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주영 기자】 대세 배우 손석구와 다양한 매체에서 연기력을 증명한 배우 최희서가 연극 ‘나무 위의 군대’에서 호흡을 맞췄다. 9년 전 50석 규모의 대학로 소극장에서 각자 사비 1백만원을 털어 함께 공연을 올린 이후 다른 갈래로 뻗어 가던 두 배우는 오늘날 365석 규모의 극장에서 연리지처럼 엮이며 서로의 연기 인생을 지지했다.
‘나무 위의 군대’는 태평양 전쟁이 끝을 향하던 1945년 4월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일본의 패전을 알지 못한 채 1947년 3월까지 약 2년을 가쥬마루 나무 위에서 숨어 지낸 두 병사의 실화를 각색한 연극이다. 2013년 도쿄에서 관객에게 공개된 이후 3년 주기로 재연, 삼연 됐고 국내에서는 이번이 초연이다.
지난달 27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진행된 ‘나무 위의 군대’ 기자간담회에 ‘신병’ 역의 손석구, ‘여자’ 역의 최희서, ‘상관’ 역에 더블 캐스팅된 김용준, 이도엽 배우와 민새롬 연출가 참석했다. 극의 공간적 배경인 가쥬마루 나무가 스산한 기운을 뿜으며 그들 뒤에 자리했고 작품의 해석과 캐릭터 분석에 관한 배우진과 연출가의 치열한 고민이 질의응답을 통해 드러났다.
캐스팅 비화를 묻는 질문에 민새롬 연출가는 “기가 막힌 캐스팅이었다. 조국과 상대방에 대한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진 두 인물이 필요했는데, 손석구 배우는 배신감이라는 통증을 예리하게 보여줬다. 이도엽 배우는 신뢰가 무너지는 과정을 유리잔에 금이 가듯 섬세하게 표현했고 김용준 배우는 뚝배기가 깨지듯 묵직하게 연기했다”라며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드러냈다.
극의 화자 역할을 하는 ‘여자’ 역의 최희서는 캐릭터를 구축한 과정에 대해 “원문에 ‘오키나와’, ‘일본’이라는 지명 대신 ‘이 섬’, ‘본토’라고 쓰인 이유는 특정 지역성을 강조하기보다 반전주의(反戰主義)와 개인 간 상호 믿음을 얘기하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그 주제 의식이 2023년 서울의 관객에게도 온전히 전달됐으면 해서 기모노가 아닌 시공간을 특정할 수 없는 드레스를 의상으로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매체와 연극에서의 연기에 차이가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손석구는 “형식보다는 어떤 이야기냐에 따라 연기가 달라진다. 매체 연기라도 카메라 앵글 사이즈가 클로즈업이냐, 풀숏이냐에 따라 표정을 섬세하게 연기해야 하는지 제스처를 자연스럽게 써야 하는지 결정한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재밌게 전달하는 것, 그뿐이다”라고 답했다.
오히려 ‘신병’ 역이 여태 해왔던 캐릭터들과 달라 고민이 컸다는 손석구는 “내 연기 스타일이 맞다는 확신을 연극에서 증명하고 싶었다. 때묻은 내가 어리고 순수한 ‘신병’을 연기하는 건 도전이었지만, 상대방을 믿어야만 하는 상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이 싹트는 내면의 갈등은 현대의 한국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라 생각했기에 더욱 진지하게 임했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상관’ 역의 이도엽 배우는 육성이 아닌 마이크를 사용하는 이유에 관해 “배우가 소리를 내는 방식에 4가지가 있는데 그중 위스퍼(속삭이기)는 연극 무대에서 쓰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마이크가 이를 보완해 준다면 섬세한 정서를 객석에 더욱 잘 전달할 수 있기에 나는 오히려 마이크 사용을 추천하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상관’이 왜 나무에서 내려오지 못하는지 4개월 동안 고민했다는 김용준 배우는 “명예나 충절을 위해 깨끗한 죽음을 선택하라는 ‘옥쇄(玉碎)’정신이 강요됐던 일본군은 죽어야 한다는 의무와 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깊은 좌절을 겪었을 것이다. 죽음에서 도망친 ‘상관’은 나무에서 내려오는 순간 자신과 국가 간 신의도, 신병과의 수직관계도 무너질 것을 알았기에 현실 직시를 거부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답변했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에 힘입어 오는 8월 5일까지 진행되는 정기공연 이후 8월 8일부터 12일까지 연장 공연을 올린다. 공연은 인터미션 없이 110분간 진행되고 티켓은 LG아트센터 홈페이지와 YES24를 통해 예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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