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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예영, 온 마음 다한 ‘언니 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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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예영이 영화 ‘언니 유정’(감독 정해일)으로 단단한 연기 내공을 입증했다. / 씨제스 스튜디오
배우 박예영이 영화 ‘언니 유정’(감독 정해일)으로 단단한 연기 내공을 입증했다. / 씨제스 스튜디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박예영이 영화 ‘언니 유정’(감독 정해일)으로 관객 앞에 섰다. 주인공 유정으로 분해 든든하게 극을 이끈 것은 물론, 윤색에도 참여해 날카로우면서도 사려 깊은 작품의 시선에 힘을 보탠 박예영은 “누구도 상처 주고 싶지 않아 단어 하나도 기민하고 신중하게 접근했다”고 했다. 

2013년 영화 ‘월동준비’로 데뷔한 박예영은 독립영화로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 올린 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세작: 매혹된 자들’,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 등을 통해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주며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안나’로 제21회 디렉티스컷 어워즈 시리즈 부문 올해의 새로운 여자배우상을 수상하며 존재감을 입증하기도 했다.

‘언니 유정’에서도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언니 유정’은 예기치 못한 한 사건으로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서로의 진심을 향해 나아가는 자매의 성찰과 화해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고등학교 내에서 벌어진 영아 유기 사건의 당사자임을 고백한 기정(이하은 분)과 동생 기정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언니 유정(박예영 분)이 겪게 되는 딜레마를 담은 작품이다. 

단편영화 ‘인사3팀의 캡슐커피’ ‘더더더’ 등으로 두각을 나타낸 정해일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CGV상,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 선택 부문 공식 초청 등 유수 영화제에서 먼저 알아보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오늘(4일) 정식 개봉을 통해 더 많은 관객과 만나고 있다. 

정해일 감독과 ‘인사3팀의 캡슐커피’ ‘더더더’를 함께 작업한 박예영은 ‘언니 유정’에서 사건의 진실과 동생의 진심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유정으로 분해 탁월한 캐릭터 해석력과 소화력, 섬세하고 깊이 있는 감정 열연까지 단단한 연기 내공으로 극의 중심을 묵직하게 이끌며 주연으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뿐만 아니라 캐릭터와 작품에 대한 디테일한 분석을 바탕으로 정해일 감독에게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윤색 참여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정해일 감독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뿐만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 상황, 사건까지 고민했다”면서 박예영이 진심을 다해 ‘언니 유정’에 임했음을 전했다. 

시나리오 윤색에도 참여한 박예영. / 씨제스 스튜디오
시나리오 윤색에도 참여한 박예영. / 씨제스 스튜디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박예영은 개봉 소감부터 윤색 참여 과정,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 등 ‘언니 유정’과 함께한 순간을 돌아봤다.

-이 소재와 이야기가 어떻게 다가왔나. 쉽지 않은 소재였는데 어떤 고민을 했는지.

“감독님이 주변에서 일어난 일에서 착안했다는 게 솔직하고 투명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방향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런 사건은 언제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인데 우리가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졌다. 누군가 이 영화를 ‘고등학생이 영아 유기를 한 영화야’라고 소개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영아 유기를 소재로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닿을 수 있게 애를 많이 썼다. 소재 자체는 자극적일 수 있지만 영화는 자극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거든. 누구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을 겪었고 그 후에 어떻게 됐는지가 더 주된 목적이라서 그 지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 많은 의견을 냈다고.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이었나. 

“감독님이 하고 싶던 이야기는 같은데 조금 더 섬세하게 들어가는 작업에 있어서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사건이 중심이 되기보다는 그 사건을 다루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지점을 조금 더 잘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대사를 선택하거나 순서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거나 했다. 윤색자에 올리기 위해서 작업한 건 아니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니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것 같다. 제일 많이 참여한 건 대사다. 같은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를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은 특히 단어 선택 하나하나 신중했다. 누군가를 저격하거나 상처 주고 싶은 마음은 아무도 없으니까 대사 하나도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다른 작품보다 뉘앙스가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선을 넘어버릴 것 같은 감정선이라 훨씬 더 기민하게 다가가면서 작업했다.”

-말한 것처럼 이 영화는 임신과 출산, 여성의 연대 등 여성 서사를 다룬 작품이었다. 정해일 감독이 남성이기 때문에 보다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기 위해 배우에게 많은 의지를 했을 것 같다.

“나도 편견일 수 있지만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는 (성별이 달라) 잘 알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텐데 이런 소재를 다루는 게 위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누군가를 저격하거나 공격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돕고 싶다는 마음에 함께하게 됐다. 정해일 감독님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거기에 집중하는 분이라 빨리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정해일 감독과 세 번째 작업이라 의견을 나누는 데 더 자유롭고 편안했겠다. 

“감독님 스타일 자체가 열려있다. 첫 번째 작업 때부터 느꼈다. 일단 줘보라고 한다. 잘 들어주기도 하고 잘 걸러내기도 하고 그래서 의견을 내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언니 유정’ 때는 아무래도 서로를 잘 알고 있으니까 불필요한 말들 없이 필요한 것들만 오간 것 같다. 믿음이 있다고 해야 할까. 이 영화에 대한 진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으니까 더 빨리빨리 피드백이 오간 것 같다.”

