔던 것 같다.
무주구천동 계곡을 말할 때,
덕유산 상봉을 말하는데 그 상봉이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겠다.
자료를 찾아본 바로는 덕유산 상봉에 제단을 쌓고라는 문헌의 글이 보였다. 보통 제단을 쌓는다 하면 최고봉이거나 그에 필적할 만한 의미 있는 봉우리를 지칭할 텐데 그렇게 보면 덕유산 상봉이란 향적봉을 이르는 말인 듯하다.
그래서 지도를 찾아봤다.
그랬더니 향적봉보다는 중봉과 백암봉 사이 계곡에서 발원한 것으로 확인된다.
아마도 쿠니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가 봄.
어쨌거나 무주구천동 계곡은 무주 계곡 중 가장 유명한 계곡이고 여름철 피서지로 많은 분들이 찾는 곳이다.
구천동이란 명칭은 과거 승려 9,000명이 계곡에서 수도를 하였다고 해서 전해진 이름이라고 한다.
무주구천동 계곡의 길이가 25km나 된다는 것은 서두에 말씀드렸는데 그 시작을 덕유산 상봉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인지 그 끝자락이라 할 라제통문을 시작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인지는 모르겠다. 쿠니는 높은 곳에서 아래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싶어 덕유산 상봉을 그 시작으로 설명하고 끝을 라제통문이라 말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쿠니의 생각이다.
설천교를 지나 라제통문(羅濟通門) 앞에 섰다.
이렇게 암벽을 뚫으려면 얼마간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걸까?
연장도 훌륭하지 못했던 그 시기에 말이다.
이 석굴문(石窟門)은 옛 신라와 백제의 경계관문(境界關門)이었다고 하지만 정확한 자료가 없고 최근에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주도되어 백성을 동원해 뚫어놓은 것이란 이야기도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재는 옛 신라와 백제의 경계관문으로 정리된 듯.
이곳은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도 알려져 많은 분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방문하고 있다.
아마도 차량 통행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일들이 가능한 것 같은데 이곳은 엄연한 도로 위라는 점을 생각해 항상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뒤 사진촬영에 임해야 할 것이다.
라제통문을 빠져나오면 전북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가 된다.
참고로 설천교를 건너기 전의 행정구역 주소는 설천면 두길리다.
바로 앞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또 하나의 하천을 만나게 되는데 이건 무주구천동 계곡이 아닌 무주 남대천이며 이 하천과 무주구천동 계곡물이 설천면 소천리 871번지 주변에서 하나로 합쳐져 무주군청 – 적벽강을 지나 금강으로 합류하게 된다.
열녀 경주 김씨 지비.
열녀라는 것이 논란이 꽤 있었는데 요즘은 없어진 것 같다.
쿠니의 소견으로는 진정한 열녀인가라는 논의를 하기 이전에 열녀를 지향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맞겠단 생각을 해본다. 열녀란 유교에서 중요시한 덕목 가운데 효(孝)와 열(烈)이 있다.
이 중에서 효는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의미하며 인류애적, 정서적, 심리적, 윤리적, 교육적인 측면에서 현재도 매우 중요한 덕목이며 수직적인 관계에서 형성된다 하겠다. 그러나 열(烈)은 현대 사상으로 보아 불합리한 점이 많다. 열(烈)의 정의를 보면 아내가 남편을 잘 섬기는 것이라 명시한다.
시대적으로 과거에는 열(烈)이 강요되었어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남녀가 수평적 관계가 된 현시대에까지 의미를 두는 것은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열(烈)이라 함은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잘 섬기는 것이라 명시되어야 한다고 본다.
저 안에 놓인 열녀 경주 김씨 지비.
이렇게 도로가 경사면에 위태하게 놓아두고 수풀에 가리도록 할 것이라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대에 맞도록 재해석해 보다 나은 위치로 옮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제통문은 암벽을 뚫은 통문으로 높이가 약 5~6m 정도 되고 너비가 4~5m 정도 되며 길이는 30~40m 정도 된다. 과거 라제통문의 동쪽은 무풍현(茂豊縣)이라 했고 서쪽은 주계현(朱溪縣)이라 부르던 것을 조선 시대에 서로 합쳐 무주현(茂朱縣)이라 하였으며 2024년 현재는 무주군(茂朱郡)이라 부른다.
팔각정, 무주구천동 계곡, 라제통문을 휘휘 둘러보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바로 인근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음식을 주문했다. 대단히 훌륭해서 까무러칠 정도가 아닐 뿐 매우 맛나게 잘 먹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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