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주(Mariage)’의 세계는 오묘하면서도 복합적이다. 단어 자체는 배합이나 화합(合), 즉 서로 다른 것을 잇는 과정을 뜻하지만, 이 결합은 단순히 합쳐지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더 나은 조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영어 단어 ‘Marriage’ 역시 ‘결혼’을 의미하며,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새로운 관계와 의미를 만든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마리아주는 오늘날 식문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 중 하나다. 페어링(Pairing)이라는 말로도 쓰인다. 예로부터 우리는 음식을 맛보며 그 ‘궁합’을 중시해 왔다. 가령 애주가들은 전골과 같은 뜨끈한 국물 요리에 시원한 소주 한 잔을 떠올리곤 한다. 기름진 튀김에는 청량하게 씻겨 내려가는 맥주, 달콤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는 풍미 깊은 위스키가 잘 어울린다.
다만 그 조합은 끝없이 확장될 수 있다. 또 일정한 법칙이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이다. 예컨대 전골에 와인을 곁들인다고 해서 틀렸다 할 수 없고, 아이스크림에 맥주를 곁들인다 해도 그것을 제한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마리아주는 취향과 조화가 만들어 내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라고도 볼 수 있다.
한국 파인다이닝 업계에서도 이 마리아주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전성빈 셰프, 김진호 소믈리에가 이끌고 있는 미슐랭 1스타의 ‘빈호’다. 보통 파인다이닝하면 셰프 혹은 소믈리에 한 명이 대표인 체제로 운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빈호는 다르다. 이곳에서는 셰프, 소믈리에가 함께 이끌며 더 나은 음식과 주류의 배합을 고민하고 있다.
빈호의 힘은 또 젊음에서 나온다. 두 대표는 젊기 때문에 가능한 과감한 시도도 계속 보여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앞, 측면 전부 보일 수 있게 주방을 구성했을 뿐 아니라 업장 밖에서도 안을 볼 수 있게 해뒀다. 4살 차이는 궁합을 보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전 대표(92년생), 김 대표(88년생)는 나이에서 역시 마리아주를 만든 셈이다.
빈호는 소믈리에, 셰프가 함께 이끌고 있기에 두 분야 동등하게 중요하게 본다. 따라서 메뉴를 고안할 때도 더 치열하게 고민하는 편이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있기에 홀로 우뚝 서도 맛있어야 하고, 또 다른 주류랑 만났을 때에 그 풍미가 더 깊어지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반대도 마찬가지다. 홀로 마셔도 훌륭한 와인을 구하되, 음식과 만나면 그 맛이 배가 되는 와인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매력을 잘 알려주는 빈호의 메뉴는 ‘삼계탕’과 대하를 넣어 만든 ‘가지’ 요리다. 요리 단품으로도 훌륭하나 김진호 소믈리에가 해외에서 공수한 진귀한 와인과 곁들이면 그 시너지가 배가 된다.
먼저 메추리를 이용한 빈호의 삼계탕은 닭보다 보다 육질이 연하다. 첫입은 숯불 특유의 그을린 맛이 먼저 난다. 숯 향과 메추리의 달콤한 육즙이 만나며 오묘한 배합을 이끌어낸다. 또한 짭짤하고 쫄깃한 모렐 버섯이 식감을 더한다. 국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삼계탕과도 비슷한데, 한 스푼 떠 맛을 보고 있자면 한국만의 보양 느낌이 물씬 나서 친근하다.
말린 가지의 쫄깃함과 대하의 달콤, 담백함이 만난 메뉴도 별미다. 소스 역시 가지 껍질로 만들어 가지 만이 품고 있는 향을 느낄 수 있다. 가지를 태우듯이 구워 먹물, 사과 등을 곁들어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것도 특징이다. 같이 곁들이도록 나온 그리스 와인 스피라도 이 특색을 잘 살려준다. 극소량으로 생산되는 스피라는 풍부한 과실향을 갖고 있지만 소비뇽 블랑의 새콤한 산도도 자랑한다. 묵직한 가지 소스와 만나면서 그 특별함을 유감없이 자랑한다.
빈호의 두 젊은 오너는 앞으로 빈호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 목표다. 세계적인 샴페인 ‘크룩(Krug)’은 빈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김 소믈리에를 앰버서더로 임명하기도 했다. 젊고 역동적인 빈호의 걸음은 당차지만 그 걸음을 내딛기까지에는 수많은 치열한 고민이 함께한다.
