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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포테이토 지수 84%] ‘조명가게’ 어쩌면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생의 의지’

맥스무비 조회수  

강풀 작가의 웹툰을 옮긴 '조명가게'의 한 장면. 사진제공=디즈니+
강풀 작가의 웹툰을 옮긴 ‘조명가게’의 한 장면. 사진제공=디즈니+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어두운 밤, 길게 뻗은 골목길의 끝자락에서 자리를 지키며 환하게 빛을 내는 ‘조명가게’는 어딘가 이상하면서 독특하고, 처연하면서 따스한 구석이 있다. 이곳을 찾는 손님에게 “어떻게 오셨죠?”라며 묻는 조명가게 사장 원영(주지훈)의 일상적인 물음은 마음을 한결 편하게 한다. 전구를 사기 위해 방문한 손님들 사이에는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아야만 다름을 눈치챌 수 있는 의뭉스러운 자들도 있다. 조명가게 사장은 단골손님 여고생 현주에게 이상한 존재들을 마주치고 그들의 이상함을 인지하면 그저 도망가라고 일러줄 정도다. 이들은 누구일까.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조명가게'(극본 강풀·연출 김희원)는 무슨 사연 때문인지 머무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의문으로 가득한 이상한 존재들을 파편적으로 제시하고 봉합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밤마다 버스정류장 옆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지영(설현)과 호기심을 느끼고 대화를 청하는 현민(엄태구), 어느 순간부터 말을 하지 않는 엄마 유희(이정은)의 심부름을 잊지 않고 조명가게를 방문하는 여고생 현주(신은수), 김광석의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반복해서 부르는 고등학생 기웅(김기해)으로 인해 새로 이사한 집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선해(김민하), 물을 뚝뚝 흘리며 흐느끼는 버스기사(박혁권)과 범인을 찾아다니는 형사(배성우)도 있다. 

개별적이고 단편적인 에피소드처럼 보이는 ‘조명가게’의 복잡한 구성을 한 번에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조명가게’의 문을 열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다 보면, 숨겨져 있던 비밀이 조명이 ‘탁!’ 켜진 것처럼 강렬하게 다가온다. 각 인물마다 숨겨진 사연은 에피소드를 거듭하면서 일정 부분 단서를 제공하는데,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층위를 단단하게 다지기 때문이다. 

강풀 작가의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조명가게’의 세계관은 각자의 위치에서 존재하던 서사들이 생의 의지라는 거대한 줄기로 모이며 비로소 완성된다. 골목길을 헤매이는 이상한 존재들이 버스 추락 사고로 인해 중환자 병동에 입원한 환자였다는 사실이 4화에서 밝혀지는데, 조명가게가 있는 공간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선 사람들과 아직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 자신의 소중한 인연을 원래대로 돌려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진 곳이다. 

'조명가게'에서 지영(설현)이 연인 현민(엄태구)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 사진제공=디즈니+
‘조명가게’에서 지영(설현)이 연인 현민(엄태구)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 사진제공=디즈니+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헤매며 이상한 현상을 겪던 이들은 누군가에 의해 혹은 스스로 인지하며 생의 의지를 키운다. 버스 사고로 의식을 잃고 병상에 누은 이들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중환자인데 어떻게 의지가 생기죠? 강풀 작가는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 의식을 잃고 죽음의 경계에 있는 그들 주변 사람들이 지닌 ‘간절한 염원’으로 꾹꾹 눌러 담는다. 그 염원은 조명가게를 채우는 밝은 빛으로 치환된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선해는 계속해서 켜둔 전구가 꺼지는 기이한 일을 겪는다. 어둠 속에서 낯선 존재를 보게 된 선해는 집 밖으로 나가려 발버둥치지만, 어째서인지 문은 열리지 않는다. 공포 영화 같은 선해의 에피소드에는 함께 버스를 탔던 동성의 연인 혜원(김선화)의 진심이 묻어있다. 사고 직전, 이사할 집을 알아보다가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두 사람은 버스에 탈 때까지도 심하게 다툰 상태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는 선해를 살리기 위해 조명가게로 인도하는 혜원의 행동은 에피소드를 거듭하면서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그 비밀이 드러난다.  

현주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조명가게를 방문하지만, 집은 늘 어두컴컴하다. 현주의 엄마 유희는 함께 버스를 탔던 이미 죽은 존재지만 아직 그 경계선에 선 현주를 돌려보내려고 애쓴다. 늘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지영도 있다. 버스 사고를 당한 현민의 연인으로, 심한 부상을 입은 현민의 상처를 바느질로 꿰매며 생의 의지를 불어넣는다. 현민이 죽었다고 오해한 지영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만 뒤늦게 현민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된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지영은 풍전등화와 같은 현민을 살리기 위해 열중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생의 의지를 만들어낸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조명가게'에서 선해를 연기한 김민하. 사진제공=디즈니+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조명가게’에서 선해를 연기한 김민하. 사진제공=디즈니+

‘조명가게’의 주제를 관통하는 것은 사장 원영의 “어디든 사람 사는 곳 아니겠어요?”라는 말과 중환자병동의 간호사 영지(박보영)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라는 반복적인 대사다. 원영이 있는 조명가게에서 환하게 빛나는 조명의 얇은 필라멘트, 영지가 머무르는 중환자병동의 환자들의 심장박동의 리듬과 속도를 측정하는 심전도계는 어느 순간 포개진다. 두 캐릭터는 일종의 어시스트 역할을 부여받아 생과 사의 경계의 세계와 그 안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을 연결해 생의 의지로 가 닿게 한다. 