현실감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 박예영. / 스튜디오 하이파이브, 찬란
현실감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 박예영. / 스튜디오 하이파이브, 찬란

-건조한 말투, 메마른 얼굴까지 고된 일상에 지친 간호사의 모습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준비 과정은. 

“‘영혼수선공’에서도 간호사 역할을 했었는데 그때는 지금보다는 조금 촉촉한 모습이었다. 그때 알게 된 것들이 있는데 간호사들이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거다. 임신도 순서대로 계획하지 않으면 민폐를 끼치게 되고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런 일을 계속 겪으며 일상 속에 있으려면 많은 것에 메말라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생사가 오가는 현장에 있기 때문에 감정의 기복이 보일 수 있는 순간에도 감춰진 채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관객이 보기에 너무 강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고민도 했는데 이것이 현실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믿음과 판단의 사이 과연 나라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때로는 우리가 믿는 게 진실이 아닐 때가 있고 우리가 모르는 사실도 있잖나. 그런 점에서 유정을 탓하는 시선들이 현실적이면서도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 배우는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했나.

“같은 질문을 던져도 기정에 대한 믿음이나 이런 선택을 한데는 이유가 있겠지라는 마음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유정은 기정이가 늘 모범생이니까 그럴 애가 아니라고밖에 설명을 못한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사실에 자꾸 혼란을 겪게 되고 변화를 겪는다. 그게 유정과 기정의 대화에서 보이게 되는데 마지막 대화에서 ‘기다릴 건데 이번 한번만 늦지 말아줘’라는 유정의 대사를 추가하기도 했다. 현실에 최대한 맞춰가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을 잊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직접 글을 쓰기도 하나. 연출에 대한 관심도 있는지 궁금하다. 

“메모장 같은데 쓰거나 일기 형식이나 편지 같은 것들을 쓴다. 학교 다닐 때 연출 수업을 훨씬 많이 들었다. 언젠가는 단편이라도 연출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데 아직은 그런 깜냥이 못 되는 것 같다. 시나리오를 이겨낼 자신만 생긴다면 시나리오 작업부터 해서 제대로 찍어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아직은 꿈이다.(웃음)”

박예영이 기본을 잃지 않는 배우가 되겠다고 했다. / 씨제스 스튜디오
박예영이 기본을 잃지 않는 배우가 되겠다고 했다. / 씨제스 스튜디오

-독립영화부터 시작해서 드라마, 영화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인데 독립영화에서만 느끼는 에너지, 얻는 힘이 다를 것 같다. 어떤가.

“조금 더 야생 같은 느낌이다. 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있어서 감독과 배우 각자의 색깔이 확 묻어날 수 있는 작업같다. 배우들이 어떤 색깔을 갖고 있는지 명확하게 잘 드러날 수 있는 것 같다. 상업영화에서 나는 만들어진 울타리 안에 ‘신나게 놀아라’ 하고 던져진 느낌이라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재밌게 놀 수 있을까 하는데 독립영화는 울타리를 어떻게 만들까부터 시작하는 느낌이다. 그런 결이 좀 다른 것 같다.” 

-어느덧 데뷔 11년 차다. 돌아보면 어떤가. 앞으로는 어떻게 채워나가고 싶은지.

“아직 현장을 즐기는 입장은 못되는데 과정을 멀리서 봤을 때는 결국 행복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계속하는 거다. 작품을 시작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일로 확 와닿기도 하고 하면서 상처도 받지만 가끔 만나는 좋은 순간들, 선물 같은 순간들이 계속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언니 유정’도 그렇다. 영화제에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개봉까지 하게 되니 정말 선물 같다. 이런 기억들 덕에 힘든 순간을 버티게 된다. 늘 건강하고 부끄럽지 않게 임하고 싶은 마음을 중심에 두고 있다. 기본적인 걸 잃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빠른 길을 선택하기보다 느려도 건강한 선택을 해나가는 게 체하지 않고 좋은 것 같다. 나쁜 욕심만 있는 건 아니지만 욕심을 부리거나 그것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인간으로서 해야 할 선택을 두고 그다음 배우로서 하는 선택들이 왔으면 좋겠다.”

-‘언니 유정’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닿았으면 하나.

“사건이 아닌 사건을 겪고 있는 가족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싶어서 감독님과 시나리오 작업 단계부터 이야기를 많이 했고 불필요한 것들은 많이 덜어냈다. 가족에만 국한되지 않고 가까이 있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모르는 관계가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족, 관계에 대해 곱씹게 됐다는 후기가 들리면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고 자신의 언니 생각이 많이 났다, 가족과 관계에 있어 질문을 던지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안심하게 된다. 기정이 진짜 겪은 일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수면 위로 꺼내서라도 명확하게 하고 싶을 수 있지만 그 과정을 겪으면서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했을 때 유정은 더는 몰라도 된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미역국을 먹을 자격이 있는 거다.” 

시사위크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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