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어버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포스터
과거 슬램덩크 애니메이션/사진=플리커
최근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가 뜨겁다.
원작 만화가 1996년 연재를 종료했고 이를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한국에 방영된 건 1998년의 일이다.
재밌게도 벌써 25년이나 지난 이 작품에 가장 크게 열광하는 계층은 20대다.
이들은 원작을 보며 자란 3~40대보다도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활발하게 소비한다.
서울 여기저기에 설치된 스티커사진 부스엔 오늘도 긴 줄이 늘어서 있다.
각 영화관에서 나눠주는 상영 기념품을 모으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관람하는 사람들도 많다.
작품의 흥행은 여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 않아도 포화 상태인 일본 여행객들 사이에 최근 꼭 들러야할 장소가 생겼다.
바로 슬램덩크의 주 배경이 된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다.
인구 17만 명의 작은 도시인 가마쿠라시는
오늘도 애니메이션 오프닝에 등장하는 건널목에서 ‘인증샷’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해외로 굳이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유사한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은 부산으로 향한다.
부산 청사포 정거장 앞 건널목은 가마쿠라 현지와 똑 닮은 풍경을 가지고 있다.
일본까지 가지 않고 이곳에서 ‘인증샷 놀이’를 즐기는 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속 장소에 찾아가 사진을 남기는 문화를 ‘무대탐방’이라 부른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전부터 실제 지역을 무대로 삼아 현지의 분위기와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2016년에는 아예 대형 출판그룹인 카도카와(KADOKAWA)와 관광업계가 손잡고
애니메이션 무대탐방의 사업화 촉진을 위한 ‘애니메이션 투어리즘 협회'(アニメツーリズム協会)를 설립했다.
오늘은 이런 일본의 성지순례 장소들을 소개한다.
01 슬램덩크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
사진=플리커
무대탐방의 목적지로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장소가 바로 가마쿠라시다. 도쿄에서 전철로 1시간이면 도착하는 이곳은 만화 ‘슬램덩크’의 주 무대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역시 에노시마 전철이 지나는 건널목이다. 작중에 등장한 300형 전동차가 철길을 지나는 모습을 찍기 위해 오늘도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
사실 가마쿠라의 슬램덩크 성지라고 하면 방금 말한 건널목이 유일하다고 봐야 한다. 작품에서 대부분 장면은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는 체육관 내부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등장하는 고등학교 중 실제로 가나가와현에 있는 곳은 한군데에 불과하다. 주인공 일행이 다니는 학교는 도쿄에 있는 학교를 모델로 했고, 실제 모델을 알 수 없는 학교도 있다.
슬램덩크의 이 유일한 성지는 에노시마 전철을 이용하지 않고는 갈 수 없다. 문제는 이 전철선을 지나는 열차들이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차량 내부는 에어컨도 아닌 선풍기로 냉방을 하고 있으니 무더운 여름철 방문 시에 참고하자.
02 너의 이름은. 도쿄도 신주쿠구 & 나가노현 스와시 |
‘너의 이름은.’ 무대방문 릴레이 투어 포스터/사진=Fun!Tokyo! 홈페이지
‘너의 이름은.’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제외하면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개봉 첫날부터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고는 2주간 그 자리를 지켰다.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중 이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한 작품은 ‘겨울왕국’ 뿐이다.
신카이 마코토(新海 誠) 감독은 실제 배경장소에서 찍은 사진 위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방식으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흥행한 뒤 해당 장소들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이 정확한 장소와 각도를 찾아 인증사진을 남기기 쉽다.
스가 신사 주변 골목/사진= 네이버 영화 ‘너의 이름은.’ 포스터, 플리커
영화에 등장한 신주쿠 경찰서 주변도로/사진=플리커
주된 목표가 되는 곳은 신주쿠에 위치한 스가 신사(須賀神社) 인근 골목과 계단이다. 작품의 포스터와 가장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장소로 두 주인공이 처음으로 현실에서 마주하는 곳이다. 신주쿠는 작중 남자주인공 ‘타키’의 거주지라 이외에도 여러 실제 장소가 작품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스와 호 전경/사진=플리커
여자주인공인 ‘미츠하’는 도쿄와는 정반대인 시골 마을 이토모리(糸守町)에 사는 것으로 나온다. 지명 자체는 허구이지만 작품 속 장소들은 일본 내 여러 지역에 실제로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주요 배경 중 하나인 이토모리 호수는 나가노현 스와시의 스와 호수(諏訪湖)에서 그 형태나 모습을 따왔다. 다만 초기 이미지는 감독 본인이 나고 자란 나가노현 미나미사쿠군의 마츠바라 호수(松原湖)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이밖에도 감독이 철도 마니아라 요츠야역, 요요기역 등 지하철 역사와 전철의 모습도 자주 나온다. 각 노선을 달리는 전차와 선로의 디테일한 모습도 볼거리다.
