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가게’ 원작 웹툰에 대한 주요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강풀 작가의 웹툰 ‘조명가게’를 원작으로 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조명가게'(극본 강풀·연출 김희원)가 4일 공개되면서 두 작품 사이에 어떤 공통점과 차이가 있는지 궁금증이 증폭하고 있다.
어두운 골목 끝을 환하게 밝히는 조명가게에 수상한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경계에 선 이들의 이야기인 시리즈는 2011년부터 연재돼 누적 조회수 1억5000뷰를 기록하며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동명 웹툰을 영상화했다. 그동안 강풀 작가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바보’ ‘순정만화’ ’26년’ ‘이웃사람’ ‘무빙’ 등 웹툰을 통해 장르를 달리하면서도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포근한 시선으로 풀어냈다. 특히 지난해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한 ‘무빙’은 이른바 ‘강풀 유니버스’를 드라마로 확장하는 발판이 됐다.
‘무빙’의 성공은 ‘조명가게’를 향한 관심을 높이는 결정적인 배경이다. 강풀 작가는 ‘무빙’에 이어 ‘조명가게’의 극본도 직접 썼다. 원작 싱크로율과 연출 방식, 배우 캐스팅까지 오랫동안 웹툰을 사랑한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웹툰 조명가게’와 ‘드라마 조명가게’를 비교했다.
● 알아두면 쓸모 있는, 웹툰 꿀팁
총 30부작의 웹툰 ‘조명가게’는 어딘가 이상하고 기이한 분위기를 풍긴다. 초반부 각각의 인물들에게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미스터리한 일들이 연속해 일어난다. 하나같이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앞으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 때문에 웹툰의 내용을 단박에 이해하기란 어렵다. 처음부터 각 인물의 이름도 공개되지 않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버스정류장 앞 벤치에 앉아 매일 밤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성, 그런 그녀에게 호기심으로 말을 거는 남성의 관계와 조명가게를 운명하는 할아버지, 조명가게를 자주 방문하는 여고생 현주 그리고 밤이 되기 전에 귀가하라는 당부를 남긴 현주의 어머니까지 모두 미스터리한 인물들이다. 게다가 좁은 골목길에서 김광석의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반복해 부르는 남학생, 새로 이사한 집에서 기이한 일을 겪는 여성의 묘한 만남과 중환자실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지하주차장에서 폭포수처럼 굵은 땀방울을 흘려대는 냉동창고 트럭 운전사와 마주치는 모습도 등장한다.
처음엔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파편화됐던 각각의 에피소드와 인물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존재임이 드러난다. 웹툰의 부제인 ‘버스정류장’ ‘조명가게’ ‘골목길’ ‘문’ 등도 처음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후반부에 다다르며 흩어진 퍼즐을 맞추게 하는 키워드이다. 이 같은 웹툰의 설정은 드라마 ‘조명가게’를 관통하는 핵심 설계도이다. 캐릭터가 남긴 단서나 이미지를 놓치지 않고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조명가게 앞에 서 있게 된다.
● 웹툰 캐릭터 VS 시리즈의 배우…싱크로율 비교
웹툰 ‘조명가게’의 인물들에 생명을 불어넣을 배우들은 누구일까. 웹툰이 뜨겁게 사랑받으며 원작의 이미지가 독자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돼 영상화 과정에서 배우들의 ‘싱크로율’에 대한 궁금증도 일었다.
배우 주지훈과 박보영, 김설현, 엄태구, 신은수, 이정은, 김민하, 김선화, 박혁권, 김기해 등이 그 주역들이다.
#. 조명가게를 지키는 사장 원영 / 주지훈
웹툰에서 조명가게 사장은 마땅한 이름이 없지만, 시리즈로 제작되면서 ‘원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늘 환한 전구가 켜져 있는 조명가게 안에서 그는 기이한 손님들을 만나며 이들을 연결하는 인물이다. 웹툰에서는 주지훈보다 조금 더 나잇대가 높은 할아버지로 그려졌다.
