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메뉴 바로가기 (상단) 본문 컨텐츠 바로가기 주요 메뉴 바로가기 (하단)

[엘르보이스] 우리 동네를 만드는 법

엘르 조회수  

©unsplash
©unsplash

©unsplash

어릴 때부터 내가 사는 곳을 ‘우리 동네’라고 얘기했지만, 그곳을 진짜 ‘우리 동네’라고 느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집과 멀리 떨어진 기숙사 학교에 다녔는데, 기숙사 주변은 어쩐지 ‘우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스무 살에 서울로 올라온 이후엔 더더욱 서울의 어느 곳도 우리 동네로 느껴지지 않았다. 사는 곳 정도이지 내가 마음을 붙이고, 편안하게 느끼는 동네가 아닌 곳. 내가 사는 곳이 집이 아니라 방 한 칸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사를 자주 다니면서 매번 적응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 나를 그렇게 느끼게 했을 수도 있다.
그러다 “거기 우리 동네야”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건 친구들과 가까이 살기 시작하면서였다. 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아도, 만나고 싶을 때 걸어가서 만날 수 있는 친밀한 존재가 있다는 것이 내게 주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컸다. 동네에서 자주 만나니 당연히 자주 가는 카페나 음식점이 생겼고, 거길 ‘단골집’으로 부르면서 동네에 대한 애정이 커졌다. 메뉴도, 탁자 모양이나 위치도, 주문하면 나오는 음식의 맛도 모두 익숙해서 편안한 공간. 다소 쌀쌀맞은 서울의 어딘가에 내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집 말고 하나 더 있다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 공간으로 초대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와인 바 ‘클로스’는 내게 그런 단골집 중 하나다. 지하철 출구를 나오면 바로 보이는 작은 와인 바였는데, 내추럴 와인을 잔으로 판다는 것 때문에 한 번 두 번 가기 시작한 게 단골로 이어졌다. 언제나 좋은 음악이 흐르고, 무엇보다 조금 무심한 사장님이 만들어놓은 적당한 거리가 좋았다.

©unsplash
©unsplash

©unsplash

하루는 회사에서 일하다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퇴근해 지하철역을 딱 나왔는데, 클로스의 통창으로 음악 들으며 와인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쩐지 그냥 집에 가기 싫어서 바에 자리를 잡았다. 평소처럼 와인 한 잔을 시키고, 수첩을 꺼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 왜 마음이 너덜너덜한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지금 겪고 있는 일터의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마음 가는 대로 쓰다 보니 수첩 몇 장을 넘겼다. 마치 일기를 쓰러 온 사람처럼 주문한 와인도 마시지 않고 손으로 글을 쏟아냈고, 그러고 나니 뭔가 마음에서 ‘쑥’ 빠져나갔다. 사람 사이에 있지만, 또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단골집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런 마음속에 머물지 않도록 꽤 나를 잘 보살피고 있잖아!’ 환경이 갑자기 변하기 어렵다면, 나를 챙기고 회복시켜 또 잘 살아보자고 다독였다. 적절한 때에 맛있는 것도 사먹고, 와인도 마시면서 나아진 기분으로 향이 좋은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행복했다.
위에 내가 ‘단골집 중 하나’였다’고 쓴 이유는 얼마 전 클로스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2년 전 우리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클로스가 이사 갈 때도 속상했지만, 그래도 다른 동네에 있는 단골집이어서 괜찮았다. 매주는 아니겠지만, 생각날 때 들를 수 있으니까. 하지만 클로스가 문을 닫는다는 공지를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정말 오랜만에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여기서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은 클로스여서 가능했는데, 이젠 그걸 할 수 없다는 게 슬펐다. 단골집은 그곳이 내게 고유한 경험을 주기 때문에 단골집이 되는 것이므로. 오늘의 선곡과 추천받을 와인과 강아지 알바생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모든 것이 편안하게 배치돼 있지만 잘 보면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게 없는 공간을 확인하는 것. 아쉬운 마음에 찾아온 손님들로 마지막 날까지 북적북적한 걸 보면 아마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서울 어딘가에 많았던 모양이다. 이 슬픔은 남은 단골집에 자주 가는 것으로 승화해야지! 이사를 해야 해서 낯선 동네에 떨어져도, 그 동네를 우리 동네라고 부를 수 있는 방법을 이젠 몇 가지 안다. 그중 하나를 알려준 내 고마운 단골집 클로스, 안녕.

