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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윤용진의 귀촌일기 100회’를 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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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진의 귀촌일기 100]

19년전 귀농 후 지금까지의 이야기

몇 년 전에 귀촌한 동생을 방문했다. “요즘 날씨도 추운데 어떻게 지내냐?”라는 나의 질문에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별일 없어. 아직 추워 텃밭에는 나가지도 못하고, 이따금 운동이나 하고 친구들을 만나는 정도야!” 시골에서 보내는 겨울은 누구나 엇비슷해 보인다. 동생은 작년 여름에 3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은퇴를 했고, 아직까지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터였다. 이제야 비로소 평생 매여 있던 삶에서 벗어난 셈이니 얼마나 좋을까?

나 역시 예전에 그랬던 것 같다. 직장을 그만두고 한동안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이었으니까. 다만 나는 조금 특이한 경우였는데, 40대 중반을 막 넘어선 나이에 자발적으로 퇴직을 한 상태였다. 나는 은퇴한 사람들이 흔히 겪는다는 은퇴 증후군도 없었는데, 오히려 그 시기에 새로운 의욕들로 넘쳐있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냐 아니냐는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다. 그 당시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앞으로 다가올 낯선 환경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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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도 전지를 해 준다. 해마다 잔가지들을 쳐낸다. ©윤용진

기억을 더듬어 19년 전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내가 은퇴를 한 그 시절은 먹고살기 힘든 불경기도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표를 내고 시골로 내려왔으니 한동안 회사가 시끄러웠나 보다. 나중에 우리 집을 방문한 직장동료의 말에 의하면, 나를 두고 “저 인간 미쳤나 보다!”와 “돈 많이 벌어놨나 보다!”로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글쎄, 내가 고집이 센 건 맞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식구들을 궁지로 몰아넣을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다. 또 평생 먹고살 돈을 벌어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농사에 목을 매야 할 정도로 궁핍한 것도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반복되는 직장 생활에 몹시 지쳐있었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여유롭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 시골에서도 돈은 필요하다. 또 지출은 도시나 시골, 어느 곳에 사느냐보다는 각 개인의 생활 습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예전의 씀씀이를 줄이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 당시 써 놓은 일기장에 ‘소박한 삶’이란 단어가 자주 반복되는 것을 보면, 쉽게 줄어들지 않는 지출 때문에 초조해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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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후 첫해 600평의 밭에 고구마 심었다. 총수익은 41만원. 그 이후로 돈벌이 농사는 포기했다. ©윤용진

나는 처음에 귀농을 생각했었다. 농사지어 생활비를 일부 보태고, 부족한 부분은 저축한 돈으로 메우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계획은 처음부터 완전히 빗나갔다.

첫 농사로 600여 평의 밭에 호박고구마를 심었는데 총수익이 41만 원이었다. 그것도 우리 부부 인건비를 포함해서. 첫해야 워낙 서툰 농사였으니 그렇다 쳐도, 그 이후로도 소득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농사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고, 예나 지금이나 소규모로 농사를 지어 먹고살기 힘든 건 변함이 없다.

결국 몇 년간의 시도 끝에 돈벌이 농사는 포기하게 됐다. 아무리 노력해 봤자 내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차라리 속 편하게 자급용 텃밭농사나 짓기로 했다. 그러잖아도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는데 더욱 단출해졌다. 초기에 심은 사과나무는 아까워 남겨 뒀는데 결국 몇 년 전에 폐원을 했다. 돈벌이도 되지 않는 과수원 가꾸느라 10여 년간 죽어라 고생만 한 셈이다.

