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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투어리즘으로 동남아 읽기

여행플러스B 조회수  

혜의 자연 경관과 값싼 물가, 맛있는 음식과 오랜 역사 유적까지. 동남아시아를 여행할 이유는 충분하다. 덕분에 동남아 여행을 떠올리면 럭셔리한 호텔과 푸른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휴양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놀고먹는 여행이 질렸다면 색다른 여행을 즐기는 게 어떨까. 요즘 동남아에서 새로 부상하는 여행 방식, 바로 ‘다크 투어리즘’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다크 투어리즘은 비극적 사건이나 재난과 재해가 발생한 현장에 가서 과거를 돌이켜보고 교훈을 얻는 여행 방식으로 ‘역사 교훈 여행’이라고도 한다. 비극적 장소에서 성찰을 하고 참상을 애도하면 오락적 여행에선 경험하기 어려운 깊이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명소로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 벌어진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와 9·11 테러가 발생한 미국의 ‘그라운드 제로’ 등이 있다.

복잡한 역사를 가진 동남아시아 역시 떠오르는 다크 투어리즘 관광지다. 풍부한 자원 때문에 도리어 열강들에게 수탈당한 식민 통치의 역사가 있고, 민주주의 발달이 늦어 철권통치의 상처를 지닌 나라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동남아의 여러 국가들은 과거의 상흔을 지우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배움의 장소로 탈바꿈시켜 사람들에게 교훈을 남기고, 더 나은 미래를 얘기하고 있다. 동남아의 역사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다크 투어리즘 명소들을 알아보자.


01

인도네시아

Indonesia

수만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섬나라, 인도네시아는 섬마다 자연환경과 문화가 다양하다. 보통 한국에 잘 알려진 섬은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발리(Bali)지만 다른 섬들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화산섬이라는 특성상 화산폭발과 태풍 등 자연재해에 취약해 이와 관련한 다크 투어리즘 명소가 생겼다.

사진=언스플래쉬

인도네시아 수마트라(Sumatra)섬 북단에 있는 반다아체(Banda Aceh)는 2004년 인도양을 덮친 남아시아 대지진과 쓰나미의 비극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다. 남아시아 대지진은 30만 명이 목숨을 잃고 5만 명이 실종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였다.

사진=플리커

아체 쓰나미 박물관(Aceh Tsunami Museum)은 당시의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설립한 공간이다. 재난 현장과 관련한 사진이나 영상은 물론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 사회가 어떤 노력을 펼쳤는지까지 상세하게 기록해뒀다. 쓰나미 박물관의 의의는 단순히 비극을 기록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인터랙티브 전시 공간을 마련해 실제로 쓰나미가 닥친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낸 자연재해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며 아픔에 공감하고 애도를 표할 수 있다.

반다아체는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희생자들을 기리고 기억하고 있다. 도심에 있는 아풍 1호(PLTD Apung 1)이 대표적이다. 쓰나미로 밀려온 거대 선박을 그대로 활용해 박물관으로 탈바꿈시켰다. 2000t이 넘는 배가 바람에 의해 내륙 한복판까지 밀려온 모습을 통해 쓰나미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배 앞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비석이 있다.


02

베트남

Vietnam

출처=언스플래쉬

베트남은 전쟁의 상흔을 입은 국가다. 하나의 민족이 남과 북으로 분리돼 서로 총구를 겨눈 역사가 한국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대한민국 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적도 있어 한국과의 연이 깊다. 그로 인해 베트남으로 다크 투어리즘을 떠나는 한국인도 늘어나는 추세다.

베트남은 20세기부터 전쟁 유적을 관광지로 개발했다. 특히 북베트남의 중심이었던 하노이(Thành phố Hà Nội, Hanoi City)와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호찌민(Thành phố Hồ Chí Minh, Ho Chi Minh City)을 중심으로 여러 다크 투어리즘 명소가 탄생했다.

사진=플리커

호찌민 전쟁 박물관(Bảo tàng chứng tích chiến tranh, War Remnants Museum)은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 수준 높은 전시를 자랑한다. 전쟁의 참상을 상세히 알 수 있어 교육적인 가치가 뛰어나다.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은 시민들과 군인들의 모습을 통해 경각심을 일깨우고 반성을 하게 만든다.

사진=플리커

물론 베트남 입장에서 전쟁을 기록했기 때문에 편향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박물관은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평화를 염원하는 자세를 취한다. 전쟁을 반대한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고, 전 세계인들이 종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 세세히 기록했다. 박물관 1층에는 존 레논(John Lennon)의 ‘이매진(Imagine)’이 울려 퍼진다. 단순히 감정적으로 호소하기보다는 연대를 통한 세계 평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덕분에 호찌민 전쟁기념 박물관은 전 세계인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특히 미국인 관광객들이 호찌민을 여행할 때 빼먹지 않고 방문한다고. 참사를 기억하며 더 나은 미래를 얘기하는, 다크 투어리즘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진=플리커

베트남 전쟁의 생생한 현장을 경험하고 싶다면 구찌 터널(Địa đạo Củ Chi, Cu Chi tunnels)로 향하자. 1948년 프랑스 공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설립한 터널로 베트남 전쟁의 주요 기지로 활용됐다. 지하 3층 규모의 땅굴은 온전히 도끼와 호미로 판 것이라고. 구찌 터널은 베트콩들의 게릴라전 주요 무대였다. 좁은 몸을 굴에 숨겼다가 미군과 남베트남 군대를 급습했다. 적군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굴 곳곳에 부비트랩을 설치하기도 했다. 고초를 겪은 미군은 터널에 고엽제를 살포하는 등 여러 시도를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구찌 터널은 베트남 전쟁의 끈질긴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땅굴이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한편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전쟁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군인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전쟁의 참혹함이 느껴진다.

* 베트콩: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Mặt trận Dân tộc Giải phóng miền Nam Việt Nam)을 칭한다.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아 남베트남에서 미국을 상대로 싸운 게릴라 조직으로, 베트남 전쟁의 핵심 주역으로 꼽힌다. 베트콩의 선전은 북베트남의 승리를 이끌었다.


03

캄보디아

Cambodia

사진=언스플래쉬

앙코르와트의 경이로움을 간직한 캄보디아 역시 비극의 역사가 있다. 1960~70년대 일어난 대량학살, 킬링필드(Killing Fields)가 대표적이다. 독재자 폴 포트(Pol Pot)가 이끌었던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 정권은 약 20년 동안 수십만 명의 자국인들을 처형하는 정책을 펼친다. 국민의 25%가 사라진 엄청난 규모였다. 국가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이었으나, 실상은 비이성적인 학살이었다.

사진=플리커

프놈펜(Phnom Penh) 외곽에 있는 쯩아익 집단 학살 센터(Choeung Ek Genocidal Center)는 독재정권의 참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곳에는 킬링필드 희생자들이 집단 암매장을 당한 무덤이 있다. 평온해 보이는 과수원 터에서 수만 명이 총살당하고 생매장을 당했다고. 센터는 제대로 묻히지 못한 유해를 보존하고 크메르 루주 정권의 참상을 기록해뒀다. 곳곳에 보이는 누군가의 유골을 보며 독재의 잔혹함을 경계하게 된다.


휴양지로만 알았던 동남아시아의 이면을 알아봤다.

각 국가별 명소를 따라가며 과거의 상흔을 어루만져 보자.

더 깊고 새로운 여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글=허유림 여행+ 기자

여행플러스B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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