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부터 17일까지 이틀에 걸친 한일정상회담이 끝났다. 한일 정상간의 단독 회담은 2011년 이명박 정부 시절 마지막 한일정상회담 이후 꼬박 12년 만이다. 일본 측은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을 해제하고 우리나라는 해당 제재에 대한 WTO 제소를 취하했다. 동시에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은 사실상 완전히 복구하게 됐다.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일본 정부는 올해 5월 열리는 G7 정상회담에 대한민국을 초청한다고 밝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재임기인 2016년에는 초청하지 않았던 것과 대조된다. 각국의 여론과는 별개로 양국 정부 사이에는 분명 우호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올해 G7 정상회담은 일본 히로시마(広島)에서 열린다. 이제까지 일본이 개최한 7번의 G7 정상회담 장소가 도쿄, 홋카이도, 오키나와 등 유명 관광지였던 데에 비춰보면 다소 의외의 선택이다.
우리나라에는 나가사키(長崎)와 함께 2차 세계대전(1939~1945) 당시 원자폭탄이 투하된 도시로만 알려져 있지만, 히로시마는 사실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다.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일본 전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갔으며, 현재도 인구가 약 120만 명에 달해 일본 10대 도시중 하나다.
그 밖에도 규슈(九州), 시코쿠(四国), 혼슈(本州)에 둘러싸여 ‘일본의 지중해’로 불리는 세토 내해(瀬戸内海)와 접해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가지고 있다.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휴양지와 관광 명소도 많이 갖추고 있다.
5월 세계 주요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히로시마가 가진 매력에 대해 알아보자.
미야지마
宮島
사진=언스플래쉬
히로시마시 근교에 있는 미야지마는 히로시마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이번 G7 정상회담에 참여하는 각국 대표들도 이곳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히로시마현은 주민설명회를 열어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미야지마의 관광객 출입제한 계획을 밝히고 기념품점, 음식점 등에 휴업을 요청했다. 사실상 미야지마 방문이 회담 일정에 포함되어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마노하시다테(좌)와 마츠시마(우)/사진=플리커, 언스플래쉬
다른 이름인 이쓰쿠시마(厳島)로도 불리는 이곳은 센다이시(仙台市) 인근 마츠시마(松島), 교토(京都府) 북부 아마노하시다테(天橋立)와 함께 ‘일본 3대 비경’으로 통한다.
사진=언스플래쉬
특히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쓰쿠시마 신사(厳島神社)와 바다 한가운데 세워진 거대한 토리이(鳥居)가 이곳의 랜드마크다. 이 신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593년부터 등장하니 1400년의 역사를 가진 셈이다.
사진=언스플래쉬
신사 본당보다 더 유명한 토리이는 높이가 16m, 기둥 간격이 11m에 달하는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썰물 때는 걸어서, 밀물 때는 배를 타고 접근할 수 있는데 만조로 물이 가득 차면 아랫부분이 잠겨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히로시마 시내에서 미야지마구치역(宮島口駅)까지는 전철로 20분 정도가 걸린다. 미야구치의 선착장에서 섬으로 가는 배는 15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탑승료는 편도 180엔(약 1800원)이다. 마지막으로 선착장에서 걸어서 10분이 걸리는 이쓰쿠시마 신사 입장료는 300엔이다.
일본 〒739-0588 히로시마현 하쓰카이치시 미야지마초
일본 〒739-0588 히로시마현 하쓰카이치시 미야지마초
1-1 Miyajimachō, Hatsukaichi, Hiroshima 739-0588 일본
1-1 Miyajimachō, Hatsukaichi, Hiroshima 739-0588 일본
오쿠노시마
小久野島
사진=플리커
히로시마에서 신칸센 코다마(こだま)를 타고 30분을 달리면 작은 도시 타케하라시(竹原市)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있는 섬 오쿠노시마는 일본에서도 제법 유명한 휴양지다.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 화학전을 위한 독가스 제조시설이 있던 어두운 과거를 뒤로하고 지금은 700여마리의 토끼들이 보송보송한 털로 방문객들을 현혹하고 있다.
토끼들이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섬에 살기 시작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1971년 초등학생들이 풀어놓은 것이라고도 하고, 실험실에 갇혀있던 토끼들이 전쟁이 끝나고 탈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진=플리커
어느 쪽이 사실이든 현재 이 토끼들은 마치 반려동물처럼 사람을 잘 따르며 섬의 마스코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섬 밖에서 100엔(약 1000원)에 먹이를 살 수 있는데, 섬에 도착하면 토끼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주변을 서성인다.
이외에도 섬 남서부에서 볼 수 있는 그림같은 낙조와 등대의 풍경은 이 섬에서 오랜 시간 머물다 갈 충분한 이유가 된다. 히로시마에서 미하라역(三原)까지 가는 신칸센 코다마 요금은 1340엔(약 1만4000원)이다. 미하라 역에서 다시 보통열차로 갈아타 선착장이 있는 타다노우미 역(忠海駅)에서 내리면 된다.
