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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부패’‧’계급’을 비판한 감독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에도 당당하게 맞서

맥스무비 조회수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닮은 감독들의 목소리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국민의 뜨거운 열망에 힘을 보태고 있다. 군부 독재 정권에 짓밟힌 평범한 사람들의 뼈아픈 상처를 영화로 그려 관객에 비극의 역사를 다시금 일깨운 감독부터 철저한 계급으로 나뉜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 감독, 나라가 위기에 빠진 순간 민심을 등진 부패한 왕을 이야기한 감독들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시대와 함께 가는 영화가 지닌 강력한 힘이 이들 감독들이 내는 목소리를 통해 가치를 더한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 직후, 일주일이 지난 10일까지 가장 많이 언급된 영화는 단연 ‘서울의 봄’이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대다수 국민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실권을 쥔 전두환이 육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앞세워 부당하게 권력을 찬탈한 12‧12 군사 반란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11월 개봉한 ‘서울의 봄’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나회의 쿠데타의 비극을 생생하게 담아 1300만명에 이르는 관객을 분노하게 했고, 관련 사실과 연관된 인물들도 다시 주목받았다.

영화로 비극적인 역사를 스크린에서 목도한 관객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 속에 ‘서울의 봄’을 소환했다. 12‧12 군사 반란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짓밟은 독재 세력과 이어진 6월 항쟁까지 ‘어긋난 역사’가 어떤 비극을 일으키는지 되새기면서 현재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폭발적인 관심을 쏟아내고 있다.

그 가운데 김성수 감독은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지난 7일 오후 맥스무비를 통해 “어처구니없는 계엄령 선포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밤을 꼬박 새우며 마음을 진정시켰지만 분노가 아직도 가라앉지 않는다”며 “대한민국은 피를 흘려가며 민주주의를 힘겹게 지켜냈다”고 밝혔다. 이어 탄핵안 표결에 대해 “한 사람 때문에 엉망이 된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탄핵으로 정상화시켜야 한다”며 “여당 국회의원님들, 사리사욕보다 국가를 위하여 올바른 결정을 해주십시오!”라고 촉구했다.

김성수 감독의 목소리는 국민의 바람과 다르지 않다. 1300만명의 관객이 그의 영화에 몰두해 열광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날 표결은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불참하면서 정족수 부족으로 자동 폐기됐다. 이제 관심은 다가오는 14일로 향한다. 민주당 등 야권은 이날 다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 표결을 진행한다. 일주일 전과 달리 국민의힘 의원들 가운데 일부가 표결에 참여할 뜻을 밝힌 상황. 국민의 분노가 과연 어떨 결과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가족' 촬영 현장에서의 양우석 감독.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대가족’ 촬영 현장에서의 양우석 감독.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포고령이 발표된 직후 나라가 온통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생각을 밝힌 영화인은 양우석 감독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비상계엄 정국에서 당장 4일 오전부터 영화 ‘대가족’을 알리는 인터뷰를 계획하고 있던 감독은 일정 연기를 상의하는 제작진을 오히려 다독이면서 예정대로 취재진과 만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비상계엄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양우석 감독은 혼란 속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으면서 “비상계엄은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계엄이라고 하면 경찰이나 행안부 소속 공무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공무원이나 그에 준하는 군인이 와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인데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았냐”고도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직전까지 계엄령을 내릴 만한 내부의 혼란도 외부의 공격도 없었다는 사실을 꼬집은 발언이다.

양우석 감독은 국민을 짓밟은 부당한 권력에 맞선 변호사를 통해 억압의 시대를 고발하거나, 전쟁의 위험이 도사린 한반도 분단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분열을 딛고 평화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내왔다. 그렇게 영화 ‘변호인’으로는 1137만명을, ‘강철비’ 1, 2편으로는 총 626만명의 선택을 받았다. 주제의식이 분명한 영화를 통해 관객을 설득한 연출자로 꼽힌다. 

● “국민에게 행복한 연말을 돌려달라” 황동혁 감독 

역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가운데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꼽히는 ‘오징어 게임’은 계급으로 나뉜 세상을 빗댄 이야기로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 중심인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 이전에 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진 잔혹한 폭력을 고발한 영화 ‘도가니’를 시작으로 병자호란 당시 백성을 등진 왕과 백성의 곁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남한산성’을 통해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거나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아픔을 냉철하게 바라봤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탄핵 요구도 외면하지 않았다.

당장 오는 26일 ‘오징어 게임’ 시즌2를 전 세계에 공개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이런 시국에 ‘오징어 게임’이 공개되는 건 이 작품의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열린 ‘오징어 게임’ 시즌2 제작발표회에서 감독은 “계엄 발표를 믿을 수 없었고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TV로 지켜봤다”며 “탄핵안에 대한 투표도 생중계로 지켜봤다. 말도 안 되는 일로 온 국민이 잠을 못 자고 거리고 나갔다. 불안과 공포, 우울함으로 연말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국민으로서 불행하고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탄핵이든 자진 하야든 책임을 지라”고 촉구하면서 “행복하고 축복이 되는 연말을 국민에게 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 이전에 내놓은 영화 '도가니' '남한산성'을 통해 부패한 집단과 권력을 비판한 황동혁 감독. 사진제공=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리즈 이전에 내놓은 영화 ‘도가니’ ‘남한산성’을 통해 부패한 집단과 권력을 비판한 황동혁 감독. 사진제공=넷플릭스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은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영화계 종사가 2500여명이 모여 발표한 ‘영화인 1차 긴급 성명’을 통해 “내란죄의 현행범인 윤석열의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키고, 파면·구속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박 감독은 성명에 참여한 직후 MBC 시사 프로그램 ‘스트레이트’와의 인터뷰에서 “탄핵 표결을 앞둔 상황에서 한명이라도 더 참여를 해서 국민의힘 의원들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성명에 동참한 이유를 밝혔다.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대중이 다시 주목하는 영화 목록에는 박찬욱 감독이 각본을 쓰고 제작을 맡은 ‘전,란’도 포함돼 있다. 넷플릭스에서 지난 10월 공개한 영화는 임진왜란 직후 나라가 혼돈에 빠진 때, 백성을 버린 왕과 굶주린 백성을 괴롭히는 탐관오리의 틈에서 엇갈린 신분으로 엇갈린 신념을 지닌 두 인물의 이야기를 그렸다. 분명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과연 누가 국민을 진정으로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박찬욱 감독이 ‘전,란’으로 던진 화두는 ‘현재 진행형’이다. 

봉준호 감독 역시 ‘영화인 1차 긴급 성명’의 맨 앞에 있다. 그동안 정치적인 이슈뿐 아니라 영화계 현안, 사회적인 논란 등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봉준호 감독 역시 ‘기생충’부터 ‘살인의 추억’까지 우리 사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이를 극적인 장르로 풀어내는 연출자로 인정받는 인물. 부당한 비상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장악하려 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영화 '아가씨' 촬영 현장에서의 박찬욱 감독.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를 비판하는 영화인 성명에 동참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했다. 사진제공=CJ ENM
영화 ‘아가씨’ 촬영 현장에서의 박찬욱 감독.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를 비판하는 영화인 성명에 동참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했다. 사진제공=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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