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 다녀갔던 곳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한다. 그런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15박을 한 지역에서 머문 스타가 있다.
바로 사랑꾼 배우 최수종이다. 그는 전남 순천의 저전마을에서 2022년 여름을 시작으로 네 차례에 걸쳐 총 보름 가량을 여행하고 갔다.
과연 그를 저전마을로 오게끔 한 매력은 무엇일까. 궁금증을 품고 순천행 기차에 올랐다.
(좌)순천역/ (우)순천 남초등학교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용산역에서 출발한 KTX는 3시간이면 순천역에 닿는다. 짧은 시간 동안 저전마을 정보 검색에 들어갔다. 녹색창에 따르면 저전마을에는 약 2600명이 살고 있다. 한자로 된 지명은 닥나무 저(楮)와 밭 전(田)자를 쓴다. 무릇 과거에 제지 산업이 발달했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실제로 종이 원료로 사용했던 닥나무를 식재하던 곳이라서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저전동은 남산과 마주하고 있다. 마을의 초입부터 산에서 내려오는 꽃내음이 퍼진다. 산 허리께에는 벚나무가 듬성듬성 분홍색으로 물든 머리를 뽐낸다.
저전마을 개인 사유지 정원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진짜 자랑거리는 정원이다. 약 97만㎡(약 29만 평) 면적의 동네에 정원만 16개에 달한다. 골목을 돌 때마다 마주치는 아름다운 정원 때문에 발이 묶일 정도다.
삼지닥나무꽃부터 장미꽃까지
삼지닥나무꽃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3~4월에 저전동에 방문한다면 희고 노란빛이 섞인 꽃이 가지 끝에 뭉텅이로 모여 머리를 흔들고 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동그랗고 귀여운 꽃이 바로 저전마을 태생의 상징인 ‘삼지닥나무꽃’이다. 가장 튼실하게 뿌리 내린 삼지닥나무는 이웃사촌 정원 중 하나인 오월의 정원에서 만날 수 있다.
이웃사촌 오월의 정원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이웃사촌 정원은 개인 사유지에 있지만 관광객도 구경할 수 있는 이웃의 정원을 뜻한다. 마을을 돌며 7개의 이웃사촌 정원을 찾는 것도 묘미다. 닥나무 외에도 절벽이나 돌에 붙어사는 난초과의 여러해살이식물 석곡 수십 종, 해가 뜨면 꽃잎을 피고 해가 지면 오므리는 흰 튤립을 볼 수 있다.
이웃사촌 오월의 정원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5월에는 소담스럽고 풍성한 장미꽃이 핀다. 오월의 정원은 저전동 주민이자 자칭 타칭 난 박사 백남종 마을 정원사가 관리하는 개인 사유지지만 관광객이 정원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며 본격적으로 정원을 만들고 관리하기 위해 마을의 담장을 대부분 허물었기 때문이다. 관광객과 주민이 스스럼없이 소통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백남종 마을 정원사는
담장을 허물며 내 마음도 허물어졌다며 관광객이 발걸음 하면 언제든 문을 열어주겠다
는 다정한 말을 전했다.
장독이 모여 장독대 화분 정원
장독대 화분 정원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장독대 마당 정원에 가면 하트 모양 희귀종 분홍동백나무를 볼 수 있다. 박원배 마을정원사와 주택의 노부부가 관리하는 곳으로 장독대를 화분으로 사용해서 보는 재미를 더했다.
넓은 장독을 화분 삼아 굵직하게 뿌리 내린 통통한 선인장과 한들거리는 노란 수선화가 서로 으스댄다. 연보랏빛의 백합과 구근식물 무스카리도 질세라 길고 곧은 꽃대를 자랑한다. 마당 정원에 고추도 널고 김장철에는 김치도 담가서 색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화원과 꽃집이 한 곳에
보랏빛 향기 정원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발걸음 닿기도 전에 싱그러운 허브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보랏빛 향기 정원은 필수 코스다. 누구든 쉬어갈 수 있게 벽돌과 나무로 직접 만든 벤치가 대문 밖에서 오는 이를 맞이한다. 화원과 꽃집을 겸하는 상업정원으로 김영주, 박미경 마을 정원사가 관리하는 곳이다.
이름에 걸맞게 화단에 다양한 보라색 허브가 심겨 있으며 할미꽃, 긴 타원형의 보랏빛 꽃을 피우는 낙엽 관목 부들레야 등이 보랏빛 행렬을 이룬다. 미선이와 명자도 만날 수 있는데 장미과의 낙엽관목 명자나무와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 특산식물 미선나무도 여기에 있다.
에벤에셀 이끼 정원 체험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보랏빛 향기 정원 안쪽의 에벤에셀 꽃집에서 2만~3만원대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이끼 정원, 수경 재배 화분, 다육식물 정원 등을 만들 수 있다.
박미경 정원 관리사는
보랏빛 허브가 가득한 이곳이 내 일터라는 게 너무 행복하다. 허브도 각기 자신만의 향기가 있듯이 이곳에서 여유를 즐기며 사람들이 자신의 향기를 찾아갔으면 좋겠다
고 밝혔다.
벚꽃이 흐드러진 저전 성당
저전 성당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저전 성당은 100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순천에서 가장 오래된 천주교 성당이다. 교회도 저전동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해 높은 담장을 허물고 성당 옆길을 새로 텄다.
저전 성당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성당의 유휴 공간을 관광객을 위한 무료 주차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성모 마리아 조각상이 있는 성모 동굴의 장엄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봄에 가면 저전 성당 앞의 벚나무가 흐드러져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한다. 교회 앞 벤치는 지역 주민들의 소풍 명소이기도 하다.