마리아주가 서로 다른 요소가 어우러져 더 나은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라면, 빈호 역시 두 사람의 만들어낸 조화의 산물이다. ‘사람 인(人)’자를 보면 두 획이 서로 지탱하며 균형을 이루고 있다. 혼자보다 함께일 때 더 견고해지는 것처럼, 이들이 만들어갈 빈호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기도 하다.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전성빈 (이하 전): “빈호의 공동 대표인 전성빈이다. 요리 경력은 약 13년 정도다. 일본 츠지마 조리 학교 출신이다. 일본 투스타 라심, 플로릴레쥬, 한국의 밍글스에서 경력을 쌓았다. 지금까지 다이닝 경력은 약 5년 정도 됐다. 파인다이닝의 매력은 고급스러운 ‘멋’도 있지만 이에 걸맞은 ‘맛’이라고 생각한다. 멋있으면서도 맛있는, 이런 부분이 장점이다. ”
김진호 (이하 김): “중학생때는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처음 부모님의 반대도 컸으나 점차 그 열정은 더 깊어졌다. 취사병 생활을 마치고 바로 호주로 넘어갔다. 2년 정도 요리학교를 다녔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파인 다이닝 업장을 열겠다는 목표가 없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로 강민구 밍글스 셰프를 만나 뵙게 됐는데, 거기서 잠시 주방에서 일하게 됐다. 이후 이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소믈리에 길을 걷게 된 것도 보다 나은 서비스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홀에서 서빙을 하며 손님들이 와인을 물어볼 때 대답 못하는 자신이 답답했었다. 밍글스의 김민성 지배인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빈호는 어떤 곳인가.
김: “공통적으로 나아가는 목표와 함께 각자 추구하는 방향도 서로 공존하는 곳이다. 빈호는 파인 다이닝의 정형을 깨고 싶은 업장이기도 하다. 처음 시도하는 게 많다. 모든 반박자 먼저 움직이고 싶었다. 가령 내추럴 와인의 경우 페어링을 하기 까다롭다. 일반 와인이랑 맛이 다를 수 있고 또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빈호는 다르다. 취급하는 와인도 다양하다. 스위스, 그리스 등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와인을 여기선 맛볼 수 있다. 또 홀 분위기도 좀 다르다. 주로 70~80년대 락 음악을 틀어놓기도 한다.”
전: “처음에는 그냥 전성빈의 빈, 김진호의 호를 따서 빈호라고 지었다. 또한 비노(Vinho)가 포르투갈어로 와인이라는 뜻도 있다. 빈호는 직관적인 맛을 추구한다. 또 나만의 추억을 음식을 통해 들려주려고 한다. 메추리로 만든 삼계탕이 그러하다. 삼계탕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난 한방 맛을 더 강조하고 싶었다. 또 닭과는 다른 질감도 주고 싶어 삼계탕을 재구성해 빈호만의 스타일로 해석해 봤다. 먹었을 때 더부룩할 수 있다는 단점도 보완했다. 인테리어도 바 형식으로 돼 있어 서버와 손님의 거리가 가깝다. 손님과 직원 간의 눈높이가 맞고 좀 더 친밀히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경계를 허무는 곳이라고 봐주면 감사하다.”
―함께 빈호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또 서로의 첫인상은 어땠는가.
전: “밍글스에서 근무할 때 처음 만났다. 하지만 만나기 이전에도 김 소믈리에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가게를 같이 운영하면서도 계속 느끼는 부분이긴 하지만, 김 소믈리에는 정말 추진력이 뛰어나다. 계획을 짜고 방향성을 정해주는 것을 잘한다. 냉철한 것도 특징이다.”
김: “전 셰프는 요리를 엄청 잘하는 친구로 유명했다. 또 성실한 면도 이끌리게 했다. 요리에 대한 열정도 엄청나다. 추진력이 있으면서 성실하고 요리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은 절대 실패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호의 시그니처 메뉴가 궁금하다.
김: “앞서 말한 삼계탕이다. 메추리로도 특별하지만 그 페어링 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메추리는 대부분 레드 와인을 곁들이는데, 우리는 화이트 와인을 내고 있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서 나오는 10년 이상 숙성된 그랑 크뤼Grand Cru)를 쓰고 있다. 삼계탕을 생각하면 여러 맛 들이 떠오르지 않나. 근데 그 특유의 한방 느낌은 전통주와도 잘 맞는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좋은 품질의 드라이 리슬링(Riesling)과도 궁합이 좋다. 또 코스 흐름을 생각했을 때 화이트 와인으로 국물 맛을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도록 구상했다.
―음식과 페어링은 빼놓을 수 없는 궁합이다. 빈호는 메뉴를 개발하고 나서 그 마리아주를 고민하는 편인지, 아님 그 반대인지 궁금하다.
전: “김 소믈리에가 먼저 방향을 말해주면 거기에 맞춘 메뉴를 구상하기도 하고, 그 반대기도 하다. 그렇지만 음식과 주류의 조화만 생각하지 않는다. 음식이 갖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와인도 여기에 어울리는 것을 준비하는 편이다.”
김: “전 셰프는 음식을 만들 때 와인에 대한 ‘공간’을 남겨주는 편이다. 세심한 디테일을 볼 수 있는 게 빈호의 메력이다. 예를 들면 첫 메뉴로는 굴로 만든 아이스크림이 있다. 아이스크림에 당도에 따라 와인을 맞추려고 하는데, 단순히 당도만 보고 있지 않다. 어떤 밭에서 길러졌는지, 생산자의 특징 등을 모두 고려해 그 짝을 고른다. 이런 디테일을 챙기기 위해 실제로도 많이 먹고 마셔보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린다.
김: “찾아오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빈호에서 좋은 경험하시길 바란다. 열린 마음가짐으로 찾아주시면 최고의 경험을 드리도록 노력하겠다.”
전: “마찬가지다. 빈호에서 요리, 와인만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 했으면 한다. 일반적인 다이닝이 아닌, 우리만의 분위기를 보여주고자 한다. 보다 발전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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