엘르
엘르

홍진아

카카오 임팩트 사업팀장이자 프로N잡러. 〈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일터로 출근합니다〉 등의 책을 썼고, 밀레니얼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 서비스 ‘빌라선샤인’을 운영했다.

엘르
content@www.newsbell.co.kr

댓글0

300

댓글0

[연예] 랭킹 뉴스

  • 이토록 친밀한 실수들
  • 루머의 루머의 루머들
  • 김희원이 조명가게로 마주한 것들
  • '4개월만 148kg→-48kg' 미나 시누, 비욘세 뺨치는 파격 클럽룩입고 '자신감 뿜뿜'
  • 지드래곤, 이번에 비니 패션 완벽 소화…'장꾸美' 가득
  • 14년 만에 영국 런던으로… 30주년 맞이한 SM, 오늘(23일) 특급 소식 발표

[연예] 공감 뉴스

  • 이지아, 산발머리가 이렇게 예쁠 일인가…'고급美 철철' [MD★스타]
  • '세계테마기행' 이탈리아 1부, 로마 편
  • 접점 전혀 없어 보이는 김혜수·김연아·페이커·필릭스가 한자리에 모인 이유: 눈 동그래진다
  • "너무 힘든 순간에 하는 생각" 김고은의 가치관은 추운 겨울을 지나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
  • [데일리 핫이슈] 가수 이승환 법적 대응 예고·송중기 광화문 뜬다·김나영 1억원 기부
  • 프로미스나인 백지헌, 하이브 떠나며 마지막 팬송에 "이 편지가 네게 닿길" 뭉클

당신을 위한 인기글

  • “회당 출연료 1억” 이제훈, 단종된 BMW로 남자다움 폭발
  • “이러는데 어떻게 믿고 타” 충전 중이던 수소 시내버스 폭발
  • “카니발 괜히 샀다 후회” 토요타 하이브리드 미니밴 역대급 진화 예고!
  • “운전자 분노 1순위, 아프리카로?” 시민들, 이 참에 싹 다 옮겨가라 환호!
  • 남편, 블박 속 수상한 소리에 “아이스크림 먹었어” 대답한 아내 알고보니..
  • “76%, 무조건 쫒아내라 난리!” 서울시, 드디어 골칫거리 참교육 들어간다!
  • “더이상 현대차 사기 싫다면!” 토요타, 코나 급 SUV 공개
  • “운전하다 이 차 보이면 다 도망간다!” 스케일이 다른 미국 경찰차 SUV
//php echo do_shortcode('[yarpp]'); ?>

함께 보면 좋은 뉴스

  • 1
    한국관광공사 "크리스마스 데이트하기 좋은 여행지 추천"

    뉴스 

  • 2
    불법스포츠도박 근절부터 장애인 체육 후원까지…스포츠토토, 공익 사업의 모범

    스포츠 

  • 3
    경륜경정총괄본부, 성탄절 선물 등 연말 다양한 기부활동 실천

    스포츠 

  • 4
    양키스→메츠→컵스→그런데 '121패' 최악의 팀도 만났다, 日 퍼펙트 괴물 행선지 중 하나인가

    스포츠 

  • 5
    AI 시대, 디자이너 살아남으려면…김은진 "문제 만드는 사람 되어야"

    뉴스 

[연예] 인기 뉴스

  • 이토록 친밀한 실수들
  • 루머의 루머의 루머들
  • 김희원이 조명가게로 마주한 것들
  • '4개월만 148kg→-48kg' 미나 시누, 비욘세 뺨치는 파격 클럽룩입고 '자신감 뿜뿜'
  • 지드래곤, 이번에 비니 패션 완벽 소화…'장꾸美' 가득
  • 14년 만에 영국 런던으로… 30주년 맞이한 SM, 오늘(23일) 특급 소식 발표

