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유행이 하나둘씩 생겨나는 것 자체가 트렌드인 시대다. 언제부터인가 쑥, 인절미, 미숫가루, 흑임자 등을 옛날 사람들 혹은 할머니나 할아버지 취향의 먹거리라 해 할머니의 방언인 ‘할매’와, 1980-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를 합쳐 할매니얼이란 말이 생겼다.
다만 이 말 자체가 MZ세대들을 홀렸느니, MZ세대들이 열광하는 엄청난 트렌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렇게까지는 아니다. 할매니얼이란 이 단어는 2022년부터 급격히 사용하는 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대체 이 단어의 시작이 어디였는지를 보면, 2021년 여름부터 약겟팅(약과+티켓팅)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당시 경기 의정부의 한 약과 가게에서 찹쌀과 호박으로 만든 약과들이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많아지며 마치 피켓팅을 하는 것처럼 구매하기가 점점 힘들어져 비슷한 결의 약겟팅이란 단어가 생긴 것이다. 한 약과집에서 판매하던 약과가 흥하니 너도나도 약과를 활용한 디저트들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지금에 이른 것.
음식만 놓고 보면 정말 어르신들이 드실 것 같다. 미숫가루나 흑임자, 식혜, 약과 등은 할머니 집에 가면 볼 수 있는, 특별한 유행을 선도한다는 MZ세대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음식들은 단순하게 보면 다 기본적으로 ‘맛’있는 음식이다. 나이·세대를 떠나 가져다 주면 호불호는 갈릴 수 있어도 먹을 수 있다면 맛있게 먹는 사람들은 많을 음식이란 뜻이다.
이 ‘할매니얼’이란 트렌드를 이끄는 것은 단연 약과로, 사실 예전까지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디저트나 간식은 아니었다. 오래된 다방이나, 편의점 간식 매대 한 켠에서 흔히 볼 수는 있어도 사람들이 자주 찾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한 약과집의 약과가 인기가 늘어나고 방문판매가 중단되어 온라인 판매로 바뀔 정도로 인기가 많아진다. 이 흐름을 지켜보던 다른 가게들은 약과가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 약과집은 그저 평범하게 약과를 판매하고 있었던 것뿐이지만, 어느샌가 약과가 맛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몰리게 된 것도 당연한 흐름이다.
맛있는 음식이라면 당연히 입소문이 퍼질 테니 딱히 그것이 약과라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닐 테다. 그러나 이 흐름엔 약과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음식이란 고정관념에서 젊은 세대들에도 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변한다. 어떻게 보면 원래부터 맛있었던 음식이 사람들이 눈에 확 띄었고, 그게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이지만 말이다.
약과는 밀가루를 꿀·참기름으로 반죽하여 약과판에 박아 식물성 기름에 지져 만드는 음식이다. 밀가루에 소금·후추·참기름을 넣고 골고루 비벼서 잘 섞이도록 체에 치고, 여기에 꿀·생강즙·청주를 넣고 되직하게 버무려서 약과판에 꼭꼭 눌러 박는다. 기름이 끓으면 약과를 넣고 속이 익을 때까지 서서히 지져서 고운 토색(土色)이 나도록 지져 계핏가루를 넣은 조청이나 꿀에 담근다. 이것을 건져서 그릇에 담고 잣가루를 뿌려 마무리한다.
만드는 설명부터가 벌써 달달함에 빠져 죽을 것 같은 디저트다. 한 마디로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음식이며, 하나만 먹어도 혈관이 꽉 막힐 것 같은 단 간식 중 하나다. 젊은 세대들은 특히 유행에 민감하고 신선한 것을 좋아한다. 약과를 활용한 디저트는 순식간에 베이커리샵, 디저트가게, 프랜차이즈 등으로 퍼져나갔고 더불어 기업들 또한 쑥이나 흑임자, 미숫가루 등을 활용한 ‘할매’틱한 음식들을 내놓는다.
보해양조는 디저트 카페 설빙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2022년 4월 홈플러스 막걸리 카테고리에서 매출 1위를 기록했던 ‘설빙 인절미순희’의 후속 제품인 ‘설빙흑임자순희’ 막걸리를 출시했다.
흑임자와 100% 우리쌀 순희 막걸리를 블렌딩해 개발했으며, 설빙의 ‘흑임자찰떡빙수’의 특성을 담았다. 보해양조 관계자는 “설빙 흑임자순희는 단순히 재미를 위한 콜라보를 넘어 각 브랜드가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는 제품 간의 만남으로 탄생했다”고 전했다.