사진=플리커
일본 〒729-2311 Hiroshima, Takehara, Tadanoumichō, 大久野島
일본 〒729-2311 Hiroshima, Takehara, Tadanoumichō, 大久野島
슛케이엔
縮景園
사진=언스플래쉬
히로시마를 대표하는 정원인 슛케이엔은 17세기 히로시마 인근지방을 일컫는 아사노번(浅野藩)의 지배자를 위한 별장 정원으로 조성됐다. 중앙 연못을 천천히 돌며 풍경을 감상하는 전통적인 정원 양식인 회유식 정원으로 중국의 세계적인 명승지 서호(西湖)를 본땄다.
히로시마 중심지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황폐화됐으며 지금의 모습은 1970년대 재건한 것이다.
이름의 뜻은 명승지의 풍경을(景) 조그맣게 옮겨왔다(縮)는 의미다.
사진=언스플래쉬
정원에는 총 4826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이중 3그루는 전쟁 전에 심어져 원자폭탄의 폭발을 견디고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을 감상하며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자. 3월 16일부터 9월 15일까지는 오전 9시~오후 6시, 9월 16일부터 이듬해 3월 15일까지는 오전 9시~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입장료는 성인 260엔(약 2600원), 학생 150엔(약 1500원)이다.
사진=플리커
일본 〒730-0014 Hiroshima, Naka Ward, Kaminoborichō, 2−11 슛케이엔 정원
일본 〒730-0014 Hiroshima, Naka Ward, Kaminoborichō, 2−11 슛케이엔 정원
히로시마 미술관
ひろしま美術館
사진=히로시마미술관 페이스북
슛케이엔에서 몇 블록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히로시마 미술관은 수수해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내부에는 엄청난 작품들이 기다리는 반전 매력을 가지고 있다.
사진=히로시마미술관 페이스북
로댕(Auguste Rodin), 피카소(Pablo Picasso), 샤갈(Marc Chagall), 모네(Claude Monet), 고흐(Vincent van Gogh)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저명한 작가들의 명화로 이루어진 소장품 목록은 왠만한 대형 미술관에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모든 전시공간과 작품에 대한 사진 촬영도 허가하고 있어 일각에서는 입장료가 너무 싼 것 아닌가 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진=히로시마미술관 페이스북
전시실은 지상 1층, 지하 1층의 단순한 구성이고 사람도 붐비지 않으니, 조용하고 한산한 미술관에서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히로시마미술관 페이스북
정기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오후 5시까지 운영하며, 입장료는 성인 1800엔(약 1만8000원), 대학생 1300엔(약1만3000원)이다.
3-2 Motomachi, Naka Ward, Hiroshima, 730-0011 일본
3-2 Motomachi, Naka Ward, Hiroshima, 730-0011 일본
히로시마환경국 중앙플랜트&요시지마 낚시 공원
広島市環境局中工場 & 吉島釣り公園
사진=플리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히로시마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2021)의 주요 배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단편을 원작으로 하마구치 류스케(濱口竜介) 감독이 연출한 드라이브 마이 카는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 각본상,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 국제장편영화상 등을 수상했다.
사진=네이버영화 ‘드라이브마이카’ 포스터, 스틸컷
극중 인생에서 깊은 상처를 안고 살던 두 주인공은 고향을 떠나 히로시마로 흘러들어온다. 여자주인공 미사키(渡利みさき)가 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꼽은 이 환경국 중앙 플랜트는 쓰레기 소각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한다. 오죽하면 작중 미사키가 처리중인 쓰레기들을 보며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눈 같지 않나요”라고 말할 정도다. 감독의 전작 <아사코>의 마지막에 쓰레기강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던 여주인공과 같이, 더러움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아이러니가 이곳에서는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사진=플리커
이 건물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를 설계한 타니구치 요시오(谷口吉生)가 설계했다. 내부 견학을 위해서는 사전 에약이 필요하지만 1, 2층 데크와 통로는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건물은 바로 옆 요시지마 낚시 공원까지 곧바로 이어진다. 일종의 성지순례로 히로시마의 숨은 보석같은 공간을 즐겨보자.
영화 속 요시지마츠리 공원/사진=네이버영화 ‘드라이브마이카’스틸컷, 플리커
소각장은 오후 4시반에 작업을 멈추지만 일반 개방 공간은 24시간 접근 가능하다.
요시지마 낚시 공원은 오전 6시~오후 10시까지 개방한다.
1-chōme-5-1 Minamiyoshijima, Naka Ward, Hiroshima, 730-0826 일본
1-chōme-5-1 Minamiyoshijima, Naka Ward, Hiroshima, 730-0826 일본
Yoshijimatsuri Park, 元 安川, 2丁目-4 南吉島 730-0826 일본
Yoshijimatsuri Park, 元 安川, 2丁目-4 南吉島 730-0826 일본
히로시마는 그저 원자폭탄이 휩쓸고 지나간 도시로 기억하기엔 아까운 장소다.
굴, 오코노미야키, 츠케멘 등 여러 먹을거리와 자연, 건축물을 가리지 않는 뛰어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G7 정상회담 전, 각국 정상보다 한발 빠르게 히로시마의 매력을 느끼고 오는건 어떨까.
글=강유진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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