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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씁쓸해요. “
주머니를 열게 하는 저렴한 가격과 입맛을 돋구는 달짝지근한 양념이라는 장점을 내세우며 ‘국민 간식’으로 꼽히던 떡볶이가 이제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국민 간식이 아닌 브루주아(부자) 한 끼 식사로 자리잡으면서다.
수많은 배달음식 사이에서 인기 메뉴로 꾸준히 소비되는 떡볶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외식 수요가 감소했을 당시에도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했다. 지난 2021년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 주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떡볶이는 전 연령대에서 주문율 5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떡볶이의 무한 진화에 환호하는 동시에 아쉬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볍게 먹기엔 부담스럽고 과거에 즐겼던 떡볶이 특유의 맛이 희미해졌다는 지적이다. 끊임 없이 진화하는 떡볶이 시장의 현황은 어떤 모습일까.
“떡볶이 주문한 거 맞아?”… 각양각색 메뉴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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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앱에서 ‘떡볶이’를 검색하면 100개가 넘는 프랜차이즈를 볼 수 있다. 커지는 시장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마라 ▲크림 ▲로제 ▲짜장 ▲카레 등 다양한 맛의 떡볶이가 등장했다. 맛뿐만 아니라 ▲맵기(착한 맛·보통·매운 맛·캡사이신 등) ▲토핑(차돌·오징어튀김·막창·페퍼로니 등) ▲세트 및 사이드 메뉴 구성(감자튀김·핫도그·멘보샤·치킨 등) 등 각종 요소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떡볶이 프랜차이즈 업계는 과거 고추장 소스에 떡·어묵을 섞어 만들던 떡볶이와 달리 ‘독특한 메뉴 만들기’ 경쟁에 돌입했다. 황세희 요식업창업전문가는 떡볶이 프랜차이즈의 변화·확장에 대해 “다양해진 소비자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골라 먹는 재미’를 강조한 것”이라며 “맛부터 맵기, 토핑 등을 개인의 취향에 맞게 주문하는 이색적인 콘셉트로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한 식당에서 수십개의 메뉴를 판매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도 각양각색 떡볶이가 자리를 잡은 이유로 꼽혔다. 황씨는 “한 가지 메뉴만 집중적으로 판매하기엔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크다”며 “다양한 메뉴를 세트 메뉴로 묶어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떡볶이+치킨+순대+튀김’ ‘떡볶이+핫도그’ ‘떡볶이+치즈볼+만두’ 등 독특한 구성의 세트 메뉴가 등장해 소비자를 고민에 빠트리고 있다.
“떡볶이도 인플레이션?”… 1만원 훌쩍 넘는 ‘1인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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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떡볶이 프랜차이즈에서 판매하는 떡볶이 가격이 1만~2만원대를 맴돌자 ‘불만’을 호소하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프랜차이즈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을 즐기는 소비자들은 이른바 ‘떡볶이플레이션'(계속해서 오르는 떡볶이 가격)에 불만을 표출했다.
떡볶이가 ‘최애'(가장 좋아하는) 메뉴라는 대학생 한모씨(여·24)는 “어느 순간부터 떡볶이 1인분이 7000원 이상으로 변했다”며 “오히려 1인분에 5000원인 매장을 보면 환호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프랜차이즈는 개인 매장보다 싸다는 장점에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별난 토핑이 올라간 떡볶이라는 이유로 프랜차이즈 측이 ‘가격 올리치기’를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떡볶이가 ‘서민’ 음식보다는 ‘고급’ 음식에 가까워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떡볶이에 대한 맛평을 개인 블로그에 공유하는 류한솔씨(남·31)는 “길에서 현금 결제한 뒤 간단하게 쏙쏙 집어 먹었던 떡볶이를 보기 힘들어졌다”며 “집에서 비장하게 먹을 준비태세를 갖춘 후 최소 2~3인분치의 떡볶이를 카드 결제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었다”고 꼬집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높아진 떡볶이 가격을 문제 삼거나 각 프랜차이즈의 가격을 비교하는 글이 다수 게재됐다. 한 누리꾼은 “과거 500원이던 떡볶이의 가격이 2만5000원으로 50배나 치솟아 서민 음식이라는 느낌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특히 “떡볶이가 비싸져서 슬픈 이유는 가끔 떠오르는 등하굣길의 추억이 잊혀지기 때문”이라는 글이 많은 소비자의 공감을 샀다.
길거리 분식집이 뜬다?… “내 추억을 지켜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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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를 애정하는 소비자들은 “학창시절 길에서 친구랑 들렸던 분위기의 분식집을 이제는 보기 힘들다”며 “맛과 추억을 한번에 챙길 수 있는 곳인데 추억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아쉽다”고 씁쓸해했다. 향수를 유발하는 매개체로 떡볶이가 거론되기 때문일까. 길거리 분식집은 이른바 ‘떡볶이 덕후’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길거리 분식집을 찾은 대학생 이모씨(여·23)는 “새로운 맛보다 익숙한 맛이 더 무서운 법”이라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집밥이 최고라고 하는 것처럼 어린시절 친구들과 동전으로 사 먹던 길거리 분식점의 떡볶이는 최고의 맛과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씨와 함께 떡볶이를 즐기던 채모씨(남·24)는 걱정을 내비쳤다. 그는 “떡볶이가 국민간식으로 거듭나면서 각종 프랜차이즈가 우르르 등장해 체인화되고 말았다”며 “프랜차이즈의 공세에 길거리 분식집이 사라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십가지에 달하는 떡볶이의 등장으로 많은 길거리 분식집이 사라지고 있다. 잃어버린 맛은 되찾을 수 있지만 사라진 추억은 기억 속에만 남게 된다. 길거리 분식집을 애용하는 소비자들은 “서민의 마음을 든든하고 따뜻하게 채워주는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소망한다. 이 같은 소비자가 많아지면 대형화된 떡볶이 시장에서 우리만의 맛과 추억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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