꼭 약과뿐만이 아니어도 할매니얼로 통칭해 부르는 이 트렌드는 복고, 뉴트로 등 특히 패션계에 불고 있는 바람과도 일맥상통한다. 크로플이나 쿠키, 와플 등 요즘 디저트에 묘하게 옛날 맛이 느껴지는 약과나 쑥, 흑임자나 미숫가루 등 옛날 냄새가 나는 음식들을 끼얹는 식이다.
사람들의 눈길을 받지 못했던 편의점의 약과도 같은 상승세를 보였다. 올해 1월 편의점 CU는 147%, GS25는 181% 판매율이 상승했고 2022년 말 기준 떡·한과 가맹점 수는 1만 3,000개 이상으로 디저트 매장은 그중에서 44%에 달한다. 떡과 한과류는 확실히 매출 비중이 오른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카드에 따르면 디저트 전문점의 매출액은 2020년에 전년대비 8%, 21년 28%, 22년 47% 증가하면서 최근 4년 동안 꾸준한 매출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디저트 전문점은 66%를 기록한 ‘떡·한과’였다. 특히 디저트 전문점 내 떡·한과 매출 비중은 2019년 22.7%에서 지난해 25.7%로 상승했다.
사먹는 것 외에도 약과를 직접 집에서 만들어 보는 체험이나 강좌들도 SNS와 유튜브에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다. 집에서 만들기에 그렇게 어려운 음식도 아니고, 잘만 만들 수 있다면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재료도 반죽과 꿀, 계피, 조청, 물엿, 설탕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 것들을 끌어모아 만들 수 있어 이 풍경은 마치 ‘전통음식 만들기 체험’ 같은 느낌을 준다.
재미있는 건 약과를 그 자체로만 먹는 건 또 아니다. 편의점에 있는 약과 하나만 사 와도 아이스크림을 얹고, 쿠키와 함께 먹거나, 케이크 위에 올려 먹거나 하는 등 모든 음식과 같이 먹을 기세의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한다. 사실 약과는 워낙 단 음식이기도 하고, 단 것을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아 어떤 디저트와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예전 르뱅쿠키나 소금빵이 그렇게 유행했듯이 지금은 크로플 위에 약과를 올리고 마카롱 위에 약과를 올리고 약과 위에 아이스크림을 올려 먹는 것을 즐긴다. 이 나라에는 소위 ‘맛잘알’과 ‘쩝쩝박사’들이 가득해, 약과 하나라는 음식에도 온갖 아이디어를 첨가해 탄생하는 디저트들을 보면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옛 시대엔 꿀이라는 게 아주 귀했고 몸에 좋아 꿀을 약으로 생각했고, 우리나라는 귀한 것이라면 이름 앞에 약을 붙였다고 한다. 그 정도로 귀한 꿀이 많이 들어간 약과는 마치 몸에도 좋은 ‘약 같은 과자’라해 약과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러나 엄청나게 단 음식인 만큼 맛있다고 많이 먹는 것은 금물이다.
광주자생한방병원 이일석 원장은 “약과를 많이 먹을 경우 밀가루의 글루텐 성분이 소화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소화력이 좋지 않은 이들은 섭취량을 조절하는 편이 좋다”고 전했다. 약과 하나는 약 150㎉정도로 밥 반 공기 열량과 비슷하다.
약과 하나 자체의 열량도 크지만 거기에 여러 디저트까지 섞어 먹는다면 포화지방과 액상과당 함량이 자연히 높아지고 특히 심혈관 질환이나 당뇨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과식하면 안 될 음식이기도 하다. 우리의 췌장은 소중하니, 맛있어도 적당량을 섭취하는 것이 우선이다.
할매니얼이니 뭐니 대단한 트렌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단어가 굳이 유행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약과를 사 먹는 사람들에겐 정작 할매니얼이란 단어를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을 테니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맛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오픈런도 불사하고, 방문이 안 된다면 시간이 걸려도 기어코 사 먹는 경우가 많다. 그저 맛있는 게 있으면 궁금해서 찾아가고 먹는 것인데 지금은 약과가 디저트에 자주 등장하면서 엄청난 트렌드가 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일 뿐이다.
약과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맛있고, 현재는 더 새롭고 특별한 디저트로 만들기 위해 고민과 개발하는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흐름에 서 있다. 아직 우리나라엔 충분히 맛있음에도 유행을 타지 못하는 옛 음식들이 많아 이 정도는 ‘약과’다 . 우리나라 전통 디저트들이 마카롱과 만나, 크로플과 만나, 휘낭시에와 만나 탄생한 일명 ‘K-디저트’, 한식으로 유행한다면 얼마든지 늘어도 좋을 테니.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