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4일, 까르띠에 메종 청담은 평소와는 다른 활기로 가득했다. 까르띠에 코리아 최초의 여성 사장인 김쎄라 사장과 전 세계 여성 창업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Cartier Women’s Initiative)’(이하 ‘CWI’) 글로벌 프로그램 디렉터 윈지 신(Wingee Sin)의 대담이 열렸기 때문. 까르띠에를 대표하는 얼굴로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의 커리어 비전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에 〈엘르〉도 힘을 보탰다. ‘영 리더스 살롱(Young Leaders Salon)’이라는 이름으로 대담이 개최될 것을 알리자 짧은 시간 내에 100명이 넘는 〈엘르〉 독자들이 참가 신청을 했고, 그중 40명이 함께한 이 특별한 시간을 위해 까르띠에는 메종 5층에 자리한 ‘라 레지당스’의 문을 열었다.
‘엘르보이스’ 필자로 여성으로서 삶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임현주 아나운서의 진행과 함께 질의응답으로 이뤄졌다. 특별히 한국을 찾은 윈지 신은 CWI 글로벌 프로그램 디렉터로 전 세계 여성 창업가들을 폭넓게 만나고 있는 인물인 만큼 여성 창업과 도전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 여성 창업을 지원해 사회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2006년 출범한 CWI는 지난 17년 동안 총 66개국에 걸쳐 330여 명의 여성 창업가에게 130억 원에 달하는 사업 지원금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온 까르띠에의 사회 공헌 프로그램. 특히 2023년과 2024년에는 마인들링 문우리 대표와 세이브앤코 박지원 대표가 연이어 동아시아 지역 부문 1위를 거머쥐며 한국 여성 창업가들의 저력을 알리는 훌륭한 발판이 되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여러 문제는 비영리단체나 정부에 의해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훌륭한 사업 모델은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죠.” 왜 창업가 정신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한 윈지의 답변은 까르띠에가 사회적 기업을 지지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일에 대해서는 “2009년 CWI에 지원한 아이슬란드의 여성 사업가가 자신의 롤모델로 아이슬란드의 첫 여성 대통령 이름을 쓴 지원서를 본 적 있어요. 바로 그녀가 지금 아이슬란드의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인 ‘할라 토마스도티르(Halla To′masdo′ttir)’죠. 여성들이 서로 도전과 영감의 원천이 된 선순환을 목격한 순간이었습니다”라는 에피소드로 가시화된 여성 롤모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1990년대 패션 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2009년 까르띠에 코리아를 책임지게 된 김쎄라 사장은 한국 명품 리테일 역사의 산증인 같은 인물. 김쎄라 사장은 오랫동안 한 기업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로 ‘진화’를 꼽았다. 산업은 물론 회사가 변화할 때 찾아오는 모멘텀 안에서 자신도 진화해야 한다는 것. 리더직을 제안받는 많은 여성이 그렇듯 자신도 사장직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두려웠다고 고백해 공감을 얻어내기도 했다. “모든 것의 토대는 열정입니다. 열정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신감, 업무의 완성도로 이어지죠. 조직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사람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도 잊지 마세요”라는 실질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서로 다른 커리어 패스를 가진 두 사람이지만 ‘영 리더’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만큼은 ‘자신을 돌보고, 자신이 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는 내용으로 완벽하게 일치했다.
‘동양인이라서’ ‘여성이라서’ 스스로 위축되는 경험은 커리어 열망을 가진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하는 고민일 것. 이런 고민에 홍콩 출신으로 아시아 문화의 영향력에서 자라온 윈지는 “딸에게 갖는 기대, 집 안에서의 역할에 대한 기준이 있기 마련이지만, 진짜로 내게 맞는 기준을 찾는 것이 중요해요. 어떤 게 나한테 맞는지는 시도했을 때 알 수 있으니 자신감을 갖고 해보고 싶은 일에 맘껏 도전해 보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김쎄라 사장도 “한국 여성은 업계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경쟁력 있는 존재입니다. 적어도 글로벌 명품 업계에서는 아시아 여성에 대한 편견은 없다고 말할 수 있어요. 어떤 자리도 다 해볼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자신감을 북돋웠다. 약 한 시간의 대담이 끝나고 참가자에게 직접 질문을 받는 시간. “모두가 노력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리더로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한 참가자가 질문을 던졌다. ‘실패’ 또한 일과 인생의 일부임을 강조하면서 김쎄라 사장이 답했다. “실패는 언제든 올 수 있는 과정입니다. 다만 그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노력을 놓지 않아야겠죠. 열심히 했는데 왜 되지 않았는지 얻는 게 분명히 있어요.” 윈지 또한 “실패해 보지 않은 사람은 다음번에 더 큰 일이 왔을 때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죠”라며 ‘실패’가 결코 ‘끝’이 아님을 강조했다.
이후에도 참석자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로 대화를 나누며 질문을 던졌다. ‘리더십’과 ‘교류’에 대한 참석자들의 진심 어린 열망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 모든 여성이 리더가 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길. 일에 몰두하되 나다움 또한 잊지 않고 지켜낼 수 있길. 무엇보다 오늘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 지칠 때 꺼낼 수 있는 멋진 파편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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