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빚어낸 신비로운 선물 중 하나를 꼽자면, 송이버섯이 떠오른다. 산기슭 깊숙이 숨어 있으면서도, 그 특유의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송이는 가을에 가장 빛을 발한다. 솔향과 버섯 향이 어우러진 가을 송이는 그 자체로 최고의 미식 경험을 선사한다. 그러나 최상급 송이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까다롭기 그지없다. 갓이 너무 퍼져서도 안되고 그 몸통도 곧게 뻗어야 한다. 비록 일반인의 눈에는 미세한 차이로 보일지라도, 이 정교한 기준이 송이의 진가를 결정짓는다.
이런 송이를 떠올리게 하는 셰프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 제16대 조리명장, 안유성이다. 그의 삶은 명장의 타이틀을 얻기까지의 여정을 통해 송이와 닮아 있다. 명장은 단순히 뛰어난 요리 기술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 공헌, 인격, 그리고 전문성을 고루 갖추고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만 주어지는 그야말로 최상급의 영예다. 그래서일까, 명장이라는 이름에는 남다른 품격이 깃들어 있다. 마치 은은한 향기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송이처럼.
지난해 대한민국을 울게 했던 비극적인 무안 참사에서도 명장은 달랐다. 유가족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해 전복죽, 도시락 등을 준비한 것이다. 딱히 알려지길 바라고 한 행동은 아녔다. 오히려 알려지자 쑥스러웠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의 선행이 알려지자 유의미한 변화는 있었다. 전국 각지 요리사, 기능장들이 그 기부에 동참하기 위해 한곳에 모인 것이다. 때론 맛있는 요리가 가진 힘은 단순히 맛으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안유성 명장이 이끄는 가매일식 역시 특별하다. 남도의 풍성한 재료를 일식과 결합해 한국적이면서 정통 일본의 맛도 느낄 수 있다. 호남 특유의 ‘정(情)’처럼 나오는 음식도 다양하다. 삼치, 개불, 붕장어, 랍스터, 참치 등 잘 차려진 한상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 정갈하지만 풍성한, 남도스러우면서도 일식의 절제 미(美)를 보는 것도 묘미다.
특히 가매의 광어초밥은 살이 쫄깃하면서 찰지다. 안 명장이 직접 개발한 간장 소스는 달면서도 짭짤한데, 이게 광어의 담백함과도 잘 어울린다. 새콤한 샤리(초밥용 밥)와도 궁합이 좋다. 김에 싸 먹는 삼치도 주목할 만하다. 씹을수록 바다향이 올라오는 곱창 김에 삼치를 올려 간장 양념장을 발라 먹으면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어 반갑다. 또한 능이버섯, 동죽, 무를 함께 끓여 낸 스이모노(맑은 국)도 별미다. 능이버섯 특유의 향긋하면서 쿰쿰한 향이 시원한 조개와 만나면서 바다와 땅의 절묘한 배합을 이끌어 낸다. 이미 두 재료만으로도 시원한데 뭉근하게 끓여진 무가 만나면서 시원함은 배가 된다.
요리만큼이나 신경 쓰는 것은 후계 양성이다. 버섯이 포자를 흩뿌려 그 주변을 향긋하게 만들 듯, 안 명장 역시 제자 육성에 진심이다. 안 명장은 한국의 미식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그에 걸맞은 요리 학교를 창립하고 싶다고 했다. 또 가매일식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여러 명장의 업장을 들여와 ‘명장의 거리’를 만드는 것도 목표다. 명장이 걸어온 길에는 그만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치 송이가 은은한 그 향을 남기듯.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대한민국 제16대 조리명장 안유성이다. 현재 바다셰프협회장, 한국조리장협회 광주전남 지회장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명장 자격은 2023년 9월 1일에 얻었다. 또 가매일식을 비롯해 광주옥, 장수 나주곰탕, 장수회관 등을 운영 중이다.”
―가매일식은 어떤 곳인가.
“가매일식은 대중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문재인,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까지 모두 들린 광주의 일식집이다. 전체적으론 전통 일식을 표방하지만 남도의 식재료를 결합해 가매만의 맛을 내고 있다. 삼치, 피조개, 자연 송이, 낙지 등 호남의 풍부한 먹거리를 보여주는 곳이다.”
―요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원래 집에서 장수회관 식당을 했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님이 젓갈 사업한 것도 큰 영향을 줬다. 같이 식재료를 고르러 다니면서 보는 눈을 길렀고 또 좋은 식재료가 갖는 힘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다. 시장 심부름을 다니면서 직접 재료도 고르고 혼도 나면서 배웠다.”
―일식을 시작한 점도 궁금하다.
“원래 바다낚시를 좋아해서 참치잡이 선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다 90년대 초반 초밥을 쥐는 모습에 반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게 됐다. 오류동 조그마한 횟집에서 시작해 다도라는 큰 일식집으로 옮겨갔다. 신라호텔 출신 김영주 셰프님과 조선호텔 출신 김진홍 셰프님께도 배웠다. 김영주 셰프님은 내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일본도 자주 보내주고 연수도 보내줬다.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내 우수한 제자들을 일본 연수를 보내주고 있다. 제자들에겐 고기를 주기 보단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려고 하는 편이다.”
