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소방관’(감독 곽경택)은 2001년 홍제동 화재 참사 사건 당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화재 진압과 전원 구조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투입된 소방관들의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실제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완성된 ‘소방관’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진 소방관들의 용기와 희생을 스크린 위에 뜨겁게 펼쳐내 호평을 얻은 것은 물론, 지난 4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흥행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메가폰은 영화 ‘친구’ ‘똥개’ ‘극비수사’ 등 한국 영화사에 굵직한 작품을 남기며 시대의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곽경택 감독이 잡았다.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2019) 이후 5년 만에 새 영화로 돌아온 곽경택 감독은 실화의 힘을 바탕으로 ‘사건’보다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에 집중해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이야기로 또 한 번 관객의 마음을 매료한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곽경택 감독은 2020년 크랭크업 후 드디어 관객을 만나게 된 소감부터 연출 계기, 중점을 둔 부분, 촬영 비하인드 등 ‘소방관’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주연배우 곽도원 음주 운전 논란에 대한 솔직한 심정도 들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개봉하게 됐다. 소감은.
“영화마다 각자 운과 팔자가 있는데 이 작품은 처음으로 4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렸다 개봉을 하게 됐다. 코로나19도 있었고 배우의 잘못, 투자배급사가 바뀌는 여러 환경이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지난 4년 동안 굉장히 무거운 족쇄를 찬 느낌이었다. 많은 반성을 하게 하고 겸손하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제공한 작품이다. 호기롭게 열심히 찍는다고 해서 내가 원한 모습이나 타이밍에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처음 경험했고 마지막 홍보의 순간까지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개봉일이 드디어 족쇄를 푸는 날인 것 같다. 훨씬 가볍게 행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우의 잘못이라고 언급했는데 배우 리스크에 대한 솔직한 심정도 궁금하다. 곽도원이 연기한 진섭이 중심에 있는 인물이라 편집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음주 운전과 관련된 일에 국민이 무섭게 지적하는 이유는 자기 혼자 잘못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무서운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관객이 질타하는 거다. 음주 운전으로 인해서도 그렇고 배우 한 사람의 부주의함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또 다른 피해를 주잖나. 스타가 되기도 어렵지만 스타가 되고 나면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한다. 개인의 익명성은 포기해야 한다. 그래야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거다. 자유롭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대중이 그래도 날 사랑해 주고 그건 아니잖나. 자신도 자신이지만 주변에 큰 피해를 준다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조심해야 한다. 나도 캐스팅을 하거나 현장 관리를 할 때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걸 굉장히 잘하는 팀도 있더라. 마동석 팀도 체크를 굉장히 세게 한다. 그런 것을 보며 배운다.
신은 편집한 게 없는 데 소위 말하는 ‘컷’을 뺐다. 음주와 직접적으로 연관될 만한 컷도 손질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제일 고민스러웠던 것은 (곽도원이) 혼자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연상될 수 있어서 끝까지 고민했는데 빼지 못했던 것은 실제 그 사고 현장에 있던 분이 스스로 치유하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연출하게 된 계기로 ‘부채의식’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이었나.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무슨 일만 생기면 119를 누르는 데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물론 우리가 위급한 상황에 우리에게 도움을 주려고 계신 조직이지만 약주 많이 하신 분들이 막 불러서 황당한 행동을 하고 그러는 걸 보며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고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어떤 권력 집단도 아니잖나. 그냥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서만 계시는 분들인데 주고받는 게 있으면 덜할 텐데 받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서 그래서 아마 부채의식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감독으로서의 어떤 욕심도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그것을 표현해 내기 위해 영화적 요소로 불과 연기 같은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도전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도전해 볼만하다는 마음도 작용을 했던 것 같다.”
-시사회 후 간담회에서 소방관들의 평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는데 영화를 보고 어떤 이야기를 해줬나.
“연령대가 있는 분들일수록 조금 더 터칭 된 것 같더라. 터칭이 됐다는 게 죄송하기도 했다. 특히 가장 큰 도움을 준, 실제 현장에 있던 그분이 제일 걱정스러웠다. 상처를 또다시 후벼파는 작업이 됐을까 봐. 끝나고 건조하게 ‘어떻게 봤냐’고 했더니 ‘감동적으로 봤다’고 하더라. 그 안에 많은 의미가 내포된 것 같아서 감사했다.”
