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한계까지 몰아붙여 탄생시킨 캐릭터, 이문정
배우 김서형은 욕심쟁이다. 연기 잘한다는 칭찬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것처럼, 성공한 드라마 몇 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듯, 계속해서 새로움에 도전한다.
그 도전이 반가운 이유는 두 가지다. 김서형은 어쩌면 자신도 몰랐을 새로운 얼굴을 자꾸만 꺼낸다. 또, 그저 새로운 게 아니라 인간의 내면, 그것도 사회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위축된 사람들의 내면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인다. 점차 고립화되어 가는 현대인들의 사이에 다리를 놓아 ‘우리 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소통의 길을 뚫는다.
이기심에 뿌리를 둔 가부장적 폭력에 의해 가정에 고립된 여성이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인 ‘나를 내어주어 남을 돕는 이타심’들을 통해 때론 비도덕적 방식으로 끝내는 선의 덕에 세상 밖으로 탈출하는 드라마 ‘종이달’에 이어 영화 ‘비닐하우스’(감독 이솔희, 제작 한국영화아카데미 KAFA, 배급 ㈜트리플칙쳐스)도 같은 맥락에 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새로움의 강도가 매우 크다. 배우 김서형이 정성들여 빚은 ‘비닐하우스’의 이문정은 ‘종이달’ 유이화보다 지독하게 고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화가 심리적 늪에 빠져 있었다면, 문정은 육체적 정신적 아픔이 중첩돼 있고 사회적으로도 누구 하나 손 잡아 줄 이 없어 소외돼 있다. 더 내려간 인생고의 깊이와 지워진 삶의 무게 만큼 김서형의 연기는 새롭다
단순히 자신의 얼굴에 스스로 따귀를 갈기고 머리를 치는 연기를 주저 없이 강도 높게 해서가 아니다. 혼자 짊어져야 하는 삶의 고통이 눈두덩이에도 지워진 듯 제대로 뜨지 못하는 눈, 어쩐지 내게만 더 가혹한 것 같은 잔인한 인생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기로 한 삶의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한 ‘텅 빈 친절함’이 밴 비음 섞인 목소리와 비굴한 말투, 그렇게도 수동적으로 피동적으로 수긍의 삶을 사는데도 부족하다는 듯 더해지는 인생고에 절로 찡긋거리는 눈꺼풀과 떨리는 입술. 곁에 있다면 무작정 다가가 안아주고 싶은 문정을 자기관용 없이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김서형의 연기가 탄생시켰다.
그래서일까. 이제 곧 출소할 아들과 함께 살 ‘우리 집’ 하나 얻겠다는 희망으로 범하는 범죄를 쉽게 비난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마음 저 깊이에서 응원하고 있는 내가 있다. 그러다 선을 넘고야 만 이기심이 문정의 인생에 칼과 불을 달고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그의 심장에 박힐 때, 화가 난다. 더한 나쁜 사람들에게도 이런 부메랑을 되돌려 꽂은 적 있냐고 누구인지도 모를 운명의 주제자에게 화를 낸다. 왜, 왜, 문정에게만 더 가혹한 것이냐고 울부짖는다.
배우의 몰입은 관객의 몰입을 부른다. 모든 배우에게 가능한 재주도 아니고, 되는 배우에게도 공식처럼 언제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비닐하우스’에 사는 김서형은 보는 이의 가슴을 잡아끌어 제 곁에 세운다. 훅 ‘비닐하우스’ 안으로 잡혀들어간 우리는 너무 몰입한 나머지 문정이 된다. 새로운 경험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불타는 문정의 비닐하우스를 보며 눈물짓는 것도 잠시, ‘문정도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어도 인생은 살아야 하는 거니까 나도 힘을 내 살아보자’는 생각이 툭 고개를 든다. 절망 끝에서 희망을 건져올리려, 우리에게 그 희망을 나누려 배우 김서형은 영화 ‘비닐하우스’를 선택했나 보다.
어정쩡한 연기엔 평가와 의견이 갈린다. 압도적으로 훌륭한 연기엔 이견이 없다. 평론가들이 준 제4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언론이 준 제32회 부일영화상, 연기의 순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호흡하는 촬영감독들이 수여하는 제43회 황금촬영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배우 김서형이 가장 받고 싶었을, 관객들이 주는 칭찬의 소리가 크고 뜨겁다.
배우 김서형의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연기’(관람객 ye4u****)는 웨이브, 넷플릭스, 티빙, 왓챠 등 OTT 플랫폼을 통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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