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만화광이 세운 거대한 예술 책 제국, 타셴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1980년 독일 쾰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8세였던 베네딕트 타셴(Benedikt Taschen)은 25m2의 공간에서 자신이 수집한 희귀 만화책을 판매하는 ‘타셴 코믹스(Taschen Comics)’를 열었다. EC 코믹스의 만화가 월리스 우드(Wallace Wood)의 〈Sally Forth〉와 프랑스 아티스트 테드 베누아(Ted Benoit)의 〈Ray Banana〉 같은 만화책을 판매하면서 만화책에 대한 열정이 비즈니스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미국 무역박람회에서 베네딕트는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책 4만 권을 권당 1달러에 매입했고, 이를 개당 9.99독일 마르크(현재 약 6달러)에 되팔아 큰 수익을 올렸다. 베네딕트에게 르네 마그리트는 영웅과 같은 존재. 이 경험은 그에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저렴한 예술 서적’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고, 이후 1985년 타셴은 첫 번째 제작물인 〈피카소-세기의 천재 Picasso-The Genius of the Century〉를 출간했다.
이 책은 타셴의 ‘베이식 아트(Basic Art)’ 시리즈의 서막을 열었고, 이 시리즈는 오늘날 저렴한 가격으로 예술을 전 세계 대중에게 소개하는 대표 시리즈로 자리 잡았다. 이후 살바도르 달리, 빈센트 반 고흐 같은 예술가를 다룬 책과 표현주의, 큐비즘 등 다양한 예술 사조를 다룬 책들이 출간됐다. 베네딕트의 모험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팝아트, 고급 인테리어, 희귀 골동품 항아리, 포르노그래피까지 다양한 주제를 거침없이 다루며 경계를 넓혔다. 루터 성경과 같은 종교적 고전부터 페티시 사진가 엘머 배터스(Elmer Batters)의 작품집까지 대중성과 예술성을 아우르는 독특한 색채를 갖추게 된 것이다.
1999년에는 독일 사진가 헬무트 뉴턴(Helmut Newton)의 사진집 〈Helmut Newton’s SUMO〉를 출간해 세상에서 가장 대담한 책을 만들었다. 400쪽이 넘고 무게가 30kg에 달하는 이 책의 가격은 3000유로였지만, 순식간에 매진됐다. 이는 ‘SUMO’ 컬렉션 에디션으로 이어져 무하마드 알리를 위한 헌사인 〈Goat〉를 출간했다. 이 책은 35kg에 달해 보통의 선반에 맞지 않았고,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테이블에 실려 배달됐다. ‘커피 테이블 북’이라는 개념을 문자 그대로 실현한 순간이었다. 타셴은 소장가치를 지닌 예술 서적을 누구나 손에 닿을 수 있는 가격으로 제공하고, 때로는 대담한 디자인으로 독자를 매료시킨다. 이 점이 많은 사람의 책장에 타셴이 자리 잡은 이유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