지금 뜨는 뉴스

  • 1
    尹 측이 수사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여기서 '강조한 부분'을 보면 기도 안 찬다

    뉴스&nbsp

  • 2
    인사처 "정부 인사교류 18개 직위 추가…과장급 14개·국장급 4개"

    뉴스&nbsp

  • 3
    1만 볼트 전기 철책 세운 北..사진에 찍힌 병사들 모습은

    뉴스&nbsp

  • 4
    노상원 계엄수첩서 ‘北 도발 유도·국회봉쇄·사살’ 메모

    뉴스&nbsp

  • 5
    '그래도 이재명은 안됩니다'…정연욱, 선관위의 현수막 불허조치 보류에 "그럴 줄 알았다"

    뉴스&nbsp

[연예] 추천 뉴스

  • 이지아, 산발머리가 이렇게 예쁠 일인가…'고급美 철철' [MD★스타]
  • '세계테마기행' 이탈리아 1부, 로마 편
  • 접점 전혀 없어 보이는 김혜수·김연아·페이커·필릭스가 한자리에 모인 이유: 눈 동그래진다
  • "너무 힘든 순간에 하는 생각" 김고은의 가치관은 추운 겨울을 지나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
  • [데일리 핫이슈] 가수 이승환 법적 대응 예고·송중기 광화문 뜬다·김나영 1억원 기부
  • 프로미스나인 백지헌, 하이브 떠나며 마지막 팬송에 "이 편지가 네게 닿길" 뭉클

당신을 위한 인기글

  • “회당 출연료 1억” 이제훈, 단종된 BMW로 남자다움 폭발
  • “이러는데 어떻게 믿고 타” 충전 중이던 수소 시내버스 폭발
  • “카니발 괜히 샀다 후회” 토요타 하이브리드 미니밴 역대급 진화 예고!
  • “운전자 분노 1순위, 아프리카로?” 시민들, 이 참에 싹 다 옮겨가라 환호!
  • 남편, 블박 속 수상한 소리에 “아이스크림 먹었어” 대답한 아내 알고보니..
  • “76%, 무조건 쫒아내라 난리!” 서울시, 드디어 골칫거리 참교육 들어간다!
  • “더이상 현대차 사기 싫다면!” 토요타, 코나 급 SUV 공개
  • “운전하다 이 차 보이면 다 도망간다!” 스케일이 다른 미국 경찰차 SUV

추천 뉴스

  • 1
    한국관광공사 "크리스마스 데이트하기 좋은 여행지 추천"

    뉴스 

  • 2
    불법스포츠도박 근절부터 장애인 체육 후원까지…스포츠토토, 공익 사업의 모범

    스포츠 

  • 3
    경륜경정총괄본부, 성탄절 선물 등 연말 다양한 기부활동 실천

    스포츠 

  • 4
    양키스→메츠→컵스→그런데 '121패' 최악의 팀도 만났다, 日 퍼펙트 괴물 행선지 중 하나인가

    스포츠 

  • 5
    AI 시대, 디자이너 살아남으려면…김은진 "문제 만드는 사람 되어야"

    뉴스 

지금 뜨는 뉴스

  • 1
    尹 측이 수사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여기서 '강조한 부분'을 보면 기도 안 찬다

    뉴스 

  • 2
    인사처 "정부 인사교류 18개 직위 추가…과장급 14개·국장급 4개"

    뉴스 

  • 3
    1만 볼트 전기 철책 세운 北..사진에 찍힌 병사들 모습은

    뉴스 

  • 4
    노상원 계엄수첩서 ‘北 도발 유도·국회봉쇄·사살’ 메모

    뉴스 

  • 5
    '그래도 이재명은 안됩니다'…정연욱, 선관위의 현수막 불허조치 보류에 "그럴 줄 알았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