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안긴 배우 김수미가 남긴 일기 내용 일부가 공개됐다.
김수미가 1983년 30대부터 말년까지 쓴 일기가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으로 12일 출간된다고 연합뉴스가 이날 보도했다.
책에는 연기에 대한 열정과 가족의 이야기, 화려한 배우의 삶의 이면에 감춰진 고통과 불안 등 김수미 삶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담겼다.
유가족은 김수미가 말년에 겪은 고통을 옆에서 지켜봐 온 만큼 안타까운 마음에 일기를 공개했다며 책 인세는 전액 기부할 거라고 밝혔다.
김수미가 남긴 글에서도 일기를 책으로 펴내겠다는 의지와 그 이유가 읽힌다. 그는 “이 책이 출간된 후 제 가족에게 들이닥칠 파장이 두렵다”라면서도 “주님을 영접하고 용기가 생겼다.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사람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제가 지금 이 나이에, 이 위치에 있기까지 제 삶의 철학을 알려주고 싶어서다”라고 썼다.
그런가 하면 자기 이름을 걸고 식품을 판매하던 회사와 분쟁으로 겪은 고통의 흔적도 담겨 있었다.
지난해 10~11월 일기 내용에는 “하루하루가 고문이다. 기사가 터져서 어떤 파장이 올지 밥맛도, 잠도 수면제 없이 못 잔다”, “지난 한 달간 불안, 공포 맘고생은 악몽 그 자체였다. 회사 소송 건으로 기사 터질까 봐 애태웠다”라는 내용들이 빼곡히 쓰여 있었다.
해당 내용이 쓰인 시기는 아들 정명호 씨가 해당 식품 회사의 A씨를 횡령 및 사기 혐의 등으로 고소했던 시기였다. 이에 상대도 맞불 기사를 내겠다고 맞서기도 했다.
A씨는 지난 1월 해당 회사의 대표던 정 씨를 해임한 뒤 김수미와 함께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소해 관련 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수미는 “주님, 저는 죄 안 지었습니다”, “오늘 기사가 터졌다 …… 횡령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라고 토로했다.
김수미의 딸 정 씨는 “엄마는 나중에 무혐의나 무죄가 되는 문제가 아니라 기사 한 줄이 나는 게 무섭고 수치스럽다고 생각했다”라며 “겉보기와 달리 엄마가 기사, 댓글에 엄청나게 속상해하고 견디기 힘들어했다”라고 말했다.
말년에 공황장애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도 있었다. 지난 1월 일기엔 “정말 밥이 모래알 같고 공황장애의 숨 막힘의 고통은 어떤 약으로도 치유할 수 없다”, “공황장애, 숨이 턱턱 막힌다. 불안, 공포, 정말 생애 최고의 힘든 시기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일기에는 일에 대한 애정 또한 빼곡했다. 고인은 1986년 4월엔 “목숨을 걸고 녹화하고, 연습하고, 놀고, 참으면 어떤 대가가 있겠지”, 2004년 1월엔 “어제 녹화도 잘했다. 연기로, 70년 만에 다시 데뷔하는 마음으로 전력 질주해서 본때를 보여주자”, 2017년 2월엔 “너무나 연기에 목이 말라 있다”라고 쓰며 말년까지 일을 향한 열정을 불태웠다.
무엇보다 김수미가 바란 건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글을 쓰는 평화로운 삶이었다.
그는 1986년 일기에서 “화려한 인기보다는 조용한, 평범한 애들 엄마 쪽을 많이 원한다. 적당하게 일하고 아늑한 집에서 자잘한 꽃을 심어 놓고 좋은 책들을 읽으며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을 기다리고 싶다”라고 적었다.
그의 소망은 10년이 훌쩍 지난 2011년까지도 이어졌다. 그는 “마지막 소원이 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아니면 1층 담에 나팔꽃 덩굴을 올리고 살아보고 싶다. 그러면서 글을 쓰고 싶다”라고 했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49재는 이날 오후 2시 경기 용인에서 열릴 예정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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