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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사단’ 신뢰의 상징에서 이제는 ‘고인물’ 낙인으로 [영화계, 그들만의 리그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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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배우 만날 기회 줄어들어, 정체”

한국 영화계에서 ‘페르소나’와 ‘사단’은 오랫동안 독창적 작품 세계를 만들어 내는 긍정적 상징으로 여겨졌다. 특정 감독과 배우의 협업은 영화의 정체성과 완성도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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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기생충’까지 네 편을 함께 한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대표적이다. 개봉 당시 관객수 525만 명을 동원한 ‘살인의 추억’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릴러 명작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괴물’은 봉 감독과 송강호에게 첫 ‘1000만’ 타이틀을 안겼다. 이후 할리우드 진출작 ‘설국열차’는 935만 명의 관객을 기록한데 이어, ‘기생충’은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자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르는 동시에 다시 한 번 ‘1000만 관객’이라는 성과를 내며, ‘봉준호-송강호’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시너지를 냈다.

이러한 협업은 단순히 성공적인 흥행 기록을 넘어, 관객들에게 ‘봉준호-송강호’라는 두 이름을 하나의 브랜드로 각인시키며 감독과 배우의 조합이 가진 강력한 파급력을 보여줬다.

홍상수 감독 역시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가 있다. 기주봉, 문성근, 권해효, 송선미, 故 이선균, 문소리, 서영화에 이어 김민희까지 함께했던 배우들과 연속적으로 작업하고 있다. 이러한 협업은 홍상수 특유의 미니멀리즘적 서사와 자연스러운 연기 톤을 완성하는 데 기여하며, 그의 영화 세계를 구체화하는 역할을 했다.

ⓒ넷플릭스, 전원사
ⓒ넷플릭스, 전원사

윤종빈과 하정우의 조합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군도:민란의 시대’, 그리고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까지 5편에서 호흡을 맞췄다. 이들은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와 강렬한 서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꾸준한 흥행 성과를 이어갔다. 김성수 감독은 ‘비트’부터 시작해 ‘태양은 없다’, ‘무사’, ‘아수라’, ‘서울의 봄’까지 정우성과 5편을 함께하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배우와 감독뿐만 아니라 제작사가 같은 배우와 손발을 맞추며 인연을 이어가는 사례도 많다. ‘신세계’, ‘아수라’, ‘헌트’, ‘화란’ 등을 만든 사나이픽쳐스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협업 구조는 작품의 질적 완성도를 높이고, 관객들에게 감독과 배우의 이름만으로도 신뢰를 줄 수 있는 브랜드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이 요소들이 현재는 한국영화 위기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특정 배우와 감독이 반복적 작업이 신선함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또 똑같은 감독과 배우의 캐스팅 라인업에 ‘이미 작품을 본 것 같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오죽하면 과거에는 신뢰와 안정성을 상징하던 “대본도 안 보고 결정했다”는 배우들의 발언이 냉소적으로 해석되며, 관객들은 “제발 대본이라도 보고 결정하라”는 조롱 섞인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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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비공식 작전’의 김성훈 감독과 하정우, 주지훈의 조합이 관객들에게 큰 신선함을 주지 못했다. 김성훈 감독과 하정우는 ‘터널’, 김성훈 감독과 주지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시리즈, 하정우와 주지훈은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 손발을 맞췄었다.

올해는 ‘리볼버’의 전혜진, 김준한, 정만식 등이 같은 달에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크로스’에도 그대로 출연해 기시감을 안겼다. 두 작품은 모두 사나이픽쳐스가 제작하고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가 배급했다.

사나이픽쳐스는 OTT로 무대를 옮겨서도 이 같은 지적을 반복해서 받았다. 지난해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최악의 악’과 지난 11월 공개된 ‘강남 비-사이드’는 작품성이 높았지만 지창욱, 김형서(비비), 임성재, 차래형, 지승현 등이 모두 두 작품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강남 비-사이드’가 ‘최악의 악’ 후속편인가 싶다”라는 우스갯소리를 남겼다.

이 같은 상황은 작품이 흥미로움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폐쇄적으로 운영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영화 관계자들은 관객의 피로감은 단순히 캐스팅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배우와 감독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한 영화 관계자는 “과거 ‘페르소나’로 불리며 ‘믿고 보는 배우와 감독 제작진’이라고 불렸던 무리는 퇴색한지 오래다. 점점 캐스팅과 스토리 연출 등에 있어서 안일해지고 ‘늘 하던대로’ 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관객들의 신뢰도 잃었다. 당장 실제 관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최근 영화계를 장악한 모 사단에 대해 ‘뚜껑을 안 열어봐도 이미 다 본 기분’이라고 하더라. 더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관객 모객에도 힘을 잃게 된다. 과거 조우진, 진선규, 김태리 등 연기 잘하는 낯선 얼굴의 배우가 등장했을 때 관객들이 환호하고 기뻐했다. 그런 배우들의 자리, 낯선 얼굴을 만날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고 관객들 역시 기대하는 바가 적어진다. 막상 새 얼굴을 꾸준히 찾고 있는 감독을 떠올리면 박훈정 감독 정도다”라며 “‘그 감독’과 ‘그 배우’가 만나니 배우와 제작진 역시 새로운 걸 꺼내지 않지 않나. 업계서도 느껴지는 그 익숙함이 관객들에게도 전달된다. 그게 현재 한국영화, 극장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 거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글로벌 OTT 플랫폼은 국내가 아닌 전세계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만큼, 감독이나 배우의 인지도나 과거 흥행 성적에 크게 기댈 필요가 없어 조금 더 새로운 조합에 열려 있는 편이다. 넷플릭스 ‘D.P’의 구교환과 정해인 조합, ‘스위트홈’의 송강과 이도현, 디즈니플러스 ‘무빙’의 고윤정, 이정하 등의 사례는 기존 영화계의 고착화된 구조와 대비되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다수의 배우를 관리하는 매니저는 “알게 모르게 영화배우, 드라마 배우의 선이 있다. 신선한 신인보다 드라마에서 활약한 배우들이 영화로 넘어가는 일이 더 힘들다. 또 스크린에서 익숙한, 본인들이 손발을 맞춘 배우들을 조금 더 환영한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최선을 다해 유명 감독의 작품도 잡아 오고, 배우도 최선을 다해서 미팅이나 오디션에 응하지만, 기대할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다. 오히려 신인 감독이나 고정된 이미지가 없는 감독의 작품을 조금 더 타겟팅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배우들의 입장에서도 ‘페르소나’, ‘사단’이라고 불리며 자주 자신을 찾아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한 배우 매니지먼트 소속사 대표는 “한 감독이랑만 계속 작업하면 이미지가 굳어지고 벽이 높아 보일 수 있어, 작품 선택할 때 신뢰나 의리를 우선하는 편은 아니다. 또 한국 영화계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현재 별로 좋지 않다.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로 받아들여져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입맛대로 영화를 만들고 영화가 실패하면 대중의 탓으로 여긴다는 인식에 반감은 높아지고 신뢰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영화계에서도 돌아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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