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킴디자인스튜디오(이하 종킴스튜디오) 설립 전 파트릭 주앙 스튜디오(Studio Patrick Jouin)에서 일했다. 종킴스튜디오의 근간이 된 경험이 있다면
파트릭 주앙 스튜디오에서 하이엔드 리테일에 특화된 팀에 있었다. 공간의 깊이와 풍성한 마감 방식, VIP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방식 등을 터득했다. 특히 반클리프 앤 아펠 플래그십 스토어를 꾸준히 디자인하며 특유의 디자인 방식을 체득할 수 있었다. 판매 실적과 고객 동선 분석 등을 바탕으로 공간을 조닝하는 팀, 세계적 수준의 조명 설계사 등 여러 팀과 협업했다. 이는 종킴스튜디오만의 깊이 있는 워킹 프로세스의 토대가 됐다.
상업공간 디자인에서 중요한 건 클라이언트가 ‘돈을 잘 벌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한 적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공간 디자이너의 역할은
조력자를 자처한다. 상업공간에서는 수익이 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주거에서는 거주자에게 가장 편안하고 매력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클라이언트의 자본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니까. 다양한 공간을 다룰 때 중요한 것은 생소하더라도 ‘얼마만큼 해당 분야를 빨리 흡수하고 이해하는가’다. 모든 분야에 정통할 수는 없으니까. 이 능력이 디자인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본다. 일례로 지포어(G/Fore) 플래그십 스토어나 PGA 투어 & LPGA 골프웨어 매장을 디자인할 때, 나를 비롯한 팀원들은 골프를 잘 몰랐다. 하지만 실제 골퍼들과 대화하며 시장을 분석하고, 유저 입장에서 끊임없이 상상했다. 이를 브랜드의 고유 아이덴티티와 결합해 공간의 컨셉트와 세부 구성을 도출했다.
구호 한남, 지포어 플래그십 스토어, 설화수 스파를 비롯한 국내외 럭셔리 브랜드의 공간을 디자인해 왔다. 값비싼 재료 외에 무엇이 공간을 고급스럽게 할까
베이스가 탄탄해야 한다. 좋은 옷을 보면 어느 하나 눈에 거슬리는 것 없이 아름다운 것처럼 공간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오와 열이 맞는 것을 넘어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간접조명의 위나 걸레받이의 높이까지 치밀하게 재단함으로써 완성되는 비율과 깊이가 중요하다. 규모를 떠나 어느 방향에서 봐도 아름다운 공간이 고급스러움으로 이어진다. 이런 기본을 지킨 다음 마감재나 빛, 향기, 공간을 이루는 크고 작은 소품을 마지막까지 꼼꼼히 살핀다.
다양한 럭셔리 브랜드가 오프라인 공간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현재 하이엔드 마켓에서 소구되는 공간 디자인은
과거엔 유행을 따라가는 경향이 짙었다면 지금은 점점 공간을 통해 고유한 철학을 알리는 추세다. 브랜드 스스로 각자의 코어 밸류를 탐닉하고,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 역시 반가운 일이다. 예술 작품이나 아트 퍼니처 등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경향도 높아졌다. 이런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큐레이터와 협업해 공간에 어울리는 아트피스까지 함께 제안하고 있다.
좋은 공간을 ‘산책 같은 공간’에 비유하며 디테일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다양한 재료를 믹스매치하거나 재료를 독창적 방식으로 가공해 개성을 살리는 것이 인상적이다
좋은 물건을 만나면 예상하지 못한 세밀한 디테일에 감복하는 순간이 있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좋은 공간은 오래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오래가려면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산책도 이와 같다. 올해 진행한 프로젝트 중 마감재에 신경 쓴 것은 대구 소재 고압산소 치료 안티에이징 센터를 디자인할 때다. 손으로 긁어 만든 사선 패턴을 입은 타일, 기포가 갇힌 유리벽을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사선 패턴을 통해서는 역동적인 시간 흐름을, 유리벽으로 멈춰 있는 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편 ‘고급스러운 프로젝트만 하는 스튜디오’라는 선입견을 깨고 싶다고 했다. 스튜디오 오픈 8년 차인 현재 도전으로 삼은 것은
‘종킴’ 하면 곡선이나 섬세한 터치를 떠올리곤 한다. 디자이너로서 확고한 스타일을 갖는 건 좋은 일이지만, 어떤 한 가지로 정의되고 싶진 않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 ‘더 쿨리스트 호텔’은 조금 뜻깊다. 스튜디오의 코어와 강점은 지키되, 다채로운 색감을 더해 보다 캐주얼하게 풀어냈다. 이렇듯 앞으로 작업의 다양성을 높이고 싶다. 종킴스튜디오의 또 다른 레이블 ‘저스트키딘(Jkdn)’은 그 일환에서 출발했다. 주로 좀 더 ‘힙’하고 젊은 프로젝트나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회사를 설립하고 후회하는 것 하나는 바로 네이밍이다. 개인이 아니라 팀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양한 레이블을 만들어 종래엔 종킴이라는 이름을 가리는 게 목표다(웃음).
앞서 말한 사회공헌 프로젝트는 소외 계층의 주거공간을 무상으로 개선하는 일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돌발 상황에 대비해 여분의 자재를 마련해야 한다. 쓰이지 않으면 결국 버려지기에 좀 더 의미 있게 활용하고 싶었다. 약소하지만 1년에 한 번, 5월마다 진행하고 있다. 올해에는 조손 가정의 주거공간을 디자인했는데, 강남에 있는 V&MJ피부과에 사용한 타일을 주방에 썼다. 작게나마 사회에 공간의 힘을 전파하고 건자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대안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공개를 앞둔 프로젝트가 있다면
중국, 일본, 하와이 등에서 진행한 스토어 디자인 프로젝트가 공개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커뮤니티 리조트나 시니어 하우스 등 기존에 진행했던 프로젝트보다 큰 규모의 공간이 오픈을 앞두고 있다. 우리 스튜디오의 내일이 오늘보다 더 기대되는 이유다.
댓글0