-각색 방향은.
“실화를 하다 보면 항상 갈등 되는 포인트가 있다. 얼마나 실화를 갖다 써야 할 것인가 그리고 창작의 자유가 얼마나 주어진다고 스스로 믿어야 할까, 그 지점이 항상 딜레마인데 이번 작품 같은 경우는 뼈대만 갖다 쓰기로 했다. 특히 유족분들의 인터뷰는 아예 처음부터 할 생각도 안 했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을 괴롭힐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연락이 닿는 분에 한해 동의를 구했고 그분들에게 격려도 받았다. 인물들은 거의 다 재창조를 했다. 원래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일반 주택이었는데 영화적 스케일감 때문에 상가 건물로 바꿨다. 운명의 장난인지 오인 사고로 출동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제일 먼저 갈 수밖에 없었던 그런 상황들은 그대로 유지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실화 사건을 하다 보면 연관된 분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도 하고. 그런 경험을 다수 했던 터라 이번에 준비하면서는 최대한 그런 일이 없길 바랐다. 그래서 유족과도 제작자와 프로듀서가 2회 이상 찾아뵙고 동의를 다 구했고 소방청에도 허락을 받았다. 최대한 가슴 아픈 사람을 줄여보자는 마음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
-인물의 서사나 감정의 흐름은 어떻게 가져가려고 했나.
“순직한 소방관의 방화복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사물함에 넣고 있던 분은 실화에서 나온 거다. 또 이미 돌아가셨는데 병원에 온 유족에게 차마 말을 못해서 수술 중이라고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던 구급대 출신의 서장님도 만나봤다. 물론 죽음이라는 극적 요소가 많지만 우리 영화에는 그런 일을 겪고 가서 각자 트라우마를 어떻게 안고 살아가는지 그들의 입장을 전달하고 싶었다. 모른 척, 덮어두고 살아야 하는 그분들의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 부분들을 다소 지루하게 느낄 수 있으나 그 감정선에 동의를 해주는 분들도 계신다면 잘 넘어가지 않겠나 생각했다. 그렇게 뚝뚝 깔고 갔다.”
-베테랑이자 현장파 진섭과 신입이자 이론파 철웅의 대비를 통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항상 베테랑이 있고 신출내기가 있잖아. 신출내기일 수밖에 없는 이 인물이 나중에는 진섭 같은 인물이 돼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고 진섭의 대사에도 나오듯 선배에 대한 기억들이 있잖나. 소방관의 희생과 노력이 결국엔 세대를 거치면서 계속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소위 ‘신파’ 요소를 덜어낸 담백한 연출도 좋았다. 의도한 부분인가.
“영화관에서 다 울고 나오면 카타르시스는 있다. 눈물이라는 게 확 쏟아내는 느낌이 들잖나. 그렇지만 이걸 보고 느낀 순간 확 쏟는 게 아니라 마음을 찡하게 하는 게 계속 여운이 남는 것 같다. 코로나19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는 안 울었다. 그런데 계속 슬펐다. 그런 것처럼 그때 확 감정 쏟는 것보다 쏟지 않고 담아두면 더 여운이 오래 간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연출을 했다.”
-화재 장면 연출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고. 촬영은 어떻게 진행됐나. 위험한 순간은 없었나.
“제작비의 한계가 있어서 압박감이 컸다. 이 영화가 폭발적인 사건이 있거나 액션물은 아니잖나. 그러니 내가 요구할 수 있는 제작비에 어떤 캡이 씌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리얼하게 표현하고 싶고. 그것 때문에 제일 많이 힘들었다. 화재 장면은 크게 두 개로 딱 나눴다. 연기와 화염. 연기로 공포감을 줄 수 있는 건 빌라 화재 신으로 가고 화염과 또 다른 붕괴 요소로 위협을 줄 수 있는 것은 마지막 상가 화재 신으로 가기로 했다. 후반부 화재 장면은 배우들의 눈빛도 담아내야 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연기를 많이 표현하지는 못하겠더라. 그래도 현장의 연기에 대한 곤란함을 표현하고 싶으니 앞쪽 화재 신에 많이 넣었다.