조명가게가 위치한 공간은 이승을 떠나와 죽은 자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원영이 조명가게에서 취급하는 전구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의지와 생명’을 의미한다. 원영은 극에서 여고생 현주(신은수)와 가장 많이 호흡하면서 ‘이상한 존재들’에 대해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현주의 얼굴에 드러난 명암을 보고는 그가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인물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원영은 오래 전 사망해 조명가게를 지키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주지훈은 “전반적인 정서와 분위기를 조용한 톤으로 갈지 실제 근육의 쓰임까지 절제할지 상의하면서 연기했다”며 “원영의 모습이 그가 만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보여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 중환자실의 간호사 영지 / 박보영
간호사 영지는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로, 박보영이 연기한다. 영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존재들을 목격하면서 생과 사를 오가는 환자들의 곁에서 위로를 건네는 인물이다.
웹툰에서 영지는 홀로 야간당직을 하다가 이상한 환자를 만난다. “영안실이 어디냐”고 묻는 환자에게 길을 알려주지만, 그는 영지의 대답을 잘 듣지 못한다. 대꾸가 없는 환자의 귀에서는 이상하게도 흙이 흘러나온다. 묘한 기시감을 느낀 영지가 중환자실의 침대를 보니, 거기에 그 환자가 누워 있다.
영지는 환자의 막힌 귀를 파주면서 “힘들어도 힘내요”라고 위로하는 따스한 마음을 지녔다. 게다가 그 환자의 귀에 김광석의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반복 재생해서 들려주는데, 그 노래가 옆 침대에 누운 고등학생의 귀에도 가닿는다. 영지로 시작한 노래의 인연은 이후 더욱 묵직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박보영은 그동안 몇 차례 간호사 역할을 소화했지만, ‘조명가게’가 지닌 이야기의 힘에 이끌려 출연을 결정했다. 간호사 역할을 또 연기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전보다 더 섬세한 인물을 표현하는 데는 김희원 감독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박보영은 “감독님은 본인이 미리 다 연기를 해보고 저에게 동선 수정 등을 제시해줬는데 그런 부분이 가장 놀라웠다”고 밝혔다.
#. 벤치에서 매일 밤 누군가를 기다리는 지영 / 김설현
웹툰 1화에 처음 등장하는 의문의 여성 지영은 ‘조명가게’의 중심이다. 배우 김설현이 지영을 연기한다.
지영은 매일 밤, 버스정류장 앞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린다. 마치 ‘처녀귀신’처럼 축 늘어뜨린 머리카락과 파리한 몰골,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까지. 그런 지영 앞에 호기심 가득한 얼굴의 남자 현민이 나타난다. 지영은 말을 걸어오는 현민에게 “혹시 저 모르시겠어요?”라는 알 수 없는 말을 건넨다.
지영은 ‘조명가게’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캐릭터와 마주치는 인물이다. ‘조명가게’는 지영의 동선을 유심히 쫓아가며 여고생 현주, 조명가게 사장, 남고생 기웅과도 만난다. 겉으론 이상해 보이지 않지만 지영은 손톱이 손가락 안쪽에 있다. 그래서 늘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눈이 잘 안 보이는구나”라 말하며 섬뜩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 지영은 ‘조명가게’ 사장이 말한 ‘이상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인물이다. 김설현은 “촬영하면서도 원작과의 싱크로율에 대해 신경을 썼는데 웹툰은 이미지만 보이기에 목소리의 톤이나 분위기는 저만의 스타일로 해석해 연기했다”고 돌이켰다.
#. 지영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현민 / 엄태구
현민은 지영과 깊은 관계가 있는 인물이다. 매일 밤,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있는 지영에게 호기심을 느끼며 말을 걸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이해가 안 되는 말들뿐이다. 혼자 첫 차를 기다린다는 지영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며 “첫 차가 올 때까지 저랑 어디 가서 이야기하자”며 말을 건다.