그 옛날 세라복의 추억
제일교복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복고는 사실 유행을 타지 않는다. 추억은 항상 우리 곁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세라복을 기억한다면 저전마을은 제격이다. 세라복의 레트로한 멋에 푹 빠지고 싶은 이를 위해 교복 대여점이 운영 중이다. 중학교 졸업 후 바로 양장을 배운 60년 경력의 박춘이 재단사가 운영하는 제일교복점이 그곳이다. 남자, 여자, 아이 교복까지 맞춤형을 입어볼 수 있다. 1940년에 설립해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순천여고의 옛 교복을 오직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다.
어디서 찍어도 예술 벽화 골목
저전마을 벽화 골목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교복으로 갈아입었다면 투박한 만큼 정겨운 빨간 우체통과 공중전화를 만날 수 있는 벽화 골목길은 꼭 걸어야 한다. 혼자 방문하는 여행객도 외롭지 않도록 함께 사진 찍을 수 있는 학교 선도부 캐릭터 설치물도 만날 수 있다. 우체통, 공중전화, 선도부 캐릭터 동상, 벤치 등 어디서 찍든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는 사진 명소다.
마중물 소원함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저전마을에는 마중물 소원함이 있다.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엽서에 사연을 적어 내는 우편함이다. 마중물은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위에서 붓는 물’이다. 겉도는 이웃, 마음 쓰이는 이웃 한 명까지 다정하게 신경 쓰는 순박한 마을이다.
옥천을 따라 대나무 숲과 벚나무가 빼곡히 강변을 두르고 있는 아름다운 풍광은 저전마을의 순박한 인심을 연상케 한다. 저전마을의 마중물 관광객이 돼 보자. 마음에 아로새길만한 추억을 만들어 갈 것이다.
숙박 시설
푸릇한 정원 뷰 마을 호텔
어여와 2호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이름부터 정감 가는 어여와 2호는 빈집을 재단장한 마을 호텔이다. 어여와 1호, 2호, 3호가 각기 다른 콘셉트를 가진다. 어여와 2호는 푸른 잔디밭과 산들대는 꽃이 가득한 ‘정원 스테이’다. 호텔 관리인이 근처에 상주하며 정원을 관리한다.
어여와 2호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어여와 2호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방 2개에 침대 2개가 있고 주방도 따로 있어서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추천한다. 너른 정원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테라스도 있다. 테라스의 2인용 테이블에 앉아 아침에는 일출을, 저녁에는 일몰을 보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 좋다.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거나 모닥불을 피워놓고 캠프파이어를 할 수도 있다.
맛집 3선
콧대 높은 단일 메뉴 콩나물국밥집
옴팡골 콩나물국밥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여행지에서 먹는 첫 끼는 첫인상과 다름없다. 무엇을 먹는가에 따라 앞으로의 기대감이 좌우한다. 저전마을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일 수 있는 첫 끼는 현지 주민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면 후회 없다. 옴팡골 콩나물국밥집은 허한 속을 뜨끈하게 달래준다. 단일메뉴로 ‘콩나물국밥’만을 판매하는 콧대 높은 식당이다. 30년 넘게 장사를 이어오고 있다.
옴팡골 콩나물국밥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국밥을 시키면 1인당 날달걀 두 개를 준다. 얼큰하고 칼칼한 국물에 아직 숨이 죽지 않은 콩나물이 아삭하게 씹힌다. 쫄깃한 오징어젓갈과 깍두기, 배추김치가 밑반찬으로 나오는데 100% 국내산 재료로 만든 정직한 김치다. 콩나물국밥은 8000원이다. 우리 전통 술 모주도 판매하는데 한 잔에 1000원, 한 병에 4000원이다. 매일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한다.
점심 때만 문 여는 배짱 식당
대성식당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대성식당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점심 때만 문을 여는 배짱이 두둑한 사장님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갈치조림과 추어탕, 장어탕 등을 주 메뉴로 하는 대성식당이다. 갈치조림은 일일 한정 판매라서 전화로 예약해야 먹을 수 있다. 짭조름한 양념이 속속들이 밴 갈치 살을 발라 흰 쌀밥에 올려먹으면 수라상 부럽지 않다.
갈치조림만 시켜도 향긋한 취나물과 시금치 무침, 열무김치, 콩자반, 양태 등의 밑반찬이 나와서 푸짐한 전라도 인심을 엿볼 수 있다. 갈치조림은 1만5000원, 추어탕과 장어탕은 1만원이다. 시장에서 직접 공수한 재료로 만들어서 신선함은 덤이다.
쫄깃한 산골 닭구이
와룡산장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와룡 산장은 과거에 순천 와룡동 산속에서 30년 넘게 장사하던 식당이다. 전국에서 방문객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 있었으나 상수도 사업으로 인해 산장 정리를 하며 저전동으로 옮겨 왔다. 풀어놓고 키워 육질이 쫄깃쫄깃한 촌닭을 잡아서 양념한 닭구이가 일품이다. 따로 참기름이나 쌈장에 찍어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간이 적당하다.
와룡산장 / 사진=김혜성 여행+ 기자
밑반찬으로 나오는 유채 겉절이나 백김치에 닭구이를 싸 먹으면 육즙과 김치 물이 어우러져 조화가 환상이다. 닭구이 6만원, 닭장 6만원, 닭도리탕 6만5000원이며 닭을 산처럼 쌓아두고 먹을 수 있다. 입가심으로 주는 잡곡이 들어간 닭죽은 메인 요리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매주 화요일은 휴무다.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영업한다.
순천(전남) / 글=김혜성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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