이러한 맥락들을 하나씩 짚으며 생의 의지로 표상되는 환한 빛을 쫓아가다 보면, 강풀의 세계관에 심어진 위로와 희망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추상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생을 향한 의지’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포개진 어떤 염원으로부터 만들어진 희망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공개된 강풀 원작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이 힘차게 날아올랐다면, ‘조명가게’는 환하게 주변을 밝혔다. ‘조명가게’의 기이하고 기묘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일들은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는, 의지의 영역과 맞닿아 묘한 위로를 건네준다. 

 ● 웹툰과 드라마의 차이, 체크 포인트 

원작 웹툰과 비교해 사뭇 달라진 부분들도 눈에 띈다. 원작자안 강풀 작가가 극본에 참여하면서 이야기가 확장됐다. 웹툰에서는 원영의 사연은 미지의 영역이었지만, 드라마에서 아파트 붕괴 사고로 사망하면서 어린 딸과 이별한 과거가 드러난다. 이를 통해 현주와 그의 엄마, 원영 사이의 연결고리가 생긴다. 처음은 그저 단골손님으로 현주를 챙겨주던 원영의 모습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애틋한 힘을 얻는다. 

간호사 영지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환자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나 의지를 불어넣어 주던 영지는 드라마에서 자신도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헤매던 같은 처지를 가진 인물이었다는 설정으로 변화했다. 그저 보여서는 안 되는 존재들을 보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죽음을 경험한 이들과 공감대를 가진 인물로 역할을 하면서 ‘조명가게’의 파편화된 에피소드를 한데 아우른다.

중환자병동 간호사 영지 역의 박보영. 사진제공=디즈니+
중환자병동 간호사 영지 역의 박보영. 사진제공=디즈니+

‘조명가게’를 통해 처음으로 연출에 도전한 배우 김희원의 섬세한 시선도 드라마를 풍성하게 채웠다. 그의 연출은 4회에서 빛을 발했다. 

원작에서는 한 환자가 영지의 도움으로 귀를 채우고 있던 모래를 빼내고 김광석의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이어폰으로 듣게 된다. 그 노래가 옆에 누워 있던 또 다른 환자 지웅에게 이어지는 데 머물렀던 원작과 달리 드라마는 중환자 병동을 부감으로 바라보면서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환자들의 얼굴을 한 명씩 비춘다. 노래가 흘러가면서 한 명씩 드러나는 얼굴을 통해 그동안 쌓은 이야기의 비밀을 드러낸다. 단편적으로 묘사된 인물과 이야기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다소 난해했던 ‘조명가게’에 완전히 몰입하게 하는 결정적인 장면이 됐다.

김희원 감독은 또한 조명가게에 방문한 손님들이 자신의 빛이 담긴 전구를 알아볼 때, 이를 흑백으로 처리하면서 빛의 대비를 부각시킨다. 생과 사의 갈림길을 조명의 빛으로 묘사한 핵심적인 이미지의 표현이다.  

원작이 파편적인 에피소드를 마지막에 한 번에 봉합해 짜릿함을 안겼다면, 드라마는 후반부의 반전의 요소보다 살고자 하는 의지는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해 더 깊은 물음을 던지며 나아간다. 반복적인 대사를 통해 ‘조명가게’만의 세계를 설명하고, 원작에서는 짧게 등장한 지영과 형사 양성식(배성우) 캐릭터의 분량을 늘려 친절하게 이야기를 풀면서 원작이 지닌 날카롭지만 통통 튀는 매력이 많이 뭉퉁해진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조명가게’ 말미에는 강풀 유니버스의 초능력 세계관인 웹툰 ‘타이밍'(2005), ‘어게인'(2009), ‘무빙'(2015), ‘브릿지'(2017)를 잇는 주인공 김영탁(박정민)과 장희수(고윤정)가 등장하며 이들 작품을 관통하는 시리즈의 확장을 기대케 했다. 

딸 현주를 안고 있는 엄마 유희. 사진제공=디즈니+
딸 현주를 안고 있는 엄마 유희. 사진제공=디즈니+

연출 : 김희원 / 각본 : 강풀 / 원작 : 강풀 웹툰 ‘조명가게’ /출연: 주지훈, 박보영, 설현, 엄태구, 김민하, 신은수, 이정은 외 / 장르: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 공개일: 12월4일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회차: 9부작 / 플랫폼 : 디즈니+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

로 나눠 공개합니다.]

맥스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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