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서귀포 화순해수욕장 캠핑장에서 마구마구 쏟아지는 빗줄기에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아주 늘어져 더 잘까도 싶었지만 선배 부부와 약속한 장소가 하필 제주동쪽 끝자락인 성산이다.
비에 옴팡 젖어 물이 줄줄 떨어지는 텐트를 대충 털어 렌트카 뒷자리에 던져놓고 성산 일출봉을 향해 달린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성산일출봉 스타벅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문을 여는데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불가마 더위로 폭격을 하는 겐가?
어젯밤 그렇게 심한 빗소리에도 군소리 없이 지냈건만 오늘은 불볕더위로 인내심 테스트를 하는 걸까?
무지하게 습하니 더운 건 두말할 것 없는 일이고 이 땡볕은 뭐란 말이냐.
이런 불만을 입안 가득 머금고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설 때,
와우 너어~~~무 너무 좋다.
이 시원함을 무슨 말로 표현하겠나.
주차장에서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기까지 꼴랑 50여 미터 정도일 뿐인데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선배 부부와의 이런저런 담소.
오늘은 어디서 잘 거냐고 내게 물어보시는 선배를 향해 난 호기롭게 여기 이곳이 모두 나의 성산숙소 아니냐 반문하기 “으이그~”를 연발하시며 꿉꿉하지 않냐 그걸 뭐 좋다고 그렇게 다니냐 비바람 심하던데 괜찮냐 하신다.
“아니 캠퍼가 비바람 좀 불었다고 캠핑 안 하나요?”라고 답변을 하며 떠들떠들하기를 1시간여.
배고프다.
그리고 도착한 이곳은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식당.
아직 제주동쪽 끝자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빵 큰 갈치.
고등어에 전복에 새우까지.
거하게 식사를 하고 잠시 이동을 해 도착한 이곳은 최근 제주핫플로 떠오른 제주동쪽 난산리 다방.
나눌만한 이야기는 아까 다 나눴다 싶었는데 여기서도 하염없이 튀어나오는 오만 잡동사니 이야기들.
이번 제주도 여행은 상당히 여유롭다.
애시당초 힐링을 하기 위해 왔던 여행이기 때문일 게다.
나의 힐링은 별도의 성산숙소 없는 성산캠핑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억지스러우려나?
그리고 다시 이동을 해 오늘 나의 성산숙소 즉, 야영지에 도착했다. 성산일출봉 가까이 있을 때만 해도 땡볕이 얄미울 정도로 따갑더니만 중산간 지방으로 올라오는 동안 날씨가 이렇게 변해버렸다.
바람은 더더욱 심하게 지땡이다.
이곳이 오늘 나의 잠자리가 되어 줄 공간인데 생각을 다시 해봐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젖은 텐트이니 대충 펴고 자면 되겠는데 바람이 문제다. 이 바람이면 텐트가 찢어지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
우산 들고 있기를 포기하고 그저 멍하니 운해 가득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그리고 비가 이렇게 퍼붓고 맞고 있는 중인데 끈적임은 왜 이렇게 심한 거냐? 요즘 비는 물풀이라도 섞여서 내리나?
갈등의 연속을 체험 중인데 급 울리는 스마트폰.
“어이쿠 이게 뉘십니까?”
인별그램에 올린 내 글을 본 지인이 본인도 제주라며 연락을 해줬다. 이 순간 어찌나 감사하던지.
지인은 비바람 심한 게 청승떨지 말고 본인이 묵고 있는 성산숙소로 오라고 꼬신다. 사실 꼬시는 게 아니라 은혜를 베풀어준 것이라 해야겠다. 과거와 달리 나이가 들며 바뀐 것 중 하나가 풀려나온 은혜를 내치지 못하고 날름 받아낸다는 것. 갈등의 혼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지인의 전화는 구원의 손길이라 해야 맞겠다.
도착한 제주동쪽 물고기나무라 불리는 성산 게스트하우스에서 가벼운 야식, 시원한 생수, 상쾌한 샤워까지 마치고 너무도 말끔한 기분으로 잠자리. 쿨쿨. ZZZ!
성산 게스트하우스에 몸을 누이고 해가 뜨고 나서야
잠이 깨어 옆으로 난 창문을 바라본다.
어제 그 비는 온데간데없고
바람은 흔적도 없다.
비리비리한 몸땡이를 힘겹게 가누며 잠자리를 정리하고 2층 창밖으로 보이는 성산 게스트하우스 테라스로 향한다.
이 거짓말 같은 푸르름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의자에 가득한 빗물을 보니 어젯밤 비가 온 것은 확실한데 저 창공을 바라보며 그 놀라운 기세의 비바람이 나와 내 박지를 덮쳤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아침 식사를 하기 전 렌트카 뒷좌석에 널브러져 있던 젖은 텐트를 꺼내 고이 널어놨다.
오늘 잠자리도 제주동쪽 함덕해수욕장 야영장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말려서 텐트를 펼 생각이기 때문이다.
물이 똑똑 떨어지던 텐트이건만 이렇게 널어놓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뽀송하게 잘 말라 있었다.
이곳은 성산숙소 물고기나무.
왜 물고기나무인가 했더니 여기 주인장께서 목공예를 하시는 분이란다. 궁금해서 만드셨다는 결과물을 구경했는데 이게 그냥 단순한 목공예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라 해야 맞을 듯. 그래서 확인을 해보니 전공자이시고 관련한 작업을 꽤 오랫동안 하신 분인데 서울에서 사시다가 제주가 좋아서 내려와 여기 성산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한지 10년 정도 된 것 같다고 하신다.
재미나게 사시는 주인장 내외분과도 인사를 나누고 공군에서 직업군인으로 생활하다 제대하셨다는 분과도 인사를 나누고 이제 25세 된 귀여운 낭자 2명과도 인사를 나누며 아침 식사를 마쳤다.
성산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비록 성산숙소 밖으로 나서면서 그저 기억으로 남을 분들이겠지만 그마저도 소중한 인연이라 생각한다.
물고기나무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중산간동로 4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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