03 러브라이브 도쿄 치요다구 |
칸다묘진/사진=플리커
‘러브라이브 시리즈’는 2010년 출판사 카도카와, 음반사 란티스(Lantis), 애니메이션 제작사 선라이즈(SUNRISE)가 합동으로 기획한 가상 아이돌 육성 프로젝트다. 음반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2014년 애니메이션의 공개와 함께 일본 내에서 일종의 사회 현상에 가까운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새로운 그룹이 나오고 있으며 게임, 서적, 음반 등 여러 관련 콘텐츠 제작도 활발하다.
칸다 마츠리/사진=플리커
해당 작품의 팬들이 1순위로 찾는 곳은 도쿄도 치요다구의 칸다묘진(神田明神)이라는 신사다. 작중 인물들이 마땅한 연습공간이 없어 체력 훈련과 안무연습을 진행한 장소다. 도쿄의 서브컬쳐 중심지인 아키하바라와 가까이에 있어 팬들이 가장 활발하게 찾는 곳이다. 덴진 마츠리, 기온 마츠리와 함께 일본 3대 마츠리인 칸다 마츠리가 열리는 곳도 바로 여기다. 단지 성지순례 목적이 아니라도 한번 찾아갈 많한 명소다.
화과자점 타케무라/사진=플리커
치요다구 칸다스다초에 있는 전통 화과자점 타케무라(竹むら)도 팬들에겐 성지로 통한다. 작품의 주연인 ‘코사카 호노카’의 집이자 가족이 운영하는 화과자점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중장년층과 노인들이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러브라이브의 영향으로 젊은 손님이 많이 찾게 되었다.
04 귀멸의 칼날 도치기현 아시카가시 & 후쿠오카현 다자이후 시 |
극장판 귀멸의 칼날 포스터/사진=네이버 영화
‘귀멸의 칼날’은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2020년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이 특히 그렇다. 2020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 일본 애니메이션 월드와이드 흥행 1위 등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다. 2021년 대한민국 박스오피스 7위, 국내 개봉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수익 2위 등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만큼 성지순례를 원하는 팬들도 많지만, 몇 가지 애로사항이 있다. 작품 대부분이 야산이나 숲처럼 특정 장소가 아닌 야외 공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작중 시간 배경이 1910~1920년대인 다이쇼 시대인 점도 방문을 곤란하게 하는 요소다. 일례로 작중에 등장하는 도쿄의 아사쿠사는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많은 건축물이 파괴되었다.
사진=다자이후시 일본유산 활용 협의회
그렇지만 팬들은 성지를 만들어서라도 방문하고야 만다. 후쿠오카 다자이후시에 있는 카마도 신사(竈門神社)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은 작품 내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신사에는 작품의 팬들이 남긴 에마가 많이 걸려있다. 에마란 일본에서 신사나 사원에 소원을 담아 그림을 그려 봉납하는 목판으로 팬들은 여기에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그려 넣는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데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와 신사의 이름이 같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후쿠오카현 치쿠고시에 있는 또 다른 카마도 신사 역시 많은 팬이 찾는다. 이곳은 한발 더 나아가 종종 작품과 관련된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아시카가 플라워 파크의 등나무 꽃/사진=플리커
등나무 꽃은 작품의 중요한 상징이며 주인공이 선별 시험을 치르는 산에 많이 피어있다. 이 등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산과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도 인기다. 아시카가 플라워파크(あしかがフラワーパーク)는 마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듯한 엄청난 규모의 등나무 꽃으로 유명하다. 특히나 조명이 켜지는 밤에 방문하면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몽환적인 풍경이 그대로 눈 앞에 펼쳐진다. 작품의 팬이 아니라도 인생샷을 남기기에 좋은 장소다.
강릉 향호해변 정류장(좌)와 영진해변 방사제(우)/사진=한국관광공사
우리나라에서도 드라마 ‘도깨비’에 등장한 주문진 방사제나 BTS의 앨범 커버에 나온 버스 정류장과 같은 각종 ‘성지’는 유용한 관광 자원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애니메이션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를 방문하는 것은 그 작품을 즐기는 방법인 동시에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혹시나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면 자신이 지나는 거리를 유심히 살펴보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성지를 방문하기 위한 순례객의 대열에 끼어 있을지도 모른다.
글=강유진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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