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4년 기술지주회사 정기워크숍’서 주장
대학이 쌓은 기술을 사업화하자는 목적에서 출발한 대학기술지주가 자본력 부족, 설계·구조적 문제로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4일 부산 해운대 한화리조트 몬테소로에서 열린 ‘2024년 기술지주회사 정기워크숍’에서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정책환경의 변화와 기술지주회사 역할과 성장 조건’을 주제로 강연하며 이 같이 문제를 지적했다.
대학 기술지주는 대학 산학협력단이 출자한 법인이다. 2000년 초반에 대학이 축적한 기술, 특허를 사업화해 경제 성장에 기여토록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제도다. 하지만 주요 대학을 제외하고는 아직 투자수익률이 낮고 재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는 데다 설립만 해 두고 활동은 유명무실한 곳이 적지 않다는 평가가 따른다.
손수정 선임연구위원은 “기술지주회사 제도 도입 후 일정 기간이 지났지만 출자하기에 적절한 기술을 갖고, 자회사 보육을 위한 적정 자본력을 확보하고, 외부 투자 연계를 위한 최적의 전문성을 갖추고 활동하는 기술지주회사는 몇 안 된다”고 지적했다.
손 선임연구위원은 기술지주회사가 기술이전·사업화를 전개하고 성장시키는 데 있어 자본력이 매우 중요하지만, 현재 스케일업 펀드와 같은 공공펀드가 부족하거나 부재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해결방안 중 하나로 해외 공공VC(벤처캐피탈)인 ‘매스벤처스’ 사례를 소개했다. 이들은 대학 내 TLO(기술이전전담조직)를 대상으로 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TLO가 필요한 후속 R&D(연구·개발) 예산을 비롯해 시제품 생산, 프리시드부터 시리즈A 단계까지의 공공기술사업화펀드를 체계적인 시스템 내에서 제공한다. 손 선임연구위원은 “대학 TLO가 유망 기술 스타트업을 먼저 발굴하고 키워 성장성을 입증하면 매스벤처스가 후속투자를 연결하는 구조”라며 “아쉽게도 한국엔 이런 모델이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대학이 가져가는 자본소스가 상당히 제한적인데, 자체적으로 ‘우리는 어떤 자본력을 키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우선 던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 내 100여 개 대학들이 지닌 스케일업 펀드 구조를 분석한 자료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 대학 스케일업 펀드는 기술료(20%)와 지분수익(3%), 연간사업비(18%) 등으로 이뤄진 기관 내부 재투자 재원이 41%, 졸업 동문과 재단, 개인 등의 기부금이 28%, 중앙정부와 지자체 지원이 26%, 엔젤·벤처·협력기업의 투자가 4%를 차지했다. 손 선임연구위원은 이처럼 해외 대학 TLO의 펀드 포트폴리오는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는 반면 국내 대학기술지주의 재원 분포는 정부 지원사업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올해처럼 정부 연구개발 예산이 갑자기 큰 폭으로 삭감됐을 때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게 대학 사업화 예산”이라며 “정부 의존도가 심화되면 될수록, 정부가 인지하는 기술 사업화 중요성에 대한 변동에 따라 대학기술지주가 시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대학기술지주의 실질적인 권한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대학 TLO의 경우, 일정 기술료 수입이 스케일업 펀드로 유입되는 구조를 갖추고 여기에 공공·민간 투자 프로그램을 연결해 스타트업 성장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자본력을 형성한다. 또 연구자의 직무발명보상금도 우리처럼 법으로 정하기 보다는 자체적으로 유연하게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손 선임연구위원은 “대학 기술지주회사가 대학과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기술 스타트업 육성의 한 축으로 자리 잡으려면 재투자를 위한 제도 개선 등 대학기술지주회사의 발전 방안을 이전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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