위험한 촬영이었기 때문에 스태프들이 긴장을 계속 유지하게 만들어야 하는 게 임무였다. 특수효과팀도 팀장이 아닌 대표를 오라고 했다. 현장에는 항상 비번 소방대원분들이 있었다. 안전과 고증에 대해 도움을 받았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은 최대한 없애면서 했다. 불이라는 게 다 녹이기 때문에 세트도 철제를 다 박아서 무너지지 않도록 안전조치를 했다. 계속 긴장하고 있던 현장이었다.”
-소방관의 시선으로 화재 현장을 비춘 것도 인상적이었다.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두려움이다. 시선 샷이라는 것은 내가 보고 있는 거라고 느끼는 거잖나. 관객에게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데 매체 프레임을 통해 현장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화재 신에서 인물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는데.
“마스크가 밖에서 연기가 들어올 수 없게 공기를 밀어내는 구조다. 그래서 안전할 수 있는 거다. 그러다 보니 말하는 호흡이 평소보다 훨씬 필터가 돼서 들린다. 일단 현장에서는 최대한 하고 고민은 나중에 하자고 생각했는데 편집을 하면서 자막을 깔아야 하나 싶더라. 그런데 막상 자막을 깔았더니 누군지도 잘 모르겠고 더 복잡해지는 거다. 그래서 차라리 현장감을 더 전달하자고 결정을 하게 됐다.”
-관객의 성향이나 시장의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어떻게 체감하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또 이러한 고민이 ‘소방관’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극단적으로 이미 정하는 것 같다. 극장용과 OTT용. 극장에서 볼 가치가 없는 영화로 판단되면 그냥 끝나는 거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공포가 진짜 세다. 내 영화가 극장에서 볼만한 가치가 있나, 극장까지 오는 귀찮음을 해소해 줄 수 있을까 그런 것이 굉장히 큰 화두가 됐다. 그렇지만 만반의 조치를 한다고 되겠나. 관객이 재미없게 보면 끝이다. 요즘 액션과 물량 공세로 센 영화들이 얼마나 많나. 내가 화재가 난 두 장면을 찍었다고 그게 무슨 큰 스케일감이 있어 보이지 않잖나. 그냥 현장감이 전달되게 사운드와 비주얼을 열심히 만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놓지 않으려는 감독만의 핵심, 중심은 무엇인가.
“세상이 바뀌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내 스타일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떤 모습으로 관객과 만나고 싶은지 딱 서 있어야 한다. 그건 포기하면 안 되는데 그걸 놓치는 순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감독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하되 흉내를 내려고 하거나 원래 그렇게 찍은 장면이 아닌데 그렇게 막 짬뽕 편집을 하려고 한다거나 그런 건 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있다.”
-어떤 모습으로 관객과 만나고 싶은지 놓치지 않겠다고 했는데 감독이 추구하는 이야기, 방향성은 무엇인가.
“아버지가 내가 영화를 막 시작할 때 도와주는데 딱 두 가지만 지키라고 하더라. 하나는 좋은 이야기를 하라는 것, 또 하나는 손에 들어오는 이야기를 하라는 거였다. 내가 다 아는 이야기, 손안에 들어올 수 있는 정도의 이야기를 해야지 아는 체하지 말라는 거다. 너무 어려운 주제거나 감당할 수 없는 철학적인 깊이가 있거나 그런 이야기에 대해 아는 척하지 말고 계속 젊은 감각을 흉내도 내지 말고 그냥 내 손안에 들어오는 이야기만 가져가자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건 지극히 상업적이다. 다른 사람의 돈을 쓰잖나. 내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것에 대한 책임도 있다. 그렇지만 스스로 나의 영화를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예술가로서의 나의 모습도 분명히 투영하고 싶은 게 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나의 작품을 보고 사람들의 영혼이 맑게 되는 거다. 그게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다음 아트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창작자로서는 새로운 것과 진실한 것을 항상 추구하고 좇는 자세는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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