배우 엄태구가 연기한 현민은 얼빠진 듯한 표정으로 늘 갈 길을 잃은 모습이다. 안개가 자욱한 벤치에 앉아있기도 하고 텅 빈 극장에도 있다. 집 현관문 앞에서 “내가 언제부터 이 집에 살았더라”라면서 중얼거리기도 한다. 현민의 배에는 언제 생긴지 모르는 상처와 붉은 피가 배어 나와 셔츠를 물들기도 한다. 후반부에 이르러 현민은 어둠 속에서 늘 자신을 따라다닌 지영의 존재를 인식한다.
지영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현민의 배에 난 상처를 몇 번이고 꿰매주며, 생에 대한 의지를 심어준다. 반면 현민은 과거 지영과의 인연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엄태구와 상대 역인 김설현은 영화 ‘안시성’에서 먼저 호흡을 맞춘 사이다. 당시에도 전쟁 중에 꽃피운 애틋한 사랑을 그린 두 배우는 ‘조명가게’에서 재회했다.
# 엄마의 심부름으로 조명가게 찾는 여고생 현주 / 신은수
현주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조명가게를 방문하면서 원영과 직접 교류하는 인물이다. 평범한 여고생처럼 보이는 현주의 주변에는 어느 날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언제부턴가 엄마는 말을 하지 않고, 집의 전등은 늘 꺼져 있다. 같이 어울려 놀던 친구도 사라진 채 혼자다. 신은수가 미스터리한 사연을 지닌 현주를 연기한다.
집 건물에서 흐느끼는 여자의 울음소리를 듣고 호기심에 이를 추적하는 현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자신이 경계선이 서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민과 같은 버스를 탔던 현주는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상태. 현주의 엄마가 늘 어둡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던 이유도 밝혀진다.
웹툰에서 현주와 엄마의 이별 장면은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슬픈 이야기로 꼽힌다. 신은수와 모녀 관계를 연기한 배우 이정은은 “연기하면서 만난 딸 중 제일 어린데 흡인력이 좋았다”며 “정말 딸 같은 느낌이 들어서 캐릭터에 맞는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만족해 했다.
#. 이사한 집에서 기이한 일을 겪는 선해 / 김민하
선해는 새롭게 이사한 집에서 자꾸만 이상한 일을 겪는다. 웹툰에서는 선해의 직업에 대해 구체적인 묘사가 없지만, 드라마에서는 시나리오 작가로 설정됐다. 선해를 연기한 김민하는 집에서 이상한 일들을 겪는다. 쓰지 않는 작은방에 늘 불이 켜지고, 어둠 속에 무언가 숨어있는 느낌도 받는다.
집에 갇힌 선해는 골목길에서 김광석의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반복해 부르는 고등학생 기웅(김기해)과 연결된다. 기웅은 골목길에 갇혔고, 선해는 집 안에 갇힌 채 빠져나가는 방법을 모른다. 선해 역시 기웅은 물론 현주, 현민 등 여러 캐릭터와 깊게 연결된 인물.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면서 비극의 출발인 버스 사고와 얽혀 있다. 김민하는 선해에 대해 “오래된 빌라로 이사를 가는데 기이한 일들을 마주하게 되고 기억의 파편들을 퍼즐처럼 맞춰가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 ‘조명가게’ 웹툰을 관통하는 주제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의식이 없는 환자들의 의식은 어디에 가있는 걸까” 웹툰 ‘조명가게’ 속 영지의 대사 中
웹툰 ‘조명가게’는 얼핏 이상한 인물들의 기이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중환자실이 있는 현실의 공간과 조명가게가 자리한 판타지의 공간을 두 축으로 삼는다. 다른 공간으로 보이는 두 곳은, 조명가게 사장 원영의 말처럼 “어디든 사람 사는 세상”이다. 다만 두 공간의 연결에 대한 궁금증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는 후반으로 갈수록 ‘탁!’ 환한 조명이 켜진 듯 실마리를 찾는다.
끝까지 봐야, 작품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환하게 불이 켜진 조명가게를 통해 생에 대한 사람들의 강한 의지도 다룬다. 자신의 주변 사람이 다시 살아나길 간절히 염원하는 사람들, 생과 사의 경계에 놓인 인물들, 그런 이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인물이 ‘조명가게’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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