귀농 초기에는 농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힘들었다. 우연히 「자연농업」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됐고, 직접 농사를 지으며 쌓은 경험과, 발품을 팔며 얻은 내용들을 꾸준히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게 17년간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몇 년 전 「귀농 귀촌인을 위한 실전텃밭 가꾸기」란 책을 출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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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농사였으니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그 자료를 모으니 책이 되었다. ©윤용진

우리나라 평균 은퇴 나이는 72.3세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이 50세 전후로 은퇴하는 것을 보면 (통계청 조사), 정작 직장을 그만둔 이후로도 오랫동안 일을 하는 셈이다. 다만 50세 이후에 갖는 직업은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기도 어렵고, 대부분 단순노동인 경우가 많다. 급여도 예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은퇴 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사람은 1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최근에 은퇴하고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단편적이지만 동생은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가끔 모임이 있어 선후배나 친구들을 만나러 도시에 가고 있어. 오랜만에 만나 당구도 치고 식사도 함께 하거든. 그런데 만나는 날이 항상 주말이야. 주말은 교통도 혼잡한데, 다들 일을 해서 평일엔 안 된대. 일이라고 해봐야 단순노동뿐이지만, 그냥 집에 있기 심심해서 다니는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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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게 사과였는데, 지금은 옛날이 조금 아쉽기도 하다. ©윤용진

나 역시 도시에 사는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 번씩 만나는 정도다. 따라서 그들의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따금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아직까지 아파트 관리인이나 경비원으로 일하는 친구도 있고, 손자 손녀 봐주느라 하루 종일 붙들려 있다는 친구도 있다. 아! 뒤늦게 집에서 살림하는 친구도 있다. 살림살이하고는 거리가 먼 친구였는데 지금은 다소곳이 밥도 하고 청소도 한단다. 왜냐하면 아직 은퇴하지 않은 아내는 일하러 나가니까.

물론 팔자 좋은 친구들도 몇몇이 있다. 등산을 다니는 친구도 있고, 낚시에 빠져 전국을 헤매는 친구도 있다. 특히 여행을 좋아하는 한 친구는 최근에 크루즈 여행을 갈 거라고 은근히 자랑을 한다. 그럼 나는? 나는 그냥 시골에 콕 박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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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면 우리 집 텃밭은 초록으로 물든다. ©윤용진

동생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봤다. “당분간은 텃밭이나 가꾸며 푹 쉴 거야. 아직까지는 노는 게 좋아. 한두 해쯤 쉬고 나면 다시 일을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지. 날씨가 풀리면 여행도 다닐 생각이야. 참! 요즘은 그림 그리는데도 관심이 생겼어.” 은퇴 후에 하는 취미생활은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나는 꼭 농사가 좋아서 귀촌을 한 건 아니었다. 어쩌면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여유 있는 삶을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랫동안 시골에 살다 보니 농사가 취미가 되었고, 지금은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텃밭농사가 돈벌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식구들에게 건강하고 풍요로운 식단을 제공할 수는 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직장에 매여 사는 게 싫었고, 앞으로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선택의 연속이다. 평범한 길을 선택할 수도, 남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또 어떤 길을 선택하든,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란 사실이다. 때로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것도 꽤 짜릿한 인생을 가져다준다. 은퇴한 지 19년이 지난 지금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내 모습을 보면, 과거의 내 선택이 그리 잘못된 것 같지만은 않다.

그렇게 바동대며 살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에 세월은 정말 후딱 지나가 버리니까.

P.S. 2021년 2월 15일부터 게재를 시작한 「귀촌일기」가 100회가 되었다. 지난 글들을 보면 4년간의 내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100회를 맞이하여 어떤 주제로 글을 쓸지 고민하다가 은퇴 후 귀촌한 내 얘기를 쓰기로 했다. 귀촌을 꿈꾸는 분들이 내 글로 작은 미소를 띨 수 있으면 좋겠다. 4년 전에 「귀촌일기」를 시작하면서 앞으로 잘리지만 않으면 계속 글을 쓸 거라고 했는데, 아직까지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윤용진 작가의 「귀농 귀촌인을 위한 실전 텃밭 가꾸기」를 만나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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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귀촌인을 위한 실전 텃밭 가꾸기

저자
윤용진
출판
W미디어
발매
2022.03.19.

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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