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꾸다’, ‘반전시키다’를 뜻하는 리버스(Reverse)는 한 장면에서 두 대상이 서로 마주 보고 있을 때 사용되는 영화적 기법이다. 이러한 의미를 차용한 리버스는 책과 영화를 교차로 감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책영화 모임이다. 리버스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가치관이 뒤바뀌는 장(場)이 되고자 한다.
프리터족(특정한 직업 없이 갖가지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젊은 층), 니트족(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 워킹푸어(직장은 있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 빈곤층) 등 청년층의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질수록 이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들은 하나씩 늘어만 간다.
그 중 가장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게 바로 고립·은둔 청년이다. 2023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짧게는 6개월 미만, 길게는 수년에 걸쳐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사회와 교류하지 않는 청년이 50만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의 등장 배경은 국가 경제 성장과 함께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핵가족 중심의 가족 문화, 미디어의 발달이 있다. 전문가들은 고립·은둔 청년을 방치할 경우 연간 7조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특성이 있는 이들을 향한 잘못된 인식이 사회적 낙인으로 이어져 더 깊은 은둔으로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처럼 청년세대의 은둔과 단절을 방치할 경우 미래를 위협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책영화모임 ‘리버스’에서는 책 『은둔기계』와 영화 「김씨표류기」를 통해 ‘청년세대의 은둔과 단절’ 대해 이야기 나눠봤다.
『은둔기계』(2020)는 ‘현대인’이 겪고 있는 내적 갈등과 사회적 모순을 날카롭게 분석하며, 은둔을 부정적인 시각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제시한 책이다.
리버스 모임에 참여한 조서연(가명)씨는 “『은둔기계』에서 말하는 ‘은둔’이 과도한 것으로부터 연결을 끊고 자기 정화의 의미를 제시하고 있어 새로운 관점이라고 생각했다”며 책에 대한 감상을 남겼다.
책과 함께 본 영화 「김씨 표류기」(2009)는 한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도를 하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남자 김씨와, 사회와 단절된 여자 김씨가 우연히 그를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박지훈(가명)씨는 “「김씨 표류기」가 청년세대의 고립과 은둔이라는 주제를 유쾌하게 다룸에도 영화의 장치와 표현들을 통해 다양한 통찰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전했다. 이어 채민서(가명)씨도 “어렸을 때 영화를 봤던 것과 주인공의 나이대에서 영화를 본 감상이 달랐다”며 “영화에 울고 웃으며 자신도 모르게 주인공들을 응원하게 됐다”고 전했다.
청년 누구나 은둔자가 될 수 있다
리버스에서는 청년세대의 은둔이 나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이도연(가명)씨는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은둔이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은둔자가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수가 옳다는 생각은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박씨도 “청년세대의 은둔은 마치 경기장 한가운데에 있어야 할 선수가 관객석으로 빠진 느낌”이라고 표현하며 “청년 은둔자가 경기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동메달조차 딸 수 없다는 좌절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예원(가명)씨는 “영화 속 주인공이 삶의 터전을 잃는 모습을 보며, 『은둔기계』의 주장처럼 은둔을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재정비의 시간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신의학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은둔까지 존중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황수아(가명)씨는 “‘은둔하는 현대인’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살아가지만, ‘정상성’의 기준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비정상 취급을 받아왔다. 그러나 은둔 청년은 모두의 마음속 욕망을 실현한 사람”이라며 “사회적 고립을 개인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시대정신’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채씨는 “누구나 도망치고 싶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는가. 자발적 은둔과 비자발적 은둔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비자발적 은둔을 해결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은둔과 고립은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이 과도화된 현대 사회에서 필요하다는 것에 의견이 모였다.
은둔 청년을 품을 수 있는 사회란
리버스는 은둔을 향한 시선에 대해 이를 포용하는 사회가 돼야한다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황 씨는 ‘은둔을 바라보는 사회’에 대해 “최근 FOMO(Fear Of Missing Out)가 변형된 JOMO(Joy Of Missing Out)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은둔은 개인의 도태나 실패가 아니라 과잉 사회가 만들어낸 문화이며, 사회적 고립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시대상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씨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수제 짜장면을 위해 농사를 짓거나, 은둔자들끼리 ‘HELLO’ 등으로 안부를 묻는 것이 희망으로 등장했다. 이처럼 은둔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작은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사회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비자발적 은둔 청년들에게는 공동생활 등의 프로그램이 효과적일 것 같다”며 “은둔·고립 청년들에게는 적절한 사회적 개입과 예방, 주변의 관심이 수반돼야 한다”고 전했다.
반면 박 씨는 “이미 좌절 속에서 은둔하는 청년들에게는 약간의 ‘강제성’이 필요하다”며 “은둔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 곧 행복율, 출산율을 비롯해 사회 전체의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밝혔다.
리버스에서는 책 『은둔기계』와 영화 「김씨표류기」를 통해 ‘은둔’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탐구할 수 있었다. 「김씨표류기」에서 두 은둔자가 서로를 이해하듯, 우리 사회도 고립되고 은둔한 청년들을 더욱 포용력 있는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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