―조리 명장이 되는 과정이 궁금하다.
“조리명장은 일단 한식, 중식, 일식 전부 기능사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이후 기능장 시험을 보고 통과해야 하고 현업에서 15~20년 정도 경험이 있어야 한다. 기능장을 따고 나서도 우수 숙련 기술인으로 선정돼야 한다. 또 봉사 점수, 논문 등 여러 분야의 조건도 있다. 내는 서류 양으로만 따지만 책 한 권 정도의 두께다. 1년에 딱 한 번 응시할 수 있는데, 37년 전체 제도 중 조리 명장은 딱 17명이다. 총 7번 떨어졌다. 정말 말 그대로 7전 8기였던 셈이다. (웃음)”
―좌절도 심했을 것 같다.
“명장에 도전하는 그 모든 과정이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떨어졌을 때마다 다시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서류를 준비하게 되더라. 떨어지면서 단점을 조금씩 보완하다 보니 어느새 뒤를 돌아보니 ‘날개’가 달려 있더라. 떨어져도 다시 올라가게 하는 날개 말이다. 그렇다 보니 더 진심을 담게 되더라. 봉사도 단순 점수를 쌓기 위해서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서 하게 됐다. 나눔과 베풂을 요리로 선사하고 싶다. 사람의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요리, 그것이 제대로 된 음식이다.”
―초밥의 매력은 무엇인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회는 물리거나 할 수 있는데, 이상하게 초밥은 안 그렇더라. 또 그 조그마한 한 점을 만들기까지에 엄청난 내공이 담겨있다. 단 한 점으로 승부를 보는 것도 매력적이다.”
―가매의 초밥은 어떤가.
“지역에서 나는 쌀을 고르려 한다. 또 기후에 따라 품종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가령 해남의 쌀은 알이 작고 단단하다. 이런 특징을 살려 초밥을 만든다. 또 직접 만든 다시마 발효 식초를 이용해 간을 맞춘다.”
―명장 이후의 목표가 궁금하다.
“광주옥, 가매일식, 나주곰탕 집 등 1500평 정도를 조금씩 마련했다. 나중에 이곳들을 기반으로 ‘명장의 거리’를 만들어보고 싶다. 같이 제과제빵 명장이 되신 마옥천 베비에르 대표 등과도 이야기를 나눠봤다. 명장 거리가 형성된다면 참여하신다고 하더라. 광주의 랜드마크처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또 젊은 요리사들을 위한 학교도 만들고 싶다. 미국엔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프랑스의 르 꼬르동 블루처럼 한국에서도 음식과 영업, 모두 배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유명인들이 방문한 만큼 재밌는 일화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유명 색소폰 연주자 케니 지(Kenny G)는 평소에 두 끼만 먹는다고 하더라. 낮에 가매를 들려 초밥을 먹었는데, 알고 보니 저녁에도 들려 먹고 갔다. 매니저 말로는 정말 너무 맛있게 먹고 갔다고 했다. 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도 우리 초밥을 참 좋아하셨다. 늘 언제나 초밥을 드시면 30분 정도 낮잠을 주무셨다. 하루는 갑자기 청와대에서 호출해 혹시 탈이라도 나셨나 깜짝 놀라 달려갔었다. 그런데 하시는 말씀이 청와대에서 먹고 싶으니 2인분만 포장해달라는 것이었다. 요리사로선 최고의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호남 지역 식재료로 어떤 초밥을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담양의 죽순을 이용한 초밥, 남원에서 나는 자연산 송이 초밥 등이 있다. 또 전라남도에서는 전국 유일하게 당일 아침 도축한 생고기를 맛볼 수 있다. 그 싱싱한 생고기로 만든 초밥도 맛볼 수 있다. 완도 4kg 이상 대광어를 이용한 초밥, 생홍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가매에선 남도의 있는 요리를 거의 직간접적으로 맛볼 수 있다. 추천하는 코스는 남도 초밥 코스다. 초밥도 먹고 남도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인생을 닮은 요리가 있다면 무엇인가.
“도빙무시. 중국 불도장과 비슷하다. 주전자에 각종 재료를 넣고 끓여서 먹는 요리다. 자연송이, 닭살, 은행, 새우 여러 가지가 들어간다. 끓여 내면 은은한 향이 나는 게 계속 구미를 당기게 한다.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요리다. 그런 도빙무시처럼 가슴에 남고 싶다.”
―가매를 찾아주는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인생의 많은 굴곡을 겪어오며 여러 손님을 만났다. 그중 몇몇 손님은 아이일 때 왔다가 결혼하고 온 사람들도 봤고, 자식의 자식을 데리고 온 분들도 있었다. 고객과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랫동안 이어가는 정이 넘치는 음식점이 되고 싶다. 언제나 감사하다. 관계